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좋은 아이를 둔 엄마의 속사정

내가 둘째를 낳지 않기로 한 이유는 내 아이가 남편의 성격을 닮았기 때문이다. 외가의 예민함을 그대로 물려받은 나는 언제나 남편의 순함을 이기고 있었다. 그래서 임신 중에 종교는 없지만 매일 기도를 했었다. '어딘가에 신이 계신다면 제 아이의 성격이 제발 남편의 순함을 따라가게 해 주세요.'라고 말이다. 남편은 천성이 착하고 순한 사람이다. 얼마 없는 예민함이 남이 아닌 자신을 향해 있고, 화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져주고 마는 사람이다. 나는 임신 중에 이렇게 기도를 하면서 만약 첫째가 남편의 성격을 따라가면 외동으로 확정 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예민한 엄마와 예민한 자식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미 겪어 봤기에 나는 안간힘을 쓰고 기도했다. 다행히 어딘가의 신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아이는 천성이 착하고 순한 아이로 성장했다. 

그래서 내 아이는 어딜 가나 성격 좋다는 말을 듣는다. 덕분에 어린이집을 다니는 동안 사건 사고 없이 지낼 수 있었고, 어린이집 행사 때 원에 가면 본인의 아이가 내 아이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내 번호를 물어보는 엄마들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색하게 번호를 찍어주면서 속으로 크게 외치고 있었다. '내 아이는 제가 아니라 아빠의 성격을 닮았는데 어쩌죠!'

펠릭스 발로통_공놀이 

내 번호를 저장한 엄마들은 어김없이 며칠 후 우리를 본인의 집으로 초대했다. 처음에는 거절할 수가 없어 몇 번 초대에 응한 적이 있었다. 내 아이는 평소대로 행동하며 그 집 아이들과 잘 어울렸다. 우리를 초대한 엄마들은 나 또한 그러할 거라 생각했는지 그 성격 좋음을 보여달라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워낙 낯가림이 심한 나는 번번이 분위기를 다운시키고 어색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호감 있어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아닌 '아이'가 중간에 놓인 만남은 이렇게 늘 불편했다. 성격 좋은 아이를 둔 엄마는 사실 예민하고 이러저러한 인간관계가 피곤해진 사람임을 그들은 전혀 몰랐겠지만.

그런 일이 몇 번씩 반복되다 보니 내 번호를 물어본 엄마들을 아파트 상가에서 마주칠 때면 그쪽에서 먼저 못 본 척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살갑게 먼저 번호를 물어봤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자신이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말이다. 처음에 상처가 컸지만 내 아이는 여전히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또 성격 좋은 아이 엄마의 번호를 물어보고 있겠지'하며 잊어버리기로 했다.

시작은 좋았으나 최후는 처참했던 그간의 엄마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와중에도, 나의 이런 속 사정을 알리 없는 새로운 엄마들이 또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사회생활을 할 타이밍,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