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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곰 Mar 26. 2022

애틋한 밥상

당신을 돌보지 못해 미안해 




사실 오래 버텼다고 생각한다. 지인들의 코로나 확진 소식에 이어 시어머니까지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은 후, 코로나가 바로 코 앞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확진된 동료들의 일까지 처리하느라 고된 얼굴로 퇴근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서 '곧 있으면 우리도' 란 생각이 줄곧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며칠 전 새벽에 언뜻언뜻 보이는 남편의 실루엣에 마스크가 보였다. 새벽 운동을 다녀왔겠거니 했지만 표정이 좀 심각해 보였다. "무슨 일이야?", "자가진단 키트에 양성이 나왔어." 남편은 병원을 가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고 나는 작은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일주일 동안 머무를 곳에 생수, 일회용 장갑, 쓰레기봉투, 수건걸이 등등을 비치했고 인터넷에서 소독용품과 생수를 더 주문했다. C와 M사의 새벽 배송 장바구니에는 식재료를 잔뜩 담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월급날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한 달 식비가 금방 동이 났다.


지금 나는 남편에게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밥상을 매끼마다 차려주고 있다. 결혼하고 나서 이렇게 남편의 밥상을 정성스럽게 차려본 적이 있나 싶을 만큼 나 자신도 놀라는 중이다. 남편은 식사 때마다 문을 빼꼼히 열고 딸의 키티 테이블을 가져가는데 매번 헉하며 놀라고 있다. '그래 놀랄 만도 하겠지. 아침밥도 제대로 차려준 적이 없었으니까.' 아이가 잠든 후 식탁에 앉아 내일 식단은 뭘로 해볼까 생각하다 갑자기'진즉에 이렇게 차려 줄 걸'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동안 나는 독박 육아를 한다는 핑계로 주말 아침에 늦게까지 자면서 남편과 아이의 아침밥을 나 몰라라 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이해한다며 한 번도 '아침밥'이란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만 살 수 있었던 시기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나만큼 남편도 힘들어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_보름달





남편은 목이 좀 아픈 것 빼고는 큰 증상 없이 격리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오늘 저녁에는 비빔밥과 꽃게탕을 먹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방에서 노래를 크게 틀었다. 멀찍이 귀만 쫑긋해서 들어보니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였다. 영상통화를 하면서 왜 그 노래를 크게 들었냐고 물어보니 "처음 들어보는데 마음을 울리는 노래네"라고 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좋아했는데."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연애할 때가 생각이 났다. 이렇게 영상통화를 한지도 참 오랜만이었다.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_자우림 '스물다섯, 스물하나'



나는 그동안 내 힘듦이 너무 가여워 남편을 돌보지 않았다. 미안함에 괜히 노래만 반복해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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