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일을 회상해 본다.
부산 프로젝트는 나의 첫 출장 프로젝트였다. 본사에서 그냥 놀릴 수 없어서 인지 웹 개발자라고 하는 나를 업무도 개발해야 할 언어도 익숙하지 않은 곳에 투입했다. 사회 아직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은 시기였기에 출장에 대한 경비, 식대등에 대한 지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받지 못하고 갔는데 나중에 출장비, 교통비등을 정산받을 때 난감함이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개발자를 위한 숙소를 PM께서 알아봐 주실 때 아침, 저녁이 제공되는 하숙으로 안내를 해 주셨다가 같은 층에 함께 지내는 40대 아저씨가 공용 화장실을 사용할 때 휘파람을 분다고 했더니 옮겨 주셨다.
당시 숙소로 지원되는 경비등에 대한 사항을 몰랐기에 PM께서 고심하며 지낼 곳을 알아보고 있는지 몰랐다. 아마도 일인당 지원되는 숙소에 대한 경비가 얼마 되지 않아 함께 내려온 우리가 묵어야 할 곳으로 하숙에서 호텔이 아니라 장급 여관으로 옮겨 주신 거 같다.
부산에 어디였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일하는 사무실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호텔? 등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하숙집에서 난 엄지손가락 만한 바퀴벌레를 처음 보았다. 부산에서 지내면서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 경험을 했던 거 같다.
서울에서 내려온 직원은 대리, 나, 신입사원으로 대리와 나는 같은 방에서 지내고 신입사원만 남자직원이어서 따로 지냈다. 가끔씩 다른 남자분들이 지원해 주러 내려오면 신입사원과 함께 지냈다.
같은 방에서 대리와 내가 지내니 서로 맞지 않는 부분도 발생하여 나중엔 대화도 잘하지 않는 관계가 되었다.
부산에서의 첫 출장 생활은 잦은 회와 부산 음식을 경험해야 한다는 PM님의 생각으로 난 어려움이 좀 있었다. 물컹물컹한 느낌의 회를 전혀 먹지 않던 내가 서비스로 제공되는 다른 음식이 없는 회만 나오는 횟집은 정말 처음엔 곤욕이었다. 회도 안 먹고 매운탕도 비린내가 나서 안 먹기에 밥과 간단히 나오는 반찬 가끔씩은 맨밥만 먹기도 했다. 하지만 몇 개월간의 생활이고 회식 때 자주 회를 먹으러 갔기 때문에 주위에서 권하는 회를 안 먹을 수 없었다. 결국 상추와 초고추장, 쌈장을 잔뜩 넣어 회를 먹기 시작했고, 회를 잘 안 먹는 나에 대한 주위의 배려로 회를 먹을 땐 정말 싱싱하고 회가 맛있다고 하는 횟집으로 데려가 주셨다. 그때 먹었던 회는 쫀득쫀득한 식감으로 종류는 정확히 모르지만 나중에 서울에서 회를 먹을 때 부산에서 먹었던 식감의 회를 먹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그래도 지금도 매운탕은 잘 안 먹는다. 회는 부산에서 좀 익숙해져서 누군가 먹으러 가자면 지금은 잘 먹는 편이 되었다.
아침을 꼬박꼬박 먹던 나는 대리와 불편해지면서 출장 온 사람들과 함께 출근하지 않고 먼저 일어나서 좀 일찍 출근하며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에서 재첩국을 주로 먹고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일하던 회사 앞에 어묵집에서 가래떡꼬치도 먹었던 기억, 순대를 된장에 찍어 먹던 생소한 경험, 꽃게를 좋아하던 나는 저녁때 먹으러 가는 식당에서 꽃게탕을 시켜 하나하나 발라 먹으며 밥 먹는 시간을 끌어서 가끔씩 잔소리를 들었던 기억등.. 먹는 것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른다.
