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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곰 Mar 17. 2022

음악이 흐르는 집

일상을 더 풍성하게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스피커 전원 버튼을 누른다. 잠에서 깨지 않은 몽롱한 눈으로 그날 들을 음악을 고르는 게 나의 첫 일과다. 이런 습관을 들인 지 얼추 20년이 다 됐다. 고등학생 땐 일어나자마자 라디오를 켰고, 대학생이 돼서 노트북을 산 후로는 음악 사이트에 접속했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던 손이 마우스를 거쳐 이젠 음질이 좋은 스피커로 옮겨졌다. 그 사이 뽀얗던 내 손은 조금 거칠어졌으나 나를 위한 음악을 고르는 마음만은 주름지지 않은 채 그대로다.


주로 오전에는 재즈나 보사노바를 듣는다. 흥겨운 리듬이 몸의 세포를 깨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오후에는 팝송이나 처음 들어보는 음악을 찾아 듣는다. 낮이 주는 활기찬 에너지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 새로운 음악도 마다하지 않는다. 저녁에는 식사 준비를 하며 따라 부를 수 있는 가요를 주로 듣는다. 아이 식사, 책 읽어주기, 목욕 등 해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노동요'라는 폴더를 따로 만들었다. 이젠 아이도 '엄마 오늘은 무슨 음악 들을 거야?' 하고 묻는다. 예전에 들었던 음을 기억해 아이가 허밍을 하면 나는 그 곡을 찾아 들려준다. 그렇게 아이의 플레이 리스트도 조금씩 쌓이고 있는 중이다.




클로드 모네_포플러 나무 아래에서



친정을 생각하면 늘 TV가 켜져 있었다. 이젠 갈 때마다 소리가 조금씩 커져서 대화를 할라치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어렸을 땐 TV 소리에 묻혀 사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TV를 보며 식사를 하고 거실에서 저녁 드라마와 9시 뉴스를 시청하는 게 우리 가족의 일과였으니 다른 집도 다 그러할 것이라 생각했다. 방방 뛰던 사춘기를 지나 안으로 침잠하는 사춘기를 맞이했던 17살, 그때부터 나는 시끄러운 거실에서 내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책상에 앉아 라디오를 켜고 그 안에서 흐르는 음악을 들었다. 이리저리 주파수를 돌려가며 이런저런 음악을 흡수하며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대학생 때는 음악 사이트를 통해 음악을 들었는데 라디오에서 들은 음악을 기억해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상황이나 기분에 따른 선곡들은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요긴하게 쓰였으며 여행을 할 땐 둘도 없는 친구가 돼주었다. 처음 자취를 시작할 땐 일부러 TV를 사지 않았다. 시끄러운 남의 소리가 아닌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공간을 채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커서 본가를 떠올릴 때 '음악이 흐르던 집'이었다고 기억해 준다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쌓일수록 일상이 더 풍성해졌듯이, 아이도 그런 기분을 두고두고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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