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게 뭐지?
수수는 안에게 연락을 받았다. 안은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수수와 안은 서로 사회생활 초년생일 때 만난 친구다.
함께 회사에서 교육받으면서 친해진 사이다.
수수는 그 회사를 그만두고 계약직으로 갔다. 안은 회사를 계속 다녔다.
안은 몇 년 동안 그 회사에 다녔다. 이후 회사 사정이 안 좋아져서 다른 회사로 이직했었다.
수수와 안은 자주 만나지 못했다. 서로 일이 너무 바빴다.
간간이 안부로만 서로 잘 지내냐고 했다.
수수는 계약직으로 여러 곳을 다니며 일을 했다.
안은 한번 들어간 회사에서 진득하니 있으며 일을 했다.
그런 안은 함께 일했던 분과 새롭게 시작하는 회사로 이직을 했다.
안도 수수도 각자 일에 매진하여 서로 더욱 만나기 힘들었다.
그러던 안에게 연락이 왔다. 회사를 그만두고 쉬고 있다고.
수수 자신은 미친 듯 달리는 걸 그만둔 상태였다.
안을 만났다. 안은 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공황장애’였다
수수는 깜짝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수수는 물었다.
안은 찬찬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냥, 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거 같아.“
”그냥 스트레스가 아니었나 본데?“
”회사에 새로운 팀장이 개인적으로 친하던 사람이 되었어. 같이 일은 안 해 보고 다른 팀으로 서로 친하게 지냈던 사이야. 함께 일하게 되어 좋아했어. 내 위 팀장이 되어 좋아했었는데……. 개인적으로 친한 것과 일을 하면서 보게 되는 사이는 다른가 봐. 일을 함께하면서 많은 차이가 생겼어.“
안은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할 때 그 사람은 나와 매우 다르더라고. 개인적으로 친했기에 더 혼란이 왔어.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할 정도로. 회사를 옮기며 함께 갔던 상무님과도 이야기를 나눠봤어. 근데, 상무님은 나에게 말하더라고. 사회 초년생도 아니고 별일 아닌 건데 힘들어한다고. 그 사람이 상사고 맞춰서 일해야지 하더라고. 난 점점 일을 맞춰가기 힘들었고, 그걸 마음속에 담아 두다가 내게 문제가 좀 생겼어. 그래서 결국은 회사 그만두었어.“
안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정말 열심히 일한 거 같은데…. 상무님과 상담하면서 느꼈어. ‘나를 이렇게 이해해주는 못하는 분들과 일을 함께 하고 있었나’란 생각이 들더라고.“
수수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회사 시작하고, 나는 그냥 시작한 그곳이 좋았어. 뭔가 다들 새롭게 시작하면서 열정에 쌓여서 일하는 그 느낌이 좋았어. 서로 의지하고 서로 믿어주던 그 느낌이. 회사는 어느 정도 성장하고 안정적이야. 근데, 내가 불안정이 되었어. 상사를 믿고 가야 하는데 믿음이 안 생겼어.
일도 일부를 나에게 떼어서 맡겼어. 내가 맡은 일이기에 간섭을 덜 받을 줄 알았어. 일하는 스타일이 너무 달랐거든. 근데 팀장이기에 간섭은 계속 들어왔어. 내가 점점 바보가 되어 가는 거 같더라고. 내 의견을 이야기했지만, 어린아이가 투정하는 식으로 취급했어. 점점 말을 더 안 하게 되었어.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나 자신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어.“
수수는 안을 다시 찬찬히 봤다. 안은 얼굴이 많이 상해있었다. 살도 쪘다.
안은 그동안 무척 힘들었던 것이다.
안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가 그동안 나 스스로 몰랐는데, 사람들과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나를 너무 눌렀나 봐. 내가 나 자신을 너무 힘들게 했나 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문제였던 거 같아.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우울증약을 먹음 진짜 신기하게 푹 꺼져가던 나의 기분이 더 가라앉지 않았어.“
안은 약을 처방받아 좋아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약을 먹으면서 약의 효능에 놀랐어. 약을 먹기 전까지 난 계속 생각에 생각이 이어갔거든. 가슴은 두근거리고 뭔가 답답했어. 이빨이 안 좋아서 치과에 갔는데 치과에서 얼굴에 씌우고 치료하는데 그것도 못 하겠더라고.“
안이 이렇게 자신감이 없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안은 그렇게 나서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해 나가는데 못한다고 움츠러드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 안이 변해 있었다. 뭔가 어두워졌다. 뭔가 생기를 잃었다.
그 무언가 딱 잡아서 말할 수 없는 내가 잘 모르는 안이 되어 있었다.
