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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Jan 25. 2022

오스트리아에서 이직하기 2

원하는 업종으로 이직에 성공하다.

일단 첫 면접.. 생애 처음으로 온라인 면접을 봤다. 모 광고 에이전시의 사장님과 거의 부 사장님 격의 분과 면접을 봤다. 어라라? 근데 처음부터 너무 화기애애..... 광고 에이전시에는 내 이력이 그렇게 대단히 맞지도 않건만? 


20대 초반에 한국에서 잠깐 일했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 가장 싫었던 건 그놈의 자기소개였다. 물론 외국에서 자기소개를 안 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한국에선 줄줄이 내 역사를 다 읊는 걸 기대하는 느낌? 게다가 그땐 나이가 어렸으니 딱히 경력이라고 내세울 만한 게 없었는데 무슨 소개를 하라는 건지 암튼 내 짱구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 소화할 수 없던 기억 혹은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있다. 물론 외국에서도 너에 대해 말해봐라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의 태도가 일단 다른 것 같다. 외국에선 내가 외국인이다 보니, 오히려 수월한 느낌은 있었다. 내가 어떻게 이 나라에 왔고, 이 직업에 지원하게 되었는지 등등 일단 조금이라도 할 말이 있다. 한국에선 뭔가 '네가 어디 살건 뭐건 관심 없음'이라는 태도가 뿜뿜인채, 나이가 적으면 너무 적다, 많으면 많다, 별 희한한 평가질을 몇 번 안 되는 취업준비 때마다 들었기 때문에 몸서리가 쳐진다. 23살 때도 나이 많단 소릴 들었는데 그 후부터 여태까지도 어이가 없다. 요즘은 좀 변했으려나 모르겠다.


그런데 외국회사, 한국 빼고 어디든 면접을 보면 뭔가 제대로 된 회사인 경우엔 자기들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내가 입사하면 어떤 직무를 할 것인지 충분한 소개를 해준다는 것이다. 별로 막 말을 엄청 뇌수 짜내듯 하지 않아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 호텔에서 독일어가 안 되는 상황에서 독일어로 면접을 봤을 때도, 내가 한 말은 '나 독일어 열심히 빨리 배울 수 있어요' 정도였고, 루이비통에서도 그냥 왜 판매직이 아닌 물품 관리직을 하고 싶은지? 그냥 들으면 '아 타당하다' 싶은 그런 질문들.. 이번엔 스토리가 아무래도 더 많았다.


이번에 말하게 된 스토리는 이렇다. 내가 말레이시아에서 디지털 마케팅 쪽에서 일을 했는데, 오자마자 같은 업계에서 일을 하고 싶었으나 독일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로 오니 적은 경력으로는 당연히 일을 할 수 없었다. (모두 납득) 그래서 일단 내 학력과 경력이 받쳐주는 호텔 리셉션부터 시작해서 독일어를 많이 배웠는데, 루이비통에 들어간 것은 내가 원해서 스스로 지원했다기보다 그쪽에서 연락을 받고 처음 해보는 일이니까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그때 ㅇㅇ 학교에서 디지털 마케팅 코스를 밟고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회사에서 배려를 해주었다. 그러다 결국 코로나가 터져서 어쩌다 보니 2.5년을 일하게 됐다. (역시 납득) 그런데 이젠 독일어도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할 수 있고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아 지원하게 됐다. 

이런 스토리이다.


우리 회사에 입사한 후 5년 10년 계획은 들어본 적도 없다. 왜냐면 난 당장 내년 계획도 없는 사람인데, 나를 위한 계획도 아니고 회사에서의 계획을 어찌 세운단 말인가? 난 점쟁이가 아니다. 


