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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을 바라보는 관점 Sep 09. 2024

그는 이제 제대로 서지도 못한다.

17살 노견의 마지막 이야기

이젠 잘 서지 못한다

그의 나이는 17살이다. 그는 푸들이다. 개다. 귀도 들리지 않는다. 냄새도 잘 못 맡는다. 눈도 잘 보이지 않는다. 푸들의 다리는 몸집에 비해 가늘다. 그 역시 젊은 시절엔 잘 뛰어다녔다. 이젠 나이 들어 뛰는 건 꿈도 못 꾼다. 겨우 서 있기만 한다. 그 역시 힘들어서 헉헉거린다. 

생리적인 현상만이라도 스스로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일어서려 노력한다. 겨우 주인의 도움으로 섰을 때 패드를 찾아다닌다. 패드를 찾고 20여 분간 돌다가 겨우 볼일을 본다. 쓰러지고 주인이 세워주고 또 쓰러지기를 반복한다.


뒤쪽의 두 다리에 힘을 주지 못 한 지 좀 되었다. 앞다리도 이젠 힘이 별로 없다. 겨우겨우 네다리로 비틀비틀 되며 걸음을 옮길 정도다.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고자 할 때 네다리로 일어서려고 힘을 내본다. 하지만 결국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있는 상태로 헐떡인다. 주인은 그를 세워준다. 겨우 주인이 잡아서 세워주면 힘을 내서 네다리로 서본다. 그리고 패드를 찾아 돈다. 30분 이상 돌고 겨우 볼 일을 본다. 잘 보이지 않고 냄새도 맡지 못해 패드에 조준하지 못한다. 그렇게 볼일을 해결한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주인 쪽을 쳐다본다. 

그는 인간을 그래도 많이 알고 있는 개다. 


인간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을 아는 것처럼 오만을 떤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나이가 들든 그의 생명 에너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인간은 모른다. 인간은 인간 자체도 제대로 모르긴 한다. 그러면서 다른 지구의 생명체에 대해서 항상 오만을 떨 뿐이다. 암튼, 인간은 개에 대해서 완벽히 알지 못한다. 


그의 시력이 어떻게 보이는지 주인은 모른다. 뿌연 눈을 들어 주인을 바라보면 주인은 보이긴 하나 궁금해한다. 그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16살 때부터 이다. 

갑자기 체력이 훅 떨어져 뒷다리에 힘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주인은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갔으나 의사는 해줄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나이가 든 것이다. 그것도 많이 든 것이다.      

이젠 그는 거의 옆으로 누워있다. 주인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서지도 못한다. 

그나마 볼일을 보고 난 후는 편안히 누워있다. 

생리적 현상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든 일어서 보려고 한다. 

뒷다리가 피가 날 정도로 일어서 보려고 노력한다. 


옆으로 누워있다 보니 일어서려 할 때 뒷다리에 힘을 준다. 뒤쪽 두 다리는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옆으로 계속 미끄러지니 뒤 두 다리 발 옆이 까져서 피가 난다.      

주인이 24시 그 옆에서 지켜보지는 못한다. 주인이 그를 보았다. 그는 일어서려 노력해 바닥에 피가 묻어 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인은 그를 또 세워준다. 비틀비틀 그는 돌아다닌다. 돌아다니다 네다리가 버티지 못하면 그냥 주저앉는다. 

17살 푸들로 남은 삶의 에너지 있을 때까지 온전히 살아 보려고 노력한다. 쉽지는 않다.      

주인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주인 냄새가 맡아지면 그 옆에 있으려고 노력했다. 이제 그 냄새 맡기도 어려워져 주인이 옆에 있어 준다. 그럼 그는 힘없는 네다리로 주인에게 기대기도 한다. 주인은 그의 따뜻한 체온을 좋아한다. 그는 주인 옆에 앉아 있길 좋아했다. 주인이 바닥에 앉아 있으면 주인 무릎에 살을 맞대고 엎드려 있었다. 그는 이제 예전의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한다. 

그는 제대로 서지도 못하기에 혼자 움직이기 힘들다. 그는 이렇게 나이가 들었다. 


주인은 그를 보며 노년을 생각해 본다. 자신이 노년이 되어 체력이 다했을 때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지 생각한다. 삶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들의 뜻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잠들 때 조용히 가길 모든 생명은 바라지 않을까?

주인은 그 역시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모두 몰아 영혼이 그의 몸을 제대로 떠날 수 있길 바란다. 

아직은 음식으로 그는 에너지를 보충한다. 네다리는 그가 원하는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지만, 생의 욕구가 남아 있다. 그는 오늘도 주인이 준 음식을 먹었다. 

생리적 볼일을 끝내고 다시 옆으로 누워 주인을 뿌연 눈으로 쳐다본다.      


한 달 정도 후...

이틀 전부터 그는 뒷다리를 전혀 쓰지 못한다. 이젠 볼일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주인은 자고 일어나 그를 보니 그가 누운 자리에서 볼일을 보았다. 주인은 뒤처리를 해주었다. 온몸에 오줌을 묻혔기에 주인이 열심히 닦아주었다. 그는 이젠 음식도 안 먹는다. 물도 안 마신다. 주인은 고민 중이다. 그를 보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에너지를 소진할 때가 다가왔음을 주인은 알았다. 뒤쪽 두 다리는 쭉 뻗어지고 허리를 구부러져 있다. 앞 두 다리도 일부 흔들리고 있다.      

지쳐가는 모습


그는 이생을 마무리했다. 주인과의 인연도 정리되었다. 그는 원래 부산 어딘가에서 키워졌었다. 그가 주인에게 올 땐 부산 어느 동물병원에 버려진 강아지라고 했다. 전에 키우던 누군가 놓고 갔다고 한다. 버려지는 강아지를 구조하시는 분이 그를 구조했다. 임시보호 신청을 했던 주인이 그를 맡았다. 새로운 주인이 나오지 않아 주인이 그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인연이 된 그는 주인과 12년을 살았다. 

처음 주인에게 왔을 때의 모습

추정 나이 5살 때 주인과 만나 12년을 함께 살았다. 

주인과 그는 이생에서의 인연을 마무리했다. 주인은 그를 보냈다. 그 역시 주인을 떠났다. 

주인에게 따뜻한 체온을 나누어 주던 그는 주인 곁을 떠나 자신의 영혼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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