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주말에 장을 보러 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고 정신이 없기도 하고 점심을 먹은 후여서인지 졸음이 밀려와서 남편이랑 같이 마트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 갔다.
주문을 위해 줄을 서있는데, 앞에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이 개인 텀블러를 들고 주문하고 계셨다.
매장은 마트에 입구에 있기도 하고 사람도 늘 많은 곳인데 그래서인지 주문받는 직원도 꽤나 피곤해 보였다.
피곤한 기색과는 별개로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직원은 손님께 늘 하던 대로 질문했다.
“네, 음료는 매장에서 드시나요 가지고 가시나요?”
내가 주문할 때마다 듣는 익숙한 질문이다.
하지만, 손님은 참지 않았다.
“내가 텀블러를 줬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여. 텀블러에 넣었으니까 들고 가겠지. 거 참…”
날이 선 말투에 직원도 당황해서는
“아 네 텀블러에 담아드리겠습니다.”
하고 얼버무렸다.
어르신은 본인이 텀블러를 주었는데, 기계적으로 의미 없는 질문을 한 직원이 계속 못마땅했는지 몇 마디를 더 거드셨고, 그에 더 당황한 직원은 또 무슨 실수를 한 모양이다.
(잘은 몰라도 사실 별 거 같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뭐가 그렇게 정신머리가 없어…. 쯧쯧쯧” 하면서 가서는 음료를 내주는 다른 직원에게까지 그분이 정신을 영 못 차린다고 한 마디를 기어이 하고 돌아가셨다.
스타벅스에 단골인듯한 그분의 닉네임은 “행복 마음” 손님이었다.
남편이랑 나는 그 언매칭 한 닉네임에 피식하고 말았다.
내가 당하지 않은 일이어도 가끔 저런 컴플레인을 보면 같이 긴장하고 움찔하게 될 때가 많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한 사람을 잡아두고 몰아세우거나 , 꼭 끝까지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을 볼 때면 내가 당하는 게 아닌데도 불편한 맘이 들 때가 있다.
잠깐 스친 광경이었지만, 난 그 직원의 실수(라고 하기에도 뭣한)가 십분 이해되었다.
하루 종일 비슷한 상황에 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면 말이 꼬이는 일도 많고, 이 상황이 인지되기 전에 말과 행동이 먼저 나올 때도 많다. 하던 일이 기계적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나 역시 기계적으로 습관처럼 말을 뱉는 실수를 한 적이 꽤 있다.
비행기에서 커피, 차, 국, 라면 등을 제공할 때엔 혹시나 모를 화상의 위험에 대비해 꼭 ”뜨겁습니다. 조심하십시오.”라는 말을 해야 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무원이 그 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로 상황이 벌어진 후 사후처리 과정에 책임의 무게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입에 배어있는 말이다.
이게 너무 습관이 되다 보니 “콜라, 뜨겁습니다 조심하십시오”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손님도 나도 어이가 없어서 웃게 되는 말실수였다.
승무원이 대부분 강조하고 말하는 말들은 혹시나 손님이 다치거나 피해를 보았을 때 내가 먼저 경고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먼저 경고한 말로 손님이 미리 피하고 화를 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주 사용하고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식사가 들어있는 무거운 카트를 혼자 끌고 가다 보면 자거나 쉬느라 나와있는 손님의 어깨, 무릎 등을 칠 수가 있기 때문에 카트를 움직일 때마다 “카트 지나갑니다. 어깨, 무릎 조심하십시오”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무거운 카트를 끌고 가며 복도에 나와있는 가방 끈, 손님 발, 무릎등을 살피며 가는 순간에 입은 끊임없이 그 경고의 말을 뱉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말이 꼬인다.
“무릎 지나갑니다. 카트 조심하십시오.”
“머리 지나갑니다. 조심하십시오 ”
반대편에 있는 승무원도 아무 생각 없이 내 말을 받아 기괴한 말을 표정하나 안 바뀌고 되뇌다가 깨달은 순간 웃음이 터진다.
간신히 참고 작업공간까지 카트를 옮긴 다음에 싱겁게 깔깔 거리는 거다.
“악…. 머리 지나간대ㅋㅋㅋㅋㅋㅋㅋ 공포물이야 뭐야…”
이렇게 작은 말실수가 터지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기도 하는데 이런 잠깐의 웃음이 순간적으로 기분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유독 긴장했던 첫 비행 실습의 날, 나는 아직 내 명찰을 받지 못해서 “비행실습”이라는 명찰만 달고 일을 했다.
딱 봐도 어리바리한 병아리 승무원이 비행실습 명찰을 달고 종종거리는 게 귀여우셨는지 중년 남자 손님께서 “이름이 비행실습인가?”라고 농담으로 물으셨는데, 긴장해서 앞에 이름이라고 물으신 말을 못 듣고는 “네! 비행 실습입니다”라고 답했었다.
잔뜩 긴장해서 또박또박 비행실습이라고 말하는 내가 웃겼는지 빵 터진 손님은 내가 잘못 들어서 대답한 걸 아시고도 한창 눈물을 빼며 웃으시면서 “이름이 네 글자야….ㅋㅋㅋ, 이름이 비행실습이야 ㅋㅋㅋㅋ” 하면서 웃으셨다.
너무 자지러지게 웃으셔서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고 그 덕에 긴장이 조금은 풀렸다.
물론 실수를 안 하는 게 가장 베스트일 테지만 정말 팔팔 끓는 콜라를 내어오지 않은 이상, 손님 앞으로 기괴하게 어깨나 무릎이 지나다니지 않는 이상 즐거운 여행길에 있던 작은 에피소드 정도로 일 하는 사람의 실수를 봐주면 좋겠다는 게 내 작은 바람이다.
사실, 대부분의 승객들은 그게 설령 본인에게 조금 해가 되는 실수여도 기분 좋게 웃어넘기며 괜찮아요~라고 말해주신다. 어쩔 줄 몰라하는 승무원을 배려하고 안심시켜 주시는 경우도 많고 말이다.
그런 분들만 상대할 수 있는 천국 같은 비행은 드물지만, 그래도 뾰족한 말투와 눈빛에 기가 죽은 나를 일으키고 따뜻하게 녹여주는 것도 결국엔 손님이다.
‘웃음’이라는 것은 ‘미소’ 보다도 더 강하고 따뜻한 것이어서 작은 실수를 웃음으로 받아주었을 때 오고 가는 교감은 참으로 신기하다. 어색하고 기계적이었던 서비스가 어느새 훈훈한 온도로 바뀌는 것이 느껴진다.
“행복 마음” 손님도 닉네임처럼 ‘행복한 맘’으로 웃음을 건네셨다면 그날의 카페도 조금은 더 따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