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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라 Mar 27. 2022

아프지만 함께여서 괜찮다

슬기로운 격리 생활 





나도 결국 확진 문자를 받았다. PCR 검사 다음 날 아침, 핸드폰을 켜자마자 문자 소리가 울렸다. 이미 증상이 나타나고 있어서 양성인 줄 알았지만 왠지 문자를 보는 게 두려웠다. 나는 평소보다 아침 스트레칭을 오래 하고 물도 두 잔씩 따라 마시면서 문자 확인을 회피했다. 어차피 결과는 나왔는데 그 결과를 직면하기 싫어하는 회피 행동을 한 것이다. 옆에서 보고 있던 딸은 답답했는지 빨리 보라고 부추겼다. 어쩔 수 없이 문자를 확인했는데, 딸은 양성이고 나는 결과가 불확정이라 재검을 받으라는 문자였다. 뭐라고? 한 번 더 해야 한다고?


언젠가 뉴스에서 성인 남성이 검체 체취용 도구가 코 안으로 들어가자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그걸 본 후로 얼마나 놀라고 아팠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조심 또 조심하며 절대 코로나에 걸리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더랬다. 그런데 결국은 확진됐고 두 번이나 코를 내밀어야 했다. 코로나에 걸리고 나니 정말 내 일이 되었다. 그렇게 피해 가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그동안의 조심 또 조심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남편은 그래도 식구가 비슷한 시기에 걸려서 일주일만 고생하면 된다며 나를 위로했다. 코로나에 안 걸렸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뒤돌아 보지 말자면서 말이다. 





에바 알머슨_풀뿌리 사랑 




어제는 남편이 열이 많이 오른 나를 위해 밥상을 차려주었다. 비록 배달로 시킨 죽이었지만 남편은 작은방에서 격리하는 동안 밥상을 차려줘서 고마웠다며 내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프고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눈물로 차올랐다. 아이를 키우면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우리가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사실을 종종 잊을 때가 있다. 매일 보는 남편의 얼굴이 어떤 날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변한 것 같아 놀랄 때도 있었다. 죽을 먹다 결혼식 때 읽었던 혼인 서약문이 생각났다. '나는 당신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자일 때나 가난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이 서약문이 결혼 생활의 전부를 말하는 줄도 몰랐던 철부지가 이제야 그 의미를 깨닫는다.


배달로 시킨 죽은 엄청 맛있었다. 우리 세 가족은 각자 죽을 한 그릇씩 싹싹 비우고 나서 '놀면 뭐하니?'를 보며 있는 힘을 다해 웃었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기침 소리가 이 방 저 방에서 들리는 중이다.나와 딸은 창문에 볼을 대고 열을 식히면서 마주보며 또 웃었다. 오늘 하루도 우리 세 식구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사랑하며 격리 생활을 잘 마무리했다. 내일은 몸이 좀 나아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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