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끝나갈 무렵, 에세이 쓰기 강사가 되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친 뒤, 해가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눈이 귀한 남쪽에서 자란 나에겐 서쪽의 겨울은 여전히 낯설다. 해마다 이맘때면 마음 어귀로도 찬바람이 스민다.
"서쪽 살이 10년인데, 겨울만 되면 왜 나는 이방인 같을까?"
나는 습관처럼 중얼거리며 따뜻한 물을 컵에 가득 담았다. 식탁에 앉아 창밖을 보니 그새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너는 참 끈기가 없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뭘 시작해도 오래가지 못했고,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라며 중간에 포기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실 그 말은 나를 지켜주는 동시에 나를 가두는 말이었다. 핑계는 익숙했고 포기는 빠를수록 좋았다. 강하게 원하는 게 아니면 늘 핑계부터 만드는 사람, 그게 나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이 지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실패해도 좋으니 끝까지 가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
도전 없이 멈춰 있는 나, 이 상태가 더는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멈추는 데 익숙했던 나를 그 자리에서 조금씩 밀어내보고 싶어졌다.
가을 기운이 서서히 번지던 9월의 어느 저녁, 나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갔다. 팔에 스치는 바람이 꽤 서늘했다. ‘이렇게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나면 또 한 살이 더해지겠지.' 아이는 초등학생이 돼서 이젠 육아란 말도 무색한데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싶었다. 문득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조용히 올라오던 순간, 복지관 앞에 붙은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평생학습관에서 재능기부 강사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마음속에서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이번만큼은 너의 끈기를 잘 붙들어서 30대를 잘 정리해 봐.’ 돈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망설이는 삶을 살게 될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이력서와 강의 계획서를 쓰느라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 남편은 내가 뭔가를 준비하는 눈치였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묻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그의 조심스러움이 고마웠다. 며칠 뒤, 평생학습관에서 강사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남편은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너의 재능은 돈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아이 낳고 처음으로 서는 자리니까 경험이라 생각해.”
결혼 전부터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멋지다고 말해준 사람, 그 담담한 말 속에 담긴 진심어린 축하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10월은 숨 돌릴 틈 없이 바빴다. 처음 해보는 PPT는 유튜브로 독학하고, 강의안을 짜고, 원고를 다듬는 하루하루. 아이의 공부를 봐주고, 살림을 마치고, 남은 시간마다 노트북 앞에 앉았다. 식탁 위, 내 책상, 단골 커피숍… 그곳이 어디든 상관 없었다. 내가 준비한 건 글쓰기 기초와 문장이 좋은 에세이를 함께 읽는 수업이었다. 마지막 회차엔 수강생들이 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대학생 때 들었던 수업, 라디오 작가로 일했던 경험이 묘하게 녹아들었다. 그땐 몰랐지만 매일 쌓아온 시간이 이렇게 든든한 재료가 되어줄 줄은 정말 몰랐다.
11월의 첫날, 나는 새로 산 니트와 롱치마, 구두를 신고 강의실로 향했다. 수강 인원을 10명으로 정해뒀지만 다 왔을까? 한 명도 안 오면 어떡하지? 반신반의하며 문을 열었다. 끈기 없는 사람의 끈기 생성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여전히 서쪽의 겨울은 낯설고 진눈깨비는 불쑥 찾아온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던 그 시간을 떠올린다. 3년 전, 전업주부 8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세상에 나가려 끈기 없는 나를 다잡고 다독였던 그 시간을. 내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얼마나 애썼는지 알기에 더는 예전처럼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서툴러도 이번엔 끝까지 가보려 한다.
'끈기 없는 사람의 끈기 생성 프로젝트'
마흔을 앞두고 내가 증명해 낸 작은 기적. 이젠 그 기적의 다음 장을 쓸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