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우리 부부는 모른다.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부모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선 솔직히 모르겠다.
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태어나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있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돌보았다. 육아. 아이를 돌보는 시점.
3세까지의 시기엔 아이 혼자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3세까지는 양육자가 아이에게 절대적 안정감과 신뢰감을 줘야 한다. 자신이 안전하다는 마음을 갖고, 자신을 지켜주는 양육자와의 유대감 속에서 아이는 양육자의 품보다 넓은 세상을 알아가려는 호기심을 갖게 된다.
즉, 아이 자신의 탐험을 시작한다.
걷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면서 호기심을 충족해 나간다.
4세가 되어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겼다. 아직은 혼자 노는 시기이지만 다른 이들과의 관계 확장이 필요한 시기다. 가정이란 사회에서 보육시설을 통한 확장된 사회를 아이는 경험한다. 이런 육아가 지나면 교육을 하는 시점이 온다.
어떤 교육을 해야 하나?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나를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가 5세가 되면서 아이를 어떤 교육 환경에 두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부모인지도 고민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았다고 부모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시점이었다.
아이를 교육하는 부분을 고민하며 책을 읽고 아이가 교육받는 환경이 어떤 것이지도 살피게 되었다. 내가 경험한 어린 시절의 교육 환경을 기억해 보고 아이가 받게 되는 교육 환경 둘러보게 되었다.
부모가 되기 전엔 관심도 없던 부분이다. 아이들의 교육 환경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무엇을 교육받고 있는지도 관심을 기울지 않았다. 내 삶과는 무관한 부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부모가 돼서 다음 세대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부모로 우리가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아이는 어떤 사람으로 키우도록 노력해야 하는지도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어떤 부모 역할을 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했다. 아이 주변의 부모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한편으로 놀랬다. ‘남들처럼 하면 돼요.’라는 답변. ‘남들’ 그 ‘남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대부분이 가는 길이 편안한 길일까? 일부 부모는 아이의 청사진을 그려 놓는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어떻게 공부하고, 중학교 때 어떻게 공부해서, 대학을 가기 위한 고등학교는 어떻게 공부해야 한다고. 이렇게 말하는 부모 중 ‘무엇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없다. 오직 ‘방법’만 있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무엇을 왜 배워야 하는지, 그러면서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부모가 되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우선,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 그러면서 사람이 무엇인지도 나 자신에 묻게 되었다. 나 역시 사람이 무엇인지 지금도 모른다.
남편 역시 사람이 어때야 하는지 모른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 현시점엔 사람을 어떻게 규정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뇌만 가지고 있으면 사람일까? 복제된 생명체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어디까지 사람으로 규정을 지어야 할까? 남편과 나는 아직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삶도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우리 부부는 아이 성장의 기준을 잡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부부가 합의점으로 찾은 건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였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사람답게’ 살아가길 바란다. ‘사람’ 이에 대한 정의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 막연히 우리 부부는 ‘우리가 경험한 교육은 아니다’라며 대안 교육을 찾았다. 그러던 중 발도르프교육을 알게 되었다.
부모가 만든 그 어떤 모습이 아닌 ‘온전히 아이 자신의 모습으로 자랄 수 있도록 교육한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발도르프교육에 대해서 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는 발도르프교육 환경에서 3년간 학교생활을 했다.
아이의 교육 환경 덕분에 우리 부부도 배우게 되었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인간으로 무엇을 배워야 할지.
부모가 모르면 아이에게 알려 줄 것이 없다. 아이가 성장하는데 단순 지식만 얻어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사실, 부모가 아이에게 알려 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우리 부부는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모른다.
단지 부모가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일부의 지혜만 아이에게 알려 줄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약간의 조언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간략한 조언만 할 수 있다. 우리 부부가 경험해서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아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선택할 때 조언해 줄 수 있는 부모. 우리 부부는 이것만이라도 할 수 있길 꿈꾼다. 이런 조언을 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길….
아이가 사람으로, 인간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아직 인간, 사람의 정의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에게 서로 좋은 기운을 전하고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이게 우리 부부가 아이에게 교육해야 하는 내용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
아이가 이런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면 우리 부부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우리 부부는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여전히 헤매고 있고 실수도 한다.
부모 역할을 처음 하며 우리 부부도 배워가고 있다. 아이는 계속 성장하고 변한다. 이에 맞춰 우리 부부도 부모로서 성장하고 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끔 아이 성장에 발맞춰 부모로서 성장하지 못하는 때도 있다.
나는 사실 한쪽으로 사람이란 무엇일까? 인간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게 인간으로 사람으로 사는 것일까 하는 질문은 미뤄놓는다. 남편이나 나나 아직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이 정의를 우리 부부가 생을 마감하는 시점까지 알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나마 쉬운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이란 수식어를 붙여서 부모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에게 이런 역할을 알려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가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는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모른다. 그래서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우리 부부는 계속 아이의 부모가 되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