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되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서로 조율한다.
우리 가족은 정말 잘 싸운다.
아이와 엄마, 아이와 아빠, 엄마와 아빠. 서로 돌아가면서 싸운다. 우리 가족은 정말 잘 싸운다. 그러면서 화해도 잘한다.
사람들이 가족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하는지는 모른다. 내가 볼 때 결혼 했고, 아이가 생겨서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이들이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은 계속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배려하는 방법을 터득해 가야 한다.
아이가 10살이 되었다.
아이는 요즘 계속 말한다. “나 사춘기야.”라고
그러면서 우리 부부가 요청하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이는 자신만의 의견이 생겼고, 그 의견을 관철하고자 한다.
남편은 아이와 충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젠 버릇없이 하는 행동을 잡겠어.”라고 말하며 남편은 아이와 싸운다.
아이는 남편의 말에 모두 응대한다. 남편은 씩씩거리면서 “내가 나간다. 나가.” 화를 식히러 나간다.
아이는 아빠와 싸우고 가끔은 울면서 말한다.
“엄마, 아빠가 나한테 이렇게 행동했어. 아빠 혼내줘.”라고.
“아빠를 왜 혼내. 또 뭐 때문에 속상한 거야?”
“아빠가 내가 그만하라고 했는데 계속했어.”
아빠는 아이에게 장난을 걸었고, 가끔은 아이가 아빠에게 장난을 건다. 그렇게 서로 장난을 하다가 싸운다. 아이 기분이 좋을 때 아빠의 장난은 아이에게 잘 받아들이지만, 피곤하고 힘들 땐 격하게 반응한다.
특히, 아이가 저녁에 잠자는 시간이 다가오는 시점, 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와 놀고 싶은 시점엔 더 싸우게 된다.
아빠에게도 “그만해, 싫다고 하잖아.”라고 나는 말한다. “아니야. 애가 먼저 나를 세게 때렸어.”라고 답변하면서 아빠는 아이에게 맞대응으로 잡고 장난을 치고 있다.
장난으로 시작된 서로의 행동은 격하게 서로에게 화를 내며 싸운다.
“그래도 이렇게 행동하는 건 아빠에게 네가 선을 넘은 거지. 정말 아프잖아. 말은 왜 그렇게 하는 거야? 말이 너무 심하잖아.”
“아빠가 내가 그만하라고 하는데 왜 자꾸 하는 거야. 아빠가 먼저 시작했잖아!. 내가 뭘? 뭘 잘 못 했는데…?” 아이는 자기 잘못은 없다고 우기기 시작한다.
아빠와 아이는 싸우다가 “내가 나간다. 나가.”로 아빠가 화를 내면서 결국 나간다.
아이는 내 곁으로 와서 운다. 그러면서 말한다. “아빠 혼내주라.”라고.
“이건 네가 잘못했어. 아빠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잖아.”
“뭐야~ 엄마도 아빠 편이야. 아빠가 먼저 시작했단 말이야. 앙~~~.” 아이는 더 크게 운다.
“엄마도 싫어.” 아이는 더 화를 낸다.
나는 결국 아이를 다독거린다.
이제 10살.
어릴 때부터 아빠는 말했다.
“나는 아이의 친구처럼 지낼 거야.”라고. 그러면서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도 마냥 즐거워했던 아빠다.
점차 커가면서 아빠는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을 잡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이미 아이에게 아빠는 편하고 뭐든 받아 주는 존재다. 그런 아빠와 장난하다가 싸우면 절대로 아이는 아빠에게 지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부부가 받아들였던 아이의 행동은 남들 눈에 가끔 심하다 할 정도로 버릇이 없어 보인다.
나는 아이에게 말한다. “네가 엄마 아빠에게 편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좋은데, 다른 사람이 있을 때 말과 행동은 조심했으면 좋겠어. 엄마는 네가 그런 행동과 말을 해서 좋지 않은 말을 듣게 되는 게 싫어.”
