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아자르_《자기 앞의 생》
작가_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
책 소개_ '에밀 아자르'란 가명으로 이 소설을 발표한 로맹 가리는 프랑스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받은 유일한 작가이다. 파리의 빈민가에서 사는 주인공 '모모'는 자신을 맡아 키우는 로자 아줌마와 말동무인 하밀 할아버지가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창구이다. 모모의 눈에 비친 세상은 결코 다정하거나 친절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통해 사랑이라는 것을 배운다. 평생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도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 아프지만 감동적인 소설이다.
감상_ 이 책을 20대 초반에 읽었을 땐 모모를 향한 연민의 감정으로 읽었다. 생의 밑바닥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거친 생존력에 경외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은 너무 아프고 쓰라린 소설이었다.
모모는 부모가 누군지 궁금하다. 그래서 남몰래 그들을 기다리기도 하는데, 이런 마음은 그도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발작을 일으키면 엄마가 자신을 보러 올 것이라 생각하고, 물건을 훔쳐서라도 주목받고 싶어 하는 모모. 그는 나중에 커서 경찰이 될지 테러리스트가 될지 고민하는데, 만약 부모가 나타나 웃어주기라도 한다면 망설임 없이 경찰을 택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태어났을 때부터 내 옆에 아무도 없었다면, 나 또한 모모처럼 관심받기 위해 도둑질을 하고 강아지를 키우다가 남에게 팔아버리면서 몰래 울어버리는 일들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터져버릴 것 같으니까, 뭐가 뭔지도 모를 그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그것 말고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모모는 생이 걷어차버린 로자 아줌마의 인생을 끝까지 옆에서 지켜준다. 그는 '아무도 없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라며 로자 아줌마가 피난처로 삼았던 지하실로 데려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평안을 선물한다. 그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살았다. 둘 다 아무것도 아무도 없다는 공통점만이 그들을 살게 한 것이다. 그들의 생은 정말 외면받았을까? 그렇다면 '생'이라고 불릴만한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에밀 아자르는 이 책에서 희망과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희망은 갑자기 왔다 달아나버리는 것이고, 행복이란 것은 요물이고 고약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로자 아줌마와 모모, 하밀 할아버지를 통해 늘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라고 한 하밀 할아버지의 말처럼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주었고 사랑 그 자체가 되었다. 모모가 나딘 아줌마 네에서 사랑받고 다시 사랑할 수 있기를, 나도 내 곁의 사람과 내 앞의 생을 사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