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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랩 Mar 02. 2023

커튼 제일 앞, 일등석 손님

부자의 태도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스튜어디스인 혜정은 말한다.



너 세상에서 완벽하게 계급이 존재하는 곳이 어딘지 알아? 비행기 안이야. 퍼스트, 비즈니스, 이코노미. 그 사이엔 달랑 커튼 하난데 아무도 그걸 못 넘어.



그렇지만 스튜어디스 혜정이는 커튼을 넘을 수 있다. 스튜어디스인 나처럼.



계급에 상관없이 그 커튼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아무개’가 바로 승무원이다.


막상 일을 해보면, 그렇게 ‘계급’을 운운할 정도로 큰 차이가 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마치 ‘설국열차’ 비슷하게 묘사되어 ‘그들이 사는 세상’, ‘감히 넘을 수 없는 곳’처럼 표현되었지만,

여행길의 짧은 찰나에 그들의 계급은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계급이라는 단어가 가진 묘한 배척감 때문인지 그 단어를 쓰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이번에 그 커튼 너머 맨 앞에 (껄그러운 ‘계급’이라는 말대신 )‘격’이 다른 손님을 만나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로 수많은 노선에서 일등석 운항을 중단하였고, 비행도 많이 줄어서 오랜만에 일등석 담당을 하는 날이었다.


주로 전담하는 ‘비즈니스 클래스’에 비해 식사 코스도, 서비스 준비도 많이 늘어나는 데다가 몇 명 되지 않는 손님들의 편안한 여행을 배려하기 위해 손님이 원하는 시간에 식사를 제공하게 되어있어서 실로 부담스러운 업무이다.(정해진 시간에 딱 서비스를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가 언제 시작될지,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회장님’이신 그분은 우리 회사의 상용 고객으로 특히나 더 긴장되는 상대였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담당 승무원 000입니다. 긴 시간 편히 모시겠습니다.”


대부분의 중년 남성이 그러하듯 별 표정이 없이 비행기 안으로 들어온 회장님은 나의 인사에 환하게 웃어주시며

“네, 잘 부탁해요.”라고 답하셨다.



지상에서 미리 세팅해 둔 서비스 용품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드실 음료를 주문받았다.


“물 여기 놔줬네. 이거면 됐어요”


미리 좌석에 둔 물병을 가리키며 필요 없다고 만류하시더니, 가방에서 뭘 꺼내셨다.



“이거 승무원들끼리 나눠 먹어요. 넉넉하게 산다고 했는데,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이네.”


종이봉투에 투박하게 담긴 것은 최근 게이트 앞에 새로 생긴 가게에서 사 오신 꽈배기와 찹쌀 도넛였다.


“다들 좋아하려나 모르겠어. 맛있어 보여서 내 거 사는 김에 넉넉히 사 왔는데.”


스무 명 가까이 탑승하는 대형기 비행의 승무원의 인원을 가늠하여 정말 넉넉히 담아 오신 꽈배기를 한가득 건네받고선 나는 전 날부터 긴장했던 것이 사르르 녹는 것을 느꼈다.


사실 지상에서의 첫 대면, 첫인상에서 책잡히면 열세 시간의 비행 내내 괴로울 것이라 특히나 더 조심스럽고 긴장한 채로 다가가 인사를 드리기 마련인데, 아침 비행이라 일찍 출근하느라 공복인 내게 두툼한 꽈배기 봉지는 모든 벽을 허물게 하는 마법의 지팡이와도 같았다.


그때부터는 안면 근육이 내 마음처럼 말랑말랑 녹아서 풀어지고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노력해 지어내는 미소가 아닌 찐 미소가!


“정말 잘 먹겠습니다! 다들 너무 좋아하실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비행 내내 별 것 아닌 서비스에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으시고, 칭찬해 주셔서 일하는 느낌보다는 기운을 받는 느낌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따뜻한 배려와 칭찬 덕에 더 잘해드리고 싶고 서비스에도 진심을 더 꾹꾹 눌러 담게 되었다.


