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기억될
우리 세 식구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케이크에 촛불을 켰다.
'격리 해제 파티'라고 이름 붙인 그 케이크를 보니 지난 일주일이 꿈같이 느껴졌다.
딸은 '힘들었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이겨내서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 일로 인해 앞으로 우리 식구에게 힘든 일이 생겨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 건 분명하다.
딸과 나는 아침에 집 앞의 저수지로 가벼운 산책을 나갔다.
현관문을 열기 전, 딸은 심호흡을 하며 엄청 떨린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운동화를 신으니 어색하기도 하고
바깥은 어떨지 궁금하다며 '하나, 둘, 셋 얍!' 외치며 문을 활짝 열었다.
바깥세상은 4월의 봄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매일 다니던 길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매화, 산수유, 개나리가 여기저기 피어 있었고
봄볕이 머문 자리에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일주일 동안
꽃샘추위는 물러가고 완연한 봄날이 시작된 것이다.
딸은 신이 났는지 내 손을 놓고 꽃이 핀 나무를 향해 뛰어갔다.
우리가 병을 이겨내는 동안 나무들도 있는 힘을 다해 꽃잎을 피웠나 보다.
자연은 그저 제 할 일을 할 뿐인데 나이가 들수록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당연하던 일상이 사실은 더없이 소중한 일상이었다는 것을,
아프고 나서야 또 깨닫는다.
4월의 첫날,
내리쬐는 봄볕을 흠뻑 맞으며 매일 걷던 길을 걸었다.
손을 내밀어 봄볕을 쥐어본다.
오늘 이 봄볕 한 줌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