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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라 Apr 05. 2022

따뜻한 침묵

기대되는 우리의 40대 




내게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시누이가 있다. 우리는 결혼 전부터 남편을 통해 언니 동생 하며 지내왔다. 만나면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만날 일이 없으면 굳이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정도의 사이였다. 서로 성격이 살가운 편이 아니다 보니 명절 때 같은 공간에 있으면 침묵이 우리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굳이 말을 나누지 않아도 괜찮은 사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침묵이었달까. 그냥 '우리 사이는 이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그뿐이었다. (우리가 여자 형제가 없어서 더 그랬나 싶기도 하다.)



시누이는 내가 결혼 한 그해에 약대 편입에 성공했다.편입 삼수 끝에 얻은 성과였다. 다소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하고 직장에 다니느라 결혼 시기 또한 늦어졌다. 과에서 차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지만 서른 넘어 공부를 하니 힘들다며 멋쩍게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내가 아이를 키우느라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시누이는 본인보다 어린 친구들과 경쟁을 하며 밤샘 공부를 했다. 아이가 좀 커서 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을 땐 시누이는 대학병원에 취직해 처음으로 돈벌이를 하며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었다. 30대의 우리는 확실히 삶의 방향이 달랐다. 하지만 선택한 삶에 책임을 지고 나름의 고통을 해결해 가면서 어른이 되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가 생겼다.





이슴슴_여름휘아




이번에 우리 가족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 시누이는 바로 비상약과 영양제를 가득 담아 택배를 보냈다. 후유증이 없으려면 영양제를 잘 챙겨 먹어야 한다며 비싼 약들을 많이도 보내왔다. 평소에 잘 해준 것도 없는데 힘들 때 이렇게 챙겨주는 걸 보니 그동안의 침묵과 거리가 나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표현을 안 했을 뿐 우리는 서로를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나는 증상이 호전되었을 때쯤 시누이에게 선물을 하나 사서 보냈다. 결제 완료 버튼을 누른 순간 마음이 좋아졌다. 앞으로 이런 마음을 자주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4살 때 뽀얀 얼굴로 '언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던 시누이는 벌써 30대 후반이 되었다. 이젠 자기 약국을 차리고 싶다며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다. 나도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어느 정도 컸으니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우리의 40대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도 여전히 우리 사이에 따뜻한 침묵이 흐르고 있을지, 아니면 언니인 내가 먼저 말을 걸어 거리를 조금씩 좁혀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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