수수는 안타깝고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상무님은 ‘휴직하고 좀 쉬었다가 올래?’라고 하셨는데, 그냥 그만두었어. 뭔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 그곳에서, 나에 대한 평가가 그 수준인 것도 싫었어. 지금은 병원 다니며 운동하고 있어. 나 운동도 너무 안 했나 봐. 살 많이 쪘지?”
수수는 웃었다. 뭐라고 안에게 어설픈 위로를 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나는 관계에서 ‘좋은 게 좋은 거야’하고 항상 살았는데…. 그러면서 상대에게 맞춰주었던 나 자신이 문제였던 거 같아. 어느 순간 내가 없더라고.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잘 표현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내가 정말 싫은 것도 그냥 넘어가길 바라더라고. 근데, 내 속에서 그걸 받아들이는 데 지쳤나 봐. 내가 더는 못하겠다고 터진 거 같아.“
수수가 알던 안은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았다.
안은 원래 자신의 의견도 당당히 말했다.
자신감도 있었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일도 즐겼다.
수수가 알던 안은 그랬다.
근데, 지금 안이 자신을 설명하는데 다른 안을 설명하고 있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아니 새로 팀장이 오면서, 뭔가 마음이 정말 너무너무 답답했어. 사실, 일하면서 내가 일하는 사람들과 지내기도 힘들었어. 내가 일을 할 때,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이 하는지 안 하는지 내가 계속 확인하고 있더라고. 그게 힘들어서 팀장도 못 하겠다고 했던 것인데…. 내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는 팀장과 불협화음이 자꾸 발생하니 그 역시 힘들더라고. 팀장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 팀장에 대해서 불편해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힘들었어. 나는 그 팀장을 옹호해줘야 했고, 밑에 있는 친구들도 위로해줘야 했거든. 그들에게 팀장이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사실 나 역시 그 행동에 불만이 있으면서. 내가 팀장을 믿지 못하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겐 팀장을 믿고 따르라고 해야 했어. 나보다 후배인 사람들 앞에서 팀장을 같이 욕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팀장을 믿고 일하라고 했지. 암튼, 생각해보면 내가 문제였어.“
안은 계속 자신을 탓했다. 정확히 안이 문제였는지 수수는 잘 모르겠다.
안은 자신이 문제였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수수는 정확히 안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었는지, 무엇을 안에게 탓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단지, 너무 자책하고 있다는 느낌만 받았다.
사람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모두 그 사람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분명 사람 관계에선 상호 작용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근데, 안은 자신만 탓하고 있었다. 수수는 안타까웠다.
안 자신을 그렇게 탓하고 몰아칠 정도로 안이 못난 사람도, 아니고 문제 있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수수가 아는 안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그날 안의 이야기를 듣고 수수는 헤어졌다. 수수는 안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수수는 안과 헤어지고 몇 달 만에 안을 다시 만났다.
안은 새로운 일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부담 없이 해도 되는 일이고, 자신도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고 했다.
완전히 새로운 일이었고 안은 조금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약도 이젠 끊어간다고 했다. 점차 약을 줄이며 마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했다.
다행이다. 안이 조금씩 자신을 찾아가고 있었다.
수수는 생각했다. 일하면서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다들 열심히 하는 건지?
결과를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해? 회사의 발전을 위해? 수수 자신도 생각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리는 것인지? 나는 무엇을 놓치고 살고 있는지? 살아가면서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라고.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수수는 계속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은 자신이 저렇게 만신창이 될 때까지 무엇을 위해 일했을까?. 나는 이렇게 달리는데 뭐 때문에 달렸을까? 월급을 더 벌기 위해?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나 자신이 만족하기 위해? 나는 진정 만족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에 대한 만족일까? 무엇에 대한 성취일까?‘
수수는 안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안은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오지 않았어. 부모님이 잘 지원해 주셨고, 학교생활에서도 어려움이 없었어. 성적은 항상 어느 정도 받았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었어. 졸업하던 시점에 제대로 졸업하였어. 그리고 입사해서 회사에 다닌 거지. 나 자신을 생각해보니 어렵거나 힘겹게 산 적이 없더라고. 일도 내 만족을 위해 한 거 같아. 누가 등을 밀면서 잘하라고 하지 않았어. 그냥 내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해 왔어. 그러면서 다른 이들이 회사에서 일할 때 이해를 하지 못하기도 했어. 일 할 때 ’왜 놀아‘라고 생각했거든. 그냥 난 그렇게 생각하며 나를 몰아갔어. 그리고 좀 지쳤던 거 같아. 이젠 놀려고. 나도 놀아보려고 해. 나 그동안 제대로 놀아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 어릴 때도 학창시절도, 회사생활에서도. 난 노는 걸 몰랐더라고. 놀아 본 적이 없어서 노는 걸 몰라. 이제 정말 놀아보려고 해.‘
안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수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놀 줄 아나? 노는 게 뭐였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