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린 Mar 17. 2022

스위스에서 가장 큰 호수가 있는 곳

호빵같은 햄치즈페이스트리를 호호 불어먹던 시절

대학교에 가니, 내 또래의 친구들과 학교를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고등학교까진 다 같은 나이의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대학교가니 웬걸, 나이대가 천차만별이었다. 학교는 전교생이란 단어가 우스울 정도로 200명이 조금 넘는 소수의 학생들이 모여있었지만 그 숫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30개가 넘는 국적의 학생들이 모였다. 역시나 한국인, 홍콩, 대만 아시아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스웨덴에서도 꽤 많은 친구들이 왔다. 또 몰디브 같은 곳에서도 오기도 해서 신기하게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도 몰디브인 친구를 보며 '저 친구의 나라는 30년 후에 물에 잠긴다는데 그 후엔 어떻게 될까? 안됐다.'라고 생각했지만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몰디브는 사랑받는 신혼여행지다.


특히 한국인들은 더 큰 나이대를 자랑했다. 우리 학년에 나와 동갑은 딱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다 언니 오빠들뿐이었다. 비록 애교 따위 없고 키는 거의 제일 커서 막냇동생이어도 막냇동생이란 타이틀이 무색하게 사랑받은 것 같진 않다. 우리 학년에서 가장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는 6살 차이였는데, 바로 한 학년 위의 한국인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오빠는 나랑 무려 8살 차이가 났다. 당시 내가 다닌 대학교는 교양 과목은 배우지 않고 필수 과목들만 이수해서 4년제 학위를 3년 안에 받는다는 메리트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미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다시 오거나 사회생활을 하다가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학교가 있던 도시는 Neuchâtel 뉴샤텔이란 곳이었는데 아담하고 정말 아름다웠다. 많은 호텔학교들이 산꼭대기에 있어 밤늦게 돌아다니기가 힘들고, 초저녁이면 산악기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등 불편한 점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당시 (현재는 학교가 옮겨짐) 시내와 가까운 호텔 중에 하나였고, 걸어서 5분 거리에는 스위스에서 제일 크다는 호수*와 그 건너편으로는 쥐라 Jura 알프스 산맥이 선명하게 보이곤 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내가 살고 있는 곳의 호수가 제일 큰 것에 대한 프라이드를 항상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제네바 호수가 면적 자체만으로는 훨씬 크지만 100% 스위스 영토에 있는 호수로는 뉴샤텔 호수 면적이 가장 크다. 


처음 그 도시에 왔을 땐 신기하게 느껴졌다. 오후 5시만 돼도 모든 매장이나 슈퍼가 다 문을 닫곤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거리엔 낙엽이 바람에 휩쓸리곤 했는데 너무 조용하고 텅 빈 거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꼭 좀비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또 우리 학교 학생들 외에 외국인이란 존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 카페를 우리끼리 우르르 지나갈 때면 동네 은퇴하신 노인분들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우리를 보곤 아마도 신기해서 목이 돌아가면서까지 우리를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학교엔 바도 있어서 금요일 저녁부터 다들 그곳에 가서 1차로 파티를 하고 밖에 있는 바에 나가서 놀곤 했는데 스위스 자체가 안전하기도 하고 노는 사람들이 대부분 학교 학생들이라 큰 걱정 없이 마시고 놀 수 있었다. 그럴 때 신나게 새벽 4-5시까지 놀고 클럽이 문 닫을 때쯤 학교로 돌아가는데 새벽에 베이커리에서 작은 창구를 통해 뒷문으로 파는 맛있고 따뜻한 빵을 다들 하나씩 사서 호호 불며 입에 물던 기억이 있다. 빵 이름은 그 당시 불어를 잘하는 상태가 아니어서 지금도 잘 모르지만 클럽 이름은 매직 magic이었고, 빵은 영어로 브레드니, 우리는 그냥 그것을 매직 브래드라고 부르곤 했다. 지금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마, feuilletés jambon fromage가 아니었을까 싶다!! 퍼프 페이스트리에 햄과 치즈가 들어가 따끈따끈하게 갓 구워내 오븐에서 바로 꺼낸 그것을 우린 밤새도록 놀고 마신 후 아침이자 저녁으로 먹곤 했다. 비교하자면, 한국 겨울에 팥이 들어간 호빵을 호호 불어먹는 그 추억과 같은 느낌이다. 


스위스 수도 베른


스위스 생활의 아쉬운 점은 그 당시 난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단 사실이다. 내가 생활 운동 정도를 시작한 건 그보다 한참 후인데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나 아웃도어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천국이다. 등산, (호수에서) 수영, 러닝, 등등!! 그때부터라도 했으면 지금쯤 훨씬 더 많이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쉽다. 더군다나 스위스에서의 대학생활은 오히려 나에게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오스트리아에 오고 나서 스위스에 꼭 다시 가고 싶었는데 그 당시에도 비싼 건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내가 돈을 벌고 쓰면서 가려니 너무 비싸서 아직도 못 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