내가 이번에 하게 된 일, 직책 이름은 무려 Online Marketing Manager이다.. ooh fancy! 근데 광고 에이전시가 아닌 잘츠부르크에서 제일 큰 관광회사에서의 직무이다. 뭐든 어떠랴. 알고 보니 이 관광회사의 사장님과 내가 면접을 본 광고 에이전시의 부사장이 친구 사이라고 한다. 관광회사 사장님은 아무래도 이 쪽 일은 본인이 잘 모르다 보니 사람을 뽑을 때도 어떤 기준으로 뽑아야 되는지 등등을 잘 모르니, 광고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대신 사람을 뽑아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관광업계, 호텔업계 쪽을 잘 알면 좋고, 이 관광회사의 상품을 알면 더 좋고, 또 온라인 마케팅 직종에 대한 대단한 지식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지식이 있고, 또 관광업계 혹은 서비스 업계에 맞게 성격이 친절하고 친근한 사람이면 좋겠다고 미리 언질을 준 뒤 사람을 대신 뽑도록 부탁한 것.


그래서 1차는 온라인으로 광고 에이전시 분들과 면접을 보게 된 것인데, 면접을 보면서 사장/부사장님이 면접 막바지에 '사실 ㅇㅇ관광회사 알지? 거기 사장님이 우리 친군데 거기 온라인 마케팅 담당 직원이 이번에 일을 그만두게 되어서 우리가 대신 사람을 알아봐 주고 있었어, 그런데 네가 이력서를 보냈는데 그 자리에 딱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 너 관광 쪽 공부했지, 잘츠부르크 호텔에서 근무했지, 그러니 당연히 이 회사 상품도 잘 알지! 그리고 지금 어차피 코로나라 일도 많지 않고, 네가 외국어도 몇 개씩 할 줄 알고, 온라인 마케팅 쪽 지식도 있고, 처음부터 천천히 시작해 나갈 수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 만약 너만 괜찮다면 2차로 그 회사 사장님이랑 면접을 봤으면 좋겠는데... 혹시 그 사장님과 잘 안되더라도 우리 회사에서 일해도 되고! 우린 어차피 일 많아서 항상 사람을 뽑긴 하거든~'


면접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진짜 면접 보면서 '너무 완벽하게 다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서 무서울 지경이야'라고 했다. 물론 '그 사장님과 잘 안되더라도 우리 회사에서 일해!'라는 말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아마 붙을만하니까 추천해주고 그러지 않았나 싶다. 사실 2차 면접 때 실제 그 에이전시에 가서 면접을 봤는데 나, 회사 사장님, 에이전시 부사장 셋이 앉아서 면접을 보는데 부사장님이 계속 좋게 말해주고 거들어주고 회사 사장님은, 나이도 지긋하시고, 마스크를 낀 데다 그렇게 웃는 상은 아닌 거 같아서 내가 맘에 드는 건지 아닌지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공평한 분이신 듯하다.  내가 첨부터 맘에 들었든 안 들었든 어쨌든 이 직무 자체에 대해서 내가 잘할지 말지는 스스로 판단이 안되셨던 건 확실한 것 같다. 그래서 하루 실습, "Schnuppern"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난 당연히 하겠다고 했다. 슈눕펀은 쉽게 말해 하루 일해보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보니 거의 하루 종일 머무르는 게 보통이라고 하지만, 회사가 단축근무 중이었고 온라인 마케팅 담당하는 직원이 수요일 빼곤 홈오피스 중인 데다, 수요일마저도 9시에 와서 12시에 집에 가는 천국 같은 근무량으로 일을 하고 있었기에, 나도 그날 9시에 가서 12시까지 사수? 선배? 선임? 이 대충 설명하는 걸 들었다. 사실 말이 3시간이지, 뭐 개인적으로 소개하고 수다 떨고, 고작 3시간 있는데 뭔 일 얘기를 그리 하겠나. 그냥 사람이 어떤가 보는 정도였고, 뭐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아주 간단하게 얘기해주는 정도였다. 그리고 집에 가기 전 오전 11시 반쯤 사장님이 선임을 불러서 따로 얘기하고, 그다음엔 나를 불러서 일자리를 제안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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