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속 스튜어디스, 그리고 글을 쓰는 이유
새 해가 시작됨과 동시에 핫한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1월 1일 로마에 도착해서 인스타그램을 보니 다들 연휴 맞이 더 글로리 정주행 이야기가 한창이었고, 엄청난 후기들이 쏟아졌다.
대한민국에서 어떤 콘텐츠가 가장 재미있고 인기인 지 알 수 있는 곳은 바로
식사 서비스 후 불 꺼진 기내 안이다.
다들 저마다 미리 다운 받아 온 콘텐츠를 식사가 끝나고 하나둘씩 켜서 보기 시작하는데,
불이 꺼진 기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밝은 화면이 눈에 확 띄기 때문이다.
그렇게 로마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는 온통 송혜교 배우의 얼굴이 각자의 휴대폰과 태블릿, 노트북에 재생되고 있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 역시 한국에 오자마자 정주행을 했다.
저녁 먹을 즘인 7시쯤 시작했는데, 도저히 끊지를 못해서 새벽 3시까지 보고야 말았다.
더 글로리의 흡인력 있는 스토리와 연출,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극 중 ‘혜정’이라는 인물이다.
출처 : @jooyoungthej 인스타그램
스튜어디스로 나오는 ‘혜정’은 소위 승무원이 가진 나쁜 선입견의 완전체라서, 보는 내내 조금은 불편했고 다시 한번 내 직업이 갖는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극 중 혜정은 학창 시절 동급생인 ‘동은’을 괴롭히는 학교 폭력 가해자이고, 사회에서 역시 그에 대한 반성 없이 ‘직장 후배’들을 괴롭히며 지낸다.
거기에 더해 ‘돈’을 밝히고 ‘남자’들을 물주로 삼아 ‘계급 상승’을 노리는 인물로 그려진다.
실제로 정말 혜정이처럼 ‘아 저 사람 학창 시절에 애들 꽤나 괴롭힌 거 같은데?’ 싶은 포스를 풀풀 풍기는 사람들도 존재하고, 남자친구한테 받은 선물을 자랑하거나, 전문직 혹은 부유한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껴서 연애를 하는 부류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직업이 그런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게 속상할 뿐이다.
출처 ; 넷플릭스 <더 글로리>
대화를 하다가 정말 못난 동료를 보거나, 명품 선물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 나도 예쁜 가방, 명품 브랜드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극 중 혜정이처럼 ‘받아냈어’라는 언어를 쓰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경우는 나와 분리하고 싶은 맘이 든다.)
“아 저렇게 대놓고 말하지 좀 말지… 부끄럽지도 않나? 저러니까 자꾸 승무원 욕하잖아.”라는 생각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는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말하기 꺼려진다. 오히려 조금 친해져야 직업을 오픈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기 전에 승무원에 대한 편견 어린 시선으로 나를 먼저 판단해버릴까 봐. 종종 그런 경험으로 상처받았던 적도 있고.
‘명품을 밝히는 사람’ ‘돈 많은 남자만 골라 사귀는 사람’ 일 것이라는 편견이 먼저이고 나라는 사람의 개성이나 성격은 오히려 “오 승무원 치고, 00 하네. 승무원인데도 00네.” 등으로 올려쳐지거나, 아니면 나의 결함이 “승무원이라 그런지~”로 일반화되어버리는 경우가 꽤 있으니 말이다.
후, 그렇다.
내가 겪어온 안 좋은 기억들이 드라마를 보는 나를 불편하게 한 것 같다.
콘텐츠의 작은 부분까지도 불편해하는 ‘프로 불편러’들에게 과하다는 시선이 있는 것도 잘 안다.
내 직업을 한없이 멋지게만 그려달라고 바라는 것도 물론 욕심일 수 있다.
그런데, 지난 십여 년간 ‘승무원’이란 이유로 들어야 했던 편견 섞인 말들과 상처되는 말들이 떠올라 맘이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너 세상에서 완벽하게 계급이 존재하는 곳이 어딘지 알아? 비행기 안이야. 퍼스트, 비즈니스, 이코노미. 그 사이엔 달랑 커튼 하난데 아무도 그걸 못 넘어. 넌 그냥 한 끼 밥 값도 안 되는 돈이나 쳐 받으면서 그렇게 커튼 뒤에 있으란 소리야. 난 넘어갈 테니까.”
이 대사가 혜정이의 역할을 완벽히 보여주는 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대사를 통해 비로소 혜정이란 인물이 왜 스튜어디스로 설정되었는지도 납득했다.
왜냐하면 비행기 안에서 ‘커튼’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승무원뿐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비행기 안에서 만큼은 커튼을 자유로이 넘어 다닐 수 있는 승무원이다.
닮고 싶은 사람,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반면교사 삼게 되는 사람을 겨우 두 발자국 사이에서 동시에 만나기도 하고,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과 상처받은 나를 위로하는 따뜻한 감사를 전하는 사람을 커튼 하나 사이로 만날 수도 있다.
그 작은 비행기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배우고, 그들을 관찰하고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고 나에게 큰 배움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커튼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승무원으로서 혜정이처럼 그저 앞으로 넘어가려고 애쓰는 모습만을 비추어주는 게 아쉬울 뿐이다.
내 직업의 편견에 대해 더 예민하게 구는 이유는 현재 나의 직업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인, 나의 엄마’의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 날, 캐리어를 끌고 먼 나라로 다녀오는 엄마를 동경했고 그래서 나 역시 승무원이 되었다. 엄마로부터 이어진 나의 일이기에 난 더욱 자긍심을 가진다.
앞으로 커튼을 자유롭게 건너갈 수 있는 승무원으로서 바라본 작은 비행기 속의 이야기에 대해
조금씩 풀어내보려고 한다.
나의 글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승무원이란 직업이 보다 긍정적인 인상으로 남길 바란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게 된 하나의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