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맞이 청소를 하다 책장 구석에서 서류철 하나를 발견했다. 재능기부 수업을 준비하며 밤늦도록 다듬었던 강의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종이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자연스레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재능기부 수업 마지막 날,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내 탁자 위에 미니 초콜릿 하나가 놓여 있었다. 매수업 때마다 가장 먼저 도착해 수업을 기다리던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뜻밖의 선물에 가슴 한켠이 뭉클해졌고 초콜릿은 마치 금덩이처럼 보였다. ‘잘하고 있는 걸까’ 끝없이 의심하던 내 마음에 초콜릿이 속삭이는 듯했다.
‘괜찮아, 다음 장을 넘겨도 좋아.’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가끔은 아주 작고 조용한 응원이 다음 삶의 문을 열게 한다는 것을.
밑줄을 그으며, 서로의 기억을 읽다
그날은 장영희 작가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중 <초원의 빛과 물오징어> 편을 함께 읽는 날이었다. 내용은 작가의 친구가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시작된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초원의 빛>을 외우던 문학소녀 친구는 어느새 전업주부가 되어 저녁거리로 물오징어를 사는 자신을 돌아본다.
“찬란한 봄볕 속에 서서 물오징어 보따리 들고 재채기를 해대는 여자, 그게 바로 나라는 사실이…지금의 내 삶이 가치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물오징어 사는 내 손이 부끄럽지 않고 저녁이면 돌아올 가족이 있고, 나는 기억해. 그 시의 다음 구절을.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은들 어떠리.
우리는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남아 있는 것에서 힘을 찾으리.”
친구는 허기졌던 자신의 학창 시절과 지금의 삶 사이에서 결국 '오늘'을 살아가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한 페이지씩 돌아가며 이 글을 낭독했다. 그런데 내 앞에 앉은 그녀가 조용히 눈물을 닦고 있었다. 다들 글을 읽느라 고개를 숙인 탓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는 분명히 그녀의 눈물을 보았다. 함께 읽기가 끝난 후 각자 밑줄 친 문장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녀의 차례가 되자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전의 내 모습이 보여서… 눈물이 났어요."
나 또한 이 글을 읽고 눈물이 고인적이 있었기에, 수강생들에게 내 이야기를 해주었다.
“스물두 살에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땐 시가 참 좋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친구의 삶이 얼마나 공허하고 외로웠을지 알겠더라고요. 언젠가 제가 아이 이유식을 만들고 있을 때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어요. 서로 안부를 주고받다가 친구가 ‘요즘도 글 쓰니?’라고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그 문장을 읽자마자 그 자리에서 멍해졌어요. 밥풀이 묻은 티셔츠, 대충 묶은 머리… 주방 타일에 희미하게 비친 제 모습이 어찌나 낯설고 초라하던지. 그날 밤 화장대에 앉아 제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봤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이 문장이 떠올랐어요. '오히려 남아 있는 것에서 힘을 찾으리.’ 지금 내 곁에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 있고, 아이는 언젠가 자라겠지요. 오십이 되어서도 다시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때 써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더라고요.”
나의 고백이 닿았던 걸까. 수강생들은 자신도 그런 경험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혼자 읽을 때 문장에 밑줄을 긋는 것이 공감의 표현이라면, 함께 읽고 누군가의 고백이 더해질 땐 그 문장은 한 장면처럼 살아 움직인다. 그리고 저마다의 기억을 깨워 그때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가져다준다.
그녀에게 받은 미니 초콜릿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평생학습관을 나섰다. 은행잎으로 샛노랗던 도로는 어느새 겨울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초콜릿을 만지작거리며 다음 장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식으로 수업을 해보자'
나는 도서관과 교육 기관의 강사 자리에 지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내가 사는 지역의 도서관에서 비대면 수업 강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코로나 시기에 비대면 수업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내가 호스트가 되는 건 처음이었다. PPT를 혼자 공부했듯 화상회의 플랫폼도 배워보자 결심했고, 줌도 구글미트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력서를 다시 썼다.
아이의 겨울방학 동안 나는 아이가 학원에 간 사이에 화상회의 플랫폼 사용법을 익혔고, 전보다 늘어난 회차에 맞춰 어떤 책을 소개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방학이라 삼시 세끼를 만들고 동시에 살림과 아이 공부를 봐주면서 점점 지쳐갔다. 그러다 또다시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 결혼 전 라디오 작가였던 경험이 정말 이 수업에 도움이 될까?’
갑자기 내가 가진 지식이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담당자에게 보낸 메일을 멍하니 바라보며 발송 취소 버튼을 누를 것인지, 아니면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며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 나갈 것인지 고민했다. 그때 어디선가 읽었던 튀르키예 속담이 생각났다.
"지혜로운 여자가 강 건너는 방법을 찾을 무렵, 미친년은 이미 강 건너에 가 있다."
나는 어쩌면 지혜로운 여자가 되기보단, 이미 강을 건너고 있는 미친년이 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마음을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그날 이후, 나는 양말도 벗지 않은 채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나를 의심하고 검열했지만 결국 정식 강사로서 내게 주어진 10강을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온몸이 강물에 젖은 채 겨우 땅에 다다랐을 무렵, 내 안의 미친년은 깔깔대며 웃었다. 생각한 만큼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보람됐고, 생각 외로 내 적성에 맞는 일이었단 걸.
"다음 수업이 개설되면 꼭 연락 주세요."
그 말은 단순한 인사 이상이었다. 수강생들의 응원은 오랜만에 사회인으로서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래, 어디든 괜찮다. 그곳이 어디든 젖은 양말을 신고서라도 나아갈 수 있는 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