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흉부 메이트
남편과 딸이 잠든 밤, 나는 거실에 나와 TV를 켜놓고 간단히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스트레칭이 거의 마무리됐을 즈음 내일 볼 영상을 찜하기 위해 넷플릭스에 들어갔다. 첫 화면에 '셀럽은 회의 중'이란 예고편이 시작되고 있었고, 평소 셀럽 파이브를 좋아하던 터라 밤 11시가 넘었음에도 재생 버튼을 눌렀다. 숙면을 위해 했던 스트레칭이 아깝긴 했지만 대신 나는 크게 웃을 준비를 했다. 양반다리를 하고 베개를 끌어안으며 송은이, 안영미, 김신영, 신봉선이 터트릴 웃음 지뢰밭에 그대로 폴짝 뛰어들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별로 웃을 일이 없어서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깔깔거리며 웃었다. 남편과 딸이 깨든지 말든지 이미 지뢰는 터졌고 나는 급기야 각티슈를 옆에 두고 눈물을 닦아내며 영상을 끝까지 시청했다. 나는 평소 드라마보다 코미디 프로를 더 좋아한다. 학창 시절에도 10시 드라마는 안 봐도 꼭 일요일 저녁에 하는 개그콘서트는 봐야 직성이 풀렸다. 흉부가 들썩거릴 정도로 웃으면 나도 웃을 줄 아는 사람이고, 내 몸 어딘가에 숨어 있을 행복 세포들이 두 손 두 발 들고 밖으로 나올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순간이 좋았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정도로 실컷 웃는 순간, 그런 사람들이 친구이고 동료인 셀럽 파이브 멤버들이 부러웠다.
예전에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편했다. 그만큼 나는 생각은 많지만 행동력이 부족해 해결을 할 수 없는 일만 잔뜩 끌어안고 사는 청춘을 보냈다. 그러니 서로 고민을 털어놓고 들어주는 관계에 진심을 다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고민은 웬만하면 혼자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날이 많아졌다. 삶이 현실로 다가오다 보니 생각이 많으면 생계가 위험해지고 누군가와 얘기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함께 있을 때 실컷 웃을 수 있는 관계가 필요했다. 서로 성격도 다르고 고민도 다르지만 웃음 코드가 맞아서 만나면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한두 시간 실컷 떠들고 웃으면서 내 고민을 조금이라도 희석 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고민은 들어달라 하지 않을 테니 같은 포인트에서 웃고 손뼉 치며 흉부를 들썩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베개 태신 각티슈를 끌어안고 꺼이 꺼이 울면서 웃던 나는 실로 오랜만에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살다 보면 가슴 뛰는 일도 설레는 일도 줄어들어서 심심할 때가 있는데, 이런 코미디 프로그램 한두 편으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앞으로는 자주 웃는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싶다. 그럼에도 웃는 사람들 옆에 서서 삶을 잘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