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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곰 Apr 01. 2022

봄볕 한 줌

오래도록 기억될 




우리 세 식구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케이크에 촛불을 켰다.

'격리 해제 파티'라고 이름 붙인 그 케이크를 보니 지난 일주일이 꿈같이 느껴졌다.

딸은 '힘들었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이겨내서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 일로 인해 앞으로 우리 식구에게 힘든 일이 생겨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 건 분명하다.


딸과 나는 아침에 집 앞의 저수지로 가벼운 산책을 나갔다.

현관문을 열기 전, 딸은 심호흡을 하며 엄청 떨린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운동화를 신으니 어색하기도 하고

바깥은 어떨지 궁금하다며 '하나, 둘, 셋 얍!' 외치며 문을 활짝 열었다.


바깥세상은 4월의 봄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매일 다니던 길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매화, 산수유, 개나리가 여기저기 피어 있었고

봄볕이 머문 자리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심보윤_평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일주일 동안

꽃샘추위는 물러가고 완연한 봄날이 시작된 것이다.

딸은 신이 났는지 내 손을 놓고 꽃이 핀 나무를 향해 뛰어갔다.

우리가 병을 이겨내는 동안 나무들도 있는 힘을 다해 꽃잎을 피웠나 보다.

자연은 그저 제 할 일을 할 뿐인데 나이가 들수록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당연하던 일상이 사실은 더없이 소중한 일상이었다는 것을,

아프고 나서야 또 깨닫는다.


4월의 첫날, 

내리쬐는 봄볕을 흠뻑 맞으며 매일 걷던 길을 걸었다.

손을 내밀어 봄볕을 쥐어본다.

오늘 이 봄볕 한 줌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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