사실 이 날의 비행에서 만난 회장님과 또 다른 대표님 모두 승무원인 내가 다 감사할 정도의 매너와 태도를 보여주셔서 일을 한다기보다 ‘부자 견학’을 한 느낌이었다.



코로나로 불어온 재테크 광풍 열기를 따라 나도 ‘자기 계발서’ ‘부자 되는 법’ ‘부자 이야기’ ‘돈 이야기’ 같은 책을 열심히 읽었었는데 책에서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이나 태도를 눈앞에서 체험하는 날이었다.

세 가지로 요약해 보자면 이러하다.





첫째로 모두 ‘감사’, ‘칭찬’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 모두가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 ‘베풀어줘서 너무 고마운 것’으로 변해있었다.

일을 하는 나도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그들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가끔은 기계적으로도 변하는데, 이렇게 매 코스마다 감사와 칭찬으로 대해주니 일하는 나도 그 서비스에 진심을 다하고 정성을 들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것이 선순환이 되어 그들은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팀장님과 함께 하기 인사를 할 때에는 팀장님께 담당 승무원을 칭찬해주는 센스도 발휘해 주신다. 그리고, 외국인 승객의 경우는 정말 엄청난 리액션으로 모두가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엑설런트"를 남발해 주셨다.)


둘째로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모두 너무 깔끔했다.

식사를 마친 식기는 내가 정리하기 쉽게 정리해 둔다거나 내가 다가가면 옆으로 밀어 내가 회수하기 쉽게 배려하는 태도를 보인다. 또한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온 뒤의 화장실 상태도 그날의 비행에선 내가 따로 손댈 필요가 없이 깔끔했다. 다음에 이용할 사람을 배려한 깔끔한 상태로 정리되어 있었다.

특히, 아까 언급한 회장님은 착륙이 임박하자 모든 자리를 정돈하고 지상에서 제공했던 모든 서비스 아이템과 본인이 사용하신 담요를 칼각으로 맞추어, 열세 시간 동안 누가 누워서 쉬었던 자리라고는 보이지 않게 정리해 두셨다.


물론 이런 태도를 보이는 손님이 처음인 것은 아니지만 책에서 본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라는 명언이 떠오르고 “부자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라던 타이탄의 도구가 떠오르면서 더 눈에 담게 됐다. (역시 세상은 내가 뭐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더 확대되고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셋째로 사사로운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빈 화장실을 안내하는 중에 다른 손님이 휙 먼저 들어가 버려도, 오늘 어떤 아이템이 부족해도 안절부절못하지 못하고 세상이 무너진 듯 구는 것은 승무원인 나뿐이다.


“괜찮아요. 나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긴 장거리 동안 식사를 한 번 밖에 안 하시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배고프진 않으시냐 다른 거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시냐 묻는 것도 나뿐이다.

그들에겐 그저 작은 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 휴식보다는 덜 중요한 일인 것이었다.


“아니 내가 낸 돈이 얼만데!” “저 사람은 주고 나는 왜!”

라고 불끈불끈할 시간에 그냥 제일 중요한 ‘잠’ ‘휴식’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책으로만 보고 유튜브로만 보고 듣던 성공한 사람들의 태도, 성공한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눈으로 보아서 신기하고 더 열심히 집중해서 관찰했다.

그리고, 정리라면 정말 쥐약인 내가 호텔에서 쉬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침대 이불을 탁 - 펴서 정리하고 화장실에 물기를 닦고 수건을 따로 모아두고 한 바퀴 점검하고 나오는 일을 했다.

내 뒷정리를 하느라 삼십여 년을 고생하신 엄마가 보면 박수를 칠 행동이다.

그동안의 내 행태가 생각나서 왠지 뻘쭘하고 어색한 행동이었지만 왠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생활하고 지내다 보면 나도 사람을 끌어당기고 좋은 영향력을 당겨오는 ‘성공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아서 어색함을 이기고 실천해 보았다.


오늘도, 일을 통해 나는 많은 걸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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