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랩 Feb 16. 2023

수줍음 많은 하늘 엄마

플라잉 맘 서비스

부모님이 없이 혼자서 비행기를 탑승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가 있다.

이른바 ‘플라잉 맘 서비스’라는 것인데, 비동반 유아라는 뜻의 um (unaccompanied minor- 만 5세 이상~ 만 11세 이하인 혼자 여행하는 어린이)이라는 코드를 가진 어린이 승객 중 5시간 이상의 비행을 가는 어린이에게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들, 먹었던 음식, 특이사항에 대해 간단한 편지로 써서 제공하는 서비스다.


5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혼자 태워 보내고 전전긍긍, 애가 탈 부모님들을 위한 서비스이다.


내 담당 구역에 이른바 유엠 어린이가 타면 그때부터 나는 그 아이의 엄마의 역할을 하게 된다.

“안녕하세요. 저는 담당 승무원 000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 버튼을 눌러서 말해주세요.”

라는 형식적인 말로 시작하거나, 혹은 적절히 반존대를 섞어서 친근하게 다가가기도 하는데, 엄연히 어린이 승객도 고객이기 때문에 무턱대고 혼자 친근해졌다가는 “플라잉 맘에서 엄마에게 이를 일순위 대상자”가 될 수도 있다.

(어린이 승객 뒤의 부모님을 늘 생각하며 긴장한 채 서비스해야 한다!!!!!!!!)



나는 천성이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편이다.

벽을 허문 후에는 누구보다도 활발하고 속을 다 내어줄 듯이 가까워지지만 그전에는 영 다가가는 게 어색하고 쑥스럽다.

그런 내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계에 있는 아이와 친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로 3~6세 정도의 꼬마 어린이에게는 순도 100% 진심인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지만, 그 보다 더 큰 아이는 , 게다가 혼자 비행기를 타서 한껏 예민해진 아이와는 친해지기가 더 힘들다.


그래서 나에겐 오히려 이 ‘플라잉 맘’ 서비스가 더 하기 수월하고 편했다.

편지로 내 맘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탑승 시 어떤 모습으로 들어왔는지, 무얼 먹었고, 어떤 영화를 보았는지, 잠은 잘 잤는지, 아픈 데는 없었는지 이런 이야기를 쓴다.

한 손님이 어떠했는지를 다 서술해 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두 배, 세 배로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관심을 쏟다 보면 어느새 정말 ‘엄마’가 된 것처럼 마음이 쓰이고, 친근해진다.

무슨 일로 혼자 그 먼 길을 가는지,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는지, 엄마가 보고 싶진 않은지( 가장 궁금하지만, 절대 묻지 않는다. 아이가 잘 여며둔 마음을 건드려 울음을 터뜨릴지 모르기 때문에!!! )

자꾸 궁금해진다.


소소한 잡담을 나눠보기도 하고, 불 꺼진 기내에서 혼자 외롭거나 무섭진 않은 건지 살피기도 하고, 잠은 또 잘 자고 있는지,

배가 고픈데 말을 못 꺼내서 쫄쫄 굶고 있지는 않은지 스낵을 가지고 찾아보면서 아이를 살핀다.

떨어져 있는 엄마를 대신할 순 없겠지만, 하늘 위 엄마는 작은 노력으로 그 큰 빈 공간을 메워보려 한다.  



비행 막바지에 어쩐지 보고서 느낌이 나는 편지를 다 쓰고 어린이 승객에게 전하며 꼭 하는 말이 있다.


“여기 이 주머니(유엠 어린이용 서류, 여권 등이 들어있는 목걸이 형 파우치)에 넣어둘 테니까 도착해서 어머니에게 드리면 돼요~. 미리 보지 말기!”


라고 말을 하지만 정말 안 보는 친구는 0에 수렴한다. 내가 돌아가는 것을 쓱- 살피고 궁금해서 바로 열어보는 친구들이 열에 일곱은 된다. 간신히 참고도 엄마랑 꼭 같이 볼 것을 안다.

인간은 누구든 남이 하는 내 이야기가 제일 궁금한 법이니.



그래서!! 나는 그 편지를 훔쳐볼 아이들을 위해 꼭 써넣는 문구가 있다.



“오늘 비행이 많이 낯설고 버거웠을 텐데, 의연하고 씩씩하게 잘 지내주었습니다. 꼭 칭찬해 주세요. “라고.



물론, 어련히 엄마가 멀리 타국에서 온 혹은 타국으로 온 아이를 칭찬하지 않을 리 없다.

얼마나 기특한 일을 해냈는데, 누구보다도 엄마가 더 잘 알고 예뻐해 주실 테지.



하지만, 그 대단한 일을 기특하게 잘 해낸 친구가, 가장 가까이에서 본 승무원에게 칭찬받는 경험을 전해주고 싶었다.


물론, 눈을 보고 명랑한 목소리로 “우와 우리 친구 진짜 씩씩하고 멋지다. 오늘 너무 잘했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제는 이 정도는 천연덕스럽게 잘 해낼 수 있지만, 말하고 나서 여전히 소름이 돋는다………… 후, 10년이 넘어도 천성은 바뀌지 않는다.) 엄마한테 툭 던지고 버려지는 종이가 되기보다는 비행기에서 날 지켜봐 준 ‘플라잉 맘’이 준 칭찬 편지를 자꾸 열어보고 싶게 하는 뿌듯함을 선물하고 싶다.



본인이 정말 큰 일을 해낸 거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조금 서툰 당신의 임시 엄마가 주는 작은 손편지로, 그 친구가 큰 자부심을 얻었으면 좋겠다.


수줍음 많은 하늘에서의 엄마가 주는 큰 칭찬.

“참 잘했어요. 새로운 곳에서 즐거운 여행, 좋은 추억이 되길 바라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