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랩 Jan 11. 2023

비행기에서 메리크리스마스 앤 해피뉴이어

남들이 쉬는 날 일하는 승무원의 슬픔과 기쁨

12월의 비행은 유독 바빴다.


중거리 1개, 장거리 3개.


예년에 비해 다시 재 운항을 시작한 노선들도 늘었고 승객들도 눈에 띄게 늘어서 코로나 시기 때의 다른 비행과는 달리 “코로나 이전” 느낌이 물씬 나는 한 달이었다.


다시 재 유행이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와 A형 독감으로 스케줄에서 빠지게 된 병가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내 스케줄이 아닌 결원을 채우려 급하게 바뀐 일이 꽤 있었다.


원래 내 스케줄 대로라면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은 대기, 25일은 카트만두.


하… 크리스마스에 네팔이라니… 뭔가 영 김이 새는 스케줄이었다.


그래도 24일은 운이 좋으면 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남편과 둘이 뭘 하면서 보낼까를 궁리하고 있었는데,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당장 24일에 오클랜드행.


당장 내가 내일 어디를 갈 수 있을지도 모른 채로 마음 조리며 보내는 시간은 늘 나를 울컥하게 한다.


특히나 기념일, 크리스마스, 연말 같은 특별한 날엔 더더욱.


이미 12월에 있던 결혼기념일도 로스앤젤레스에서 영상통화로 조촐히 축하하며 안부를 물었던 터라 이브만은 꼭 사수하고 싶었는데!!!!


뭐, 어쩌겠는가. 오늘 출근하는 이들이 어디 나뿐이랴.


이제 막 시작한 연인, 기대하는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주고 함께하고 싶은 부모, 가족과 함께하고픈 딸 혹은 아들. 다 같은 마음일 테지만 스케줄에 따라 뿔뿔이 타지로 떠나야 하는 것은 똑같을 텐데….


비뚤어지려는 맘을 곱게 정리하고 짐을 싼다.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 남편 쉬는 날이라, 편하게 남편 차를 얻어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것 같아서 아쉬운 대로 영종대교 휴게소에 들러 커피와 핫도그를 사 먹으면서 우리만의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 내가 바라던 이브의 모습과는 매우 동떨어진 모습이지만, 아쉬운 대로 사진도 찍었다.


바삐 준비를 하고 어느덧 손님 탑승 시간.


크리스마스이브에 출근해 속이 상한 나와 달리,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연말을 타지에서 보내게 된 설렘이 얼굴에 가득한 손님들이 하나 둘 탑승한다.


어린이 손님 중엔 루돌프 머리띠, 산타 모자를 쓴 친구들도 있다.


얼마나 설레고 신이 날까. 얼마나 행복할까.


기쁨이 가득한 채 타는 손님을 맞이하면서, 차마 투덜댈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니까.


크리스마스라서 속상했던 맘이 크리스마스라서 자연히 해소된다.

바삐 일을 하고 하루가 지나 현지 시각 이른 아침. 착륙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피로에 지쳐 잠든 손님을 깨우고 좌석 벨트 착용을 확인한다.


“오시는 데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편안한 여행 되셨습니까?”


 


말할 때마다 조금은 어색하고 쑥스럽고 또 민망하기도 한 마지막 인사 시간.


그날은 자신 있게 할 말이 생겼다.


“즐거운 성탄절 되십시오. 메리크리스마스!”


인사를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뻘쭘한 그 시간이 훈훈한 온기로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크리스마스를 향한 설레는 맘은 모두 다 똑같으니까.


그렇게, 타지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돌아와 겨우 이틀을 쉬고 나는 또 새로운 스케줄을 받았다.


이번엔 로마. 하, 아무리 그 좋은 로마라 한들… 한 해 마지막날에 갑자기 가기는 꺼려지는 법.


또 또 또 남편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며


“내년에 만나… 나는 4일 날 저녁에 와.”


“응 나 혼자도 밥 잘 챙겨 먹고 있을 테니까, 가서 잘 쉬고 와”


헤어졌다.


크리스마스 때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이번에도 열심히 땀을 흘리며 가장 바쁜 식사 서비스 시간을 지나 보내고 착륙 전에 한 번 더 있는 두 번째 식사를 준비하는 중에


조용한 기내에서 후배가 다가와 “선배님, 해피 뉴 이어~” 했다.


와….. 이렇게 새해가 되어버렸네.


아, 이렇게 한 살을… 먹어버린 건가.


예전에도 숱하게 겪은 일이었다. 카운트 다운을 기내에서 한 번, 현지에서 한 번 하는 일도 있었고


기내에 마련된 승무원 휴식 공간인 벙커에서 잠을 자다가 커튼을 열고 나오면서 마주친 승무원들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며 얼렁뚱땅 한 해를 맞이한 적도 많고,


그래도 매번 영 적응이 안 되고 아쉽긴 하다.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 승무원들과 다 같이 힘을 내서 웃으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첫 서비스, 화이팅이예요.”


하면서 서로를 독려해 보았다.


하루의 연속일 뿐이고 심지어는 업무의 연속인데도 괜히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기운을 더 끌어올리게 하는 힘.


이번에도 하기 인사(착륙 전 비즈니스 손님들 한 분 한 분에게 드리는 인사)는 덜 어색할 수 있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좋은 멘트를 써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 순간엔 모두의 눈빛에서, 내 말투에서 진심이 오고 가는 순간이다.


그래, 한 해 마지막날과 새 해 첫날을 잇는 이 순간에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짜증이 났지만


새해가 되자마자 이렇게 많은 이들과 서로의 복을 기원하면서 인사할 수 있는 게 또 얼마나 좋은 일이야. 하면서 무한 긍정 회로를 돌려본다.



새 해에 로마에서 방문한 바티칸! 이것 역시 속상함을 이기는 장점!
작가의 이전글 승무원의 pts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