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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Mar 15. 2022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로

스위스에서 대학생활이라니?!

대학교는 스위스로 진학했다. 대단한 학교를 간 것도 아니지만 대학교를 가는 것이 이렇게 쉬울 수도 있구나 하는 걸 그때 깨달은 것 같다. 적어도 우리나라의 고3들이 공부하는 정도로 공부를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피지에서의 학교 성적표를 제출하긴 했지만 영어를 아예 못하는 상태로 간 피지에서 내 성적이 좋을 리는 없었다. 피지에서는 Pass와 Fail로 판단을 하는데 만점을 100점이라 쳤을 때 60점 이하면 Fail이고 그 이상이면 Pass다. 말하자면 나는 겨우 Pass만 한 정도의 성적이었다. 그렇지만 졸업하기가 (내 기준에선) 너무 힘들었어서 입학이 쉬운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했다. 




스위스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은 나빼고 너무 힘들었다. 나는 당시 대한항공 가족 마일리지로 영끌하여 한국에서 취리히 공항까지 직항으로 가는 호화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 해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비행기가 바로 착륙하지 못하고 활주로의 눈이 다 치워질 때까지 비행기가 공항 하늘에서 대기하며 뱅글뱅글 돌던 것이 기억난다. 또 나말고 유학원을 통하여 같은 학교로 가게 된 동창들은 다들 다같이 출국을 했는데 그들은 경유해서 오는 항공권이었고 경유지 어디에선가 눈 때문에 비행기가 애초부터 연착이 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여 한국인으로서는 혼자 학교에 도착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까지만 해도 직원들이 수화물에 대해 꽤 관대한 편이어서 나혼자 추가 지불없이도 30키로 정도 들고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취리히에서 한국까지 가는 기차를 타는데 뭐가 뭔지, 기차는 어떻게 타는지, 표는 어떻게 사는지 몰라서 헤맸다. 지금 예상해보면 당시 스위스 사람들은 왠 중학생 정도 밖에 안되어보이는 애가 엄청 커다란 짐을 들고 헤매이는 것이 뭔 일인가 싶었을 것이다. 당시 환전해 온 스위스 프랑은 100프랑, 50프랑 정도의 지폐뿐, 잔돈은 없었는데 학교가 있는 도시까지 가는 기차가 딱 51프랑이었다. 그나마 티켓을 구매하는 것도 스위스 사람한테 도움을 청했는데, 1프랑을 대신 내주기까지 했다. 내가 탈 기차를 찾아 헤매는데, 플랫폼이 그렇게 많은 것도 처음이었고, 안내문이 세상 4개 다른 언어로 나오는 것도 처음 들어봤다. 스위스 오기전에 학교에서 프랑스어가 유일한 교양과목이라고 해서 학원은 다니다 왔지만, 학원에서 배운 프랑스어와 스위스 현지에서 현지인들이 쓰는 프랑스어는 너무나 달랐다. 또 그때는 전혀 몰랐고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취리히는 독일어를 쓰는 동네이기 때문에 프랑스어보단 영어가 더 유용했다. 프랑스어로 뭘 물어보고 답을 알아들을 수준은 되지 않아서 영어로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또 짐을 낑낑대며 기차 앞까지는 가져갔으나 엄청난 짐을 기차 위로 올리는 것은 그 당시 나에겐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스위스 사람들이 다들 적극 도와주었다. 그 기차는 그 날 내가 향하는 도시로 가는 막차였는데 시간을 기가막히게 지키는 스위스 기차인 줄 당시엔 몰랐지만 다행히 탈 수 있었다. 그 땐 공항에서 짐 싣는 카트를 에스컬레이터에 아무렇지도 않게 턱 올리고 타는 사람들을 보고 경악했다. 한국도 지금은 트레이더스에 가면 카트를 싣고 탈 수 있지만, 그건 에스컬레이터를 평평하게 만든 곳에다가 고정시키는 형태이고, 스위스에선 일반 에스컬레이터, 계단의 형태에 카트를 올리면 고정이 되는 형태였다.


기차 내에선 쉽게 학생들을 볼 수 있었는데 다들 짐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날 그곳으로 엄청난 짐과 함께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학교 학생들이었고 나같이 처음 가는 사람들 외에도 1-2년 선배들을 볼 수 있었다. 또 도착하니 마을은 어두워 전혀 볼 수 없었지만 다행히 버스 정류장에서 학교까진 엄청 가까웠던 데다가 내리막길이라 더 쉽게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짧은 거리를 스위스의 조용하고 작은 마을의 밤에 캐리어의 바퀴소리들이 채웠다. 


학교에서 받은 엄청난 무개의 책들.


학교에 도착하니 학생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기숙사 방도 확인하고 스위스 초콜렛인 토블론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토블론을 그 때 거의 처음 보고 먹어봤는데 안에 들어간 하얗고 찐득찐득한 허니누가의 식감이 너무 낯설었지만 춥고 어두웠던 그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그렇게 혼자 떨어져, 기차를 타고 학교에 무사히 도착하니 그 안도감과 뿌듯함은 그 초콜릿만큼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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