10살이 된 아이는 이 말을 이젠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을 조심하려 한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변화하는 아이에게 맞춰가고 있다. 아이 역시 아빠, 엄마를 알아가고 있다.
엄마인 나도 화가 나면 아이에게 크게 화를 낸다.
아이가 어릴 때 어느 육아 서적에선 화를 내지 말라고 했고 어느 육아 서적에선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인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낸다.
대신 화를 내면서 아이에게 말을 조심한다. 내가 어떤 말을 내뱉고 있는지 그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면서 상처가 되는 말은 조심하려고 한다.
남편과 싸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함께 살던 초기에 남편과 나는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격했다. 그러면서 서로 심한 말을 주고받았다.
서로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가면서 아이 앞에서 싸움을 자제하다가 다시 우리 부부가 싸우는 모습도 보인다.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큰 목소리를 내며 싸운다. 그리고 시간을 갖고 화해를 요청한다.
아빠가 화를 식히러 나가면 엄마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음, 그랬구나. 그 부분이 네가 속상했구나. 매우 속상했어?”라고 아이를 다독거린다. 그리고 말한다. “근데, 아빠도 이 부분은 속상했던 거 같은데?”라고. 아직 어린 아이는 말한다.
“아빠가 먼저 사과해야 해.”라고. “엄마가 아빠 오면 그 부분은 사과하라고 할게.”
토닥토닥 아이를 잠재우고 나니 아빠가 돌아왔다.
“애가 이런 부분에서 화가 났데.” “애가 너무 버릇이 없어. 아빠한테 막말하잖아. 버릇을 잡을 거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버릇을 잡겠다고 한 것도 그때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빠는 다시 아이와 같은 수준으로 논다.
이렇게 아빠와 아이의 중재자 역할을 엄마가 한다.
엄마와 아이가 싸우면 아빠가 중재자가 된다.
“엄마가 이런 부분에서 화가 난 거 같아. 엄마 돌아오면 엄마한테 네가 사과해.”
가끔 아이는 내가 나가려고 하면 붙잡고 못 나가게 한다. 그러면 더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그래도 아이는 꼭 붙잡고 못 나가게 한다.
아이는 엄마인 내가 나가려고 하면 울면서 매달리고 바로 사과를 한다.
“엄마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엄마 지금 너무 화가 나서 네 사과를 바로 받지 못하겠어. 엄마 화가 좀 가라앉은 다음에 얘기하자. 엄마한테 좀 떨어져.” 나는 화가 나서 아이를 떼어 놓으려고 한다. 그럴수록 아이는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야. 나는 엄마 껌딱지야 붙어 있을 거야.”라고 하며.
어떨 때는 이런 아이의 모습에 화가 나다가 결국 웃기도 한다. 웃으면 화내던 나는 어디로 갔기에 아이의 그 행동은 수정이 안 되고 반복된다.
화가 날 때 우리 부부 모두 그 순간을 지나야 한다고 생각하며 집을 나가려고 한다. 소리 지르고 싸우다가 더 참지 못하는 이가 문을 열고 나간다.
그리고 좀 잠재우고 들어온다. 물론, 아이는 나가지 않는다.
우리 부부가 돌아가면서 주로 나간다. 특히, 아빠가.
우리 가족은 이렇게 싸우고 화내고 화를 식히고 화해를 한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또 가족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맞춰간다.
가족이란 모습이 어떤 게 제대로 된 모습인지는 모른다. 세상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함께 하는 이들이 서로의 가족 모습을 만들어갈 뿐이다.
우리는 이런 모습으로 우리 가족을 만들어가고 있다.
남들 눈에는 아이는 버릇없어 보이고 부부는 자주 싸우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가족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이가 커 가면서 우리 가족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가족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결혼했다고 가족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생겼다고 가족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서로를 알아갈 때 가족이 된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가족이 되어 가고 있다. 아마도 오늘도 우리 가족 중 누군가와 또 싸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