한 번은 점심 회식을 하는데 수육을 먹으러 갔다. 음식을 많이 가리던 나는 수육도 그다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으나 먹으러 갔을 때 함께 일하던 직원이 뭔가를 먹어 보라고 권하며 '여기를 꼭 찍어서 먹어야 해'라고 했던 적이 있다. 어떤 부위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그 직원이 권한대로 가운데 구멍 같은 곳이 있는 곳을 젓가락으로 찍어서 맛을 보았다. 그러니까 직원이 '연씨가 소 거시기를 꼭 찍어서 먹었다'라고 회사 홈페이지에 올려야겠다고 놀리기 시작했다. 그 직원이 권한 부위는 소의 소중한 부위였다고 한다. 그래서 구멍도 있었고. 결국 그 직원의 장난으로 난 그 부위를 먹게 되었고 서울에 있는 다른 직원들에게까지 알려져서 두고두고 회사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주말에 집에 돌아가지 않고 부산에 머문 적이 있는데 그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회사에서 1박으로 양산 쪽으로 야유회를 가신다고 하시면 함께 데리고 가주신 적이 있다. 가서 술을 엄청 마셔서 필름도 끊기고 다음날 돌아다니는데 주위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속이 아파서 엄청 고생한 기억도 있다.
아~ 귀중한 경험 중 현업의 배려로 홍콩 컨테이너 운반 배인 EverGreen에서 점심을 대접받은 적이 있다. 2000년이 되기 전으로 그때 들은 이야기로는 배에 여자를 태우지 않는다고 했다. 부사장님 배려로 프로젝트 팀원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 Ever Green 배에서 점심을 대접받으러 가서 선장님도 뵙고, 컨테이너를 선적하기 위해 배의 균형을 잡는 시스템 등을 보며 배에 올라가서 구경을 하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배를 둘러보고 있던 팀원들과 나는 배 밖을 보다가 PM님께 '배가 기울었어요'라고 이야기를 했다가 혼난 기억이 있다. 당시 상황이 그렇게 위급한지 모르고 마냥 신기하고 즐거워했는데, 배가 정박하여 컨테이너를 고정시켜 놓았던 부분을 풀어놓고 있었는데, 옆으로 다른 배가 지나가면서 파도가 가까이 일면서 배의 균형이 흔들렸고 컨테이너가 바다에 떨어지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였던 것이었다. 부산에서 처음 발생한 사고였다고 한다. 신문과 TV에서 취재하러 오고 바다에 떨어진 컨테이너는 며칠이 걸려서 끌어올렸었다고 한다. PM께선 당시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배가 완전히 뒤집힐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나중에 말씀해 주셨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나는 배가 기울어서 마냥 신기했고 익은 멜론의 그 맛이 잊히지 않는다. 배가 균형을 잡기 위해 컨테이너를 배에 실을 때 빈 컨테이너를 배치하기도 한다는 사실과 그때처럼 컨테이너가 바다에 빠질 경우는 대비해 보험도 들어 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내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다른 분야의 일을 배우게 되는데 그때는 컨테이너 선적에 대한 부분을 알게 되었던 귀한 경험이었다.
첫 출장 프로젝트였던 부산 프로젝트는 매일 야근을 하였고, 주말에도 집에 못 오는 경우도 많이 있었지만 PM께서 잘 마무리하기 위해 우리를 챙겨 주셨고 현업분들은 너무 좋은 분들로 일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게 배려해 주셨던 좋은 추억으로 기억된다.
PM께서는 항상 일을 시키시면서 말씀하셨다. '일을 시키려면 잘 먹어야 한다'라고 그래서 우린 먹는 건 정말 매 끼마다 빼먹지 않고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PM께서는 인생 조언으로 '남자든 여자든 결혼 전에 실컷 놀아야 결혼해서 가정에 충실하다'라고 '실컷 놀아본 사람과 만나라'라고 충고를 하셨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복귀하여 출장비 정산, 급여등을 받으면서 회사의 정책이 미리 설립되어 있지 않으면 출장비 및 교통비 등은 회사 맘대로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PM께서 식대 및 숙박비를 먼저 계산하시고 회사에서 정산받기로 했었는데 그 부분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사 사정은 알고 보니 IMF시기가 정리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직원들 급여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자금의 어려움이 있는 상태로, 교통비와 출장비 지급은 처음에 부산에 내려갈 때 이야기 했던 금액등으로 정산받지 못했고, 급여도 50%만 지급되기도 했다. 나중에 못 받은 50%를 받긴 했지만 회사 자금 사정이 그렇게 좋지 않은지 몰랐었다.
추후 정산에 대한 부분으로 회사에 대한 실망감도 발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