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처럼 글쓰기를 전공하고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던 그녀들, 결혼 후 아이를 낳은 뒤에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을까. 엄마라는 이름 안에서도 그때의 꿈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대학 시절부터 줄곧 글을 써왔고 라디오 작가로 일하면서 오랫동안 간직해 온 꿈을 절반 정도는 이루며 살았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라는 인생의 큰 전환점을 지나면서, 어느 순간 자연스레 글쓰기를 멈추게 되었다. 글 대신 잠이 더 간절했고 소설 대신 육아 서적을 읽는 일이 더 급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며 살다 보니 나는 마치 한 번도 글을 써본 적 없는 사람처럼 지내게 되었다. 글쓰기는 내게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능력이었다. 대학에 합격하고 생계를 이어가는 데 큰 힘이 되어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삶에서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몇 년 간 글을 쓰지 않았던 시간들, 나는 내 안의 작가를 완전히 잊은 채 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데뷔작『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쓸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낮에는 재즈바를 운영하고 새벽에 집에 돌아오면 부엌 식탁에 앉아 글을 썼다."
가족이 모두 잠든 밤 부엌 식탁에 앉아 조용히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도 창작을 놓지 않으려는 태도, 작고 사적인 공간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쓰는 그 자세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그의 책을 읽다 '키친 테이블 노블'의 정서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나는 지난 나의 밤들을 떠올렸다.
대학생 시절,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밤 열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리포트와 소설을 오가며 글을 쓰던 그 시간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순수하고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나는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주신 작은 책상에 앉아 밤 열 시가 되면 스탠드를 켜고 노트북을 열었다. 그 방은 마치 광활한 우주 속을 유영하는 하나의 작은 별 같았고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과제를 마치고 남은 시간에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소설을 썼다. 소설을 쓰고 싶어서라기보다 쓰다 보니 소설이었다. 그때의 나는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 낼 용기가 없었다. 대신 내 안의 복잡한 마음을 안고 살아줄 등장인물들이 필요했다. 창작 기법도 문학적 구조도 몰랐다. 다만 그때는 그런 글을 쓸 시간이 간절했을 뿐이다.
라디오 작가가 되고 나서도 사정을 비슷했다. 방송 원고를 쓰고, 책을 읽고, 프로그램 아이템을 구상하던 시간은 늘 밤에 이루어졌다. 퇴근 후, 피곤해도 화장대 겸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그 자리는 일과 꿈이 겹쳐지는 자리였다. 생계를 위한 글쓰기에는 여유나 공상의 틈이 없었다. 그 시간만큼은 최대한 집중했고 그렇게 써낸 원고는 돈이 되었다. 그리고 원고를 다 쓰고 남은 시간에는 다시 나만의 문장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사회인이 된 뒤에도 그 시간은 오랜 습관처럼 매일 밤 나는 같은 자리에 앉았다. 밤의 테이블 앞에서 나는 쓸 수 있는 사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고 그것이 내게는 큰 위로였다.
하지만 출산 후 내 하루는 송두리째 바뀌었다. 저녁이면 이미 피곤이 깊게 쌓여 있었고, 아이를 재우다 함께 잠드는 일이 많았다. 운 좋게 잠들지 않은 밤에는 거실로 나와 하루 내 쌓인 피곤과 굳은 몸을 스트레칭으로 천천히 풀어냈다. 그리고 다시 화장대에 앉아 오늘을 무사히 살아낸 나에게 말을 걸 듯 몇 줄의 일기를 적었다. 그때의 글쓰기는 일기가 전부였다. 그렇게 밤의 테이블은 사라진 채 화장대에 앉아 일기를 쓰는 나는 광활하고 적막한 우주를 외로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늦은 밤의 키친 테이블 노블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가 등교한 뒤 아침 아홉 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키친 테이블 노블'의 시간이 생겼다. 식탁에 앉아 갓 내린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시간, 밤의 고독과 절박함은 사라졌지만 대신 긴 호흡과 느슨한 숨결이 생겼다. 이제는 안다. 사라졌다고 믿었던 내 안의 작가는 단 한 번도 나를 떠난 적 없다는 것을.
"그녀들은 지금, 무엇을 쓰고 있을까?"
그 질문은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더는 미뤄둘 수가 없기에 이젠 내 이야기를 써야 할 차례임을 안다. 어쩌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침의 식탁 위에서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나의 이야기를 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