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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Jan 26. 2022

오스트리아에서 이직하기 3

이제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Connecting Dots


사장님이 처음 봤을 때 웃는 상이 아니었던 것은 아무래도 뭐 처음보는,  직원이 될지도 말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무조건 친절하게 하기엔 아마 세월의 짬이 너무 길어 그러셨던 것 같다. 마지막에 불러서 어떤 거 같냐? 할 수 있을 것 같니?라고 하셨을 땐 이미 많이 미소를 머금고 계셨고 그날 중간중간 한 번씩 얼굴을 내비치셨을 때도 인자한 얼굴이셨다.


오스트리아에 와서 할 수 없이 호텔에서 일하고 어쩌다 명품 브랜드에서 일하고 쉼 없이 일했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일을 찾고자 했을 땐 쉽게 찾아지지도 않고, 내가 독일어가 완벽하지도 않고 완벽해질 수 없는 외국인이니 아무도 나를 고용하지 않겠구나 하며 자괴감이 나를 먹어 드는 시간을 계속 보내왔다. 그게 바로 2017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은 그저 돈 버는 도구이고 일 외의 시간에 자기만의 취미생활이나 뭐든 하면서 자기 충만? 자기 만족감을 높인다는데.. 그건 적어도 나에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었다는 걸 2017년부터 지금까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호텔에선 별로 연장근무는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쉬프트 근무를 하면서 뭔가 규칙적인 나만의 생활방식을 수립한다는 것은 좀 어려운 얘기였다. 그래서 적어도 근무시간이 일정하고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노는 일을 하고 싶다 했다. 그 이유로 명품 브랜드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연장근무도 절대 없고, 매년 연봉도 적지만 계속 오르고, 돈도 넉넉하고, 복지도 좋은 회사. 그런데 이 일마저도 몸으로 하는 일인데 심지어 미친 듯이 돌아다니다 보니 근무 외 시간에 취미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상한 거라고 하며 피검사를 해보라고 했지만, 피검사 백날 해봐야 수치가 너무 좋다는 말 외엔 딱히 걱정할 만한 점들이 없었다. 그러면서 결국은 다시 내 탓을 하게 되는 것. 8시에 출근해서 12시까지 15000보를 걷는데, 그리고 5시까지 일하는데 이토록 피곤한 내가 이상한 건가?...


한번 자괴감이 들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다 보니 된 것 같기도 하다. 항상 이런 내용의 글을 보면 결국 결과론 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끝까지 놓지 않고 붙들고 있다가 어쨌든 된 것 이외에는 포기해서 실패하는 것, 그리고 아직 기회가 찾아오지 않은 것뿐인 듯하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도 connecting dots에 대해 얘기한 것 아니겠는가 싶다. 긴 세월 동안 실패하고 실패했지만 결국은 이뤄냈기에 마지막에서야 얘기할 수 있는 것. 난 스티브 잡스도 대단한 성공을 한 건 아니지만 작은 성공 하나가 시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중에 또 자괴감이 들어 땅 파고 굴 만들어 기어들어갈 때마다 이 글을 보고 내가 힘을 냈으면 좋겠다. 이제까지 계속 'connecting dots'의 순간을 떠올린 적이 있지만 이번만큼은 진짜 감격스럽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에게 워라밸 이란 건 통용되지 않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것 같다. 그러다가 보게 된 드로우앤드류님의 영상, "워라밸에 대한 집착이 나의 20대를 더 불행하게 만들었던 이유"


난 내가 철이 없어서 밀레니얼도 MZ가 아니어도 공감이 갈 때가 많은가 보다. 

일과 삶을 대립구조로 만들고 억지로 일하는 것 같고 어떻게 해서든 난 빨리 퇴근하고 집에 가서 빨리 내 삶을 즐겨야 돼, 정작 회사에서 일찍 퇴근해서 집에 오면 막상 특별히 하는 것도 별로 없다. 그런데 그것들을 위해 내가 회사 일을 싫어할 필요는 없다. 워라밸을 지키다 보니 내가 일을 부정하게 되고, 일을 싫어하게 되더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그 회사에서 하던 일들을 싫어하는 것이었다.

아 왜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지 정말......

일과 삶이 연장되는 것. 나를 위해서 하는 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힘들 때도 있지만 일 자체를 싫어하진 않는다. 워라블/워라하: 워크 라이브 블랜딩, 하모니. 일과 삶을 구분 짓는 것이 의미 없어지는 것.


요점은, 어쨌든 이번에 하게 된 일이 바로 그 발판 마련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직 한 번으로 이렇게 거창할 문제인가 하면, 그렇다고 하고 싶다. 제2 외국어도 아니고 3 외국어도 아닌 4 외국어로 이직을 한 나..... 기특하다 기특해!! 올해는 성장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때까지 성장을 아예 안 했던 건 아니지만 그냥 현상유지 정도만 했던 것 같다. 특히 커리어 면에선 거의 포기하고 살았던 것... 평생 제대로 못 할 독일어로 뭔 대단한 커리어를 쌓겠나 했던 패배자 마인드로 살아버렸다. 하지만 올해엔 지난 4-5년간 포기한 커리어를 열심히 빌드업해보고 싶다. 이전 명품 브랜드에서 일했던 것보다 월급은 줄었다. 심지어 전 직장에선 36시간이고 현 직장에선 40시간 근무인데도, 월급은 전 직장이 조금 더 높다. 대신 사장님은 일에 필요한 교육프로그램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선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시겠다는 제안을 하셨다. 어쩌면 이것이 나에겐 훨씬 더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직장에선 업무 관련해서 따로 교육을 받을 것이 대단히 없었거니와, 다른 내용에 대해서 스스로를 위해 교육을 받는 다면 그 부분에 관한 금전적인 지원이나 시간에 대한 배려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선 현재 업무와 관련된 교육을 받고 그 부분에 대해서 시간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사무직이라 어쨌든 책상에 앉아있다 보니 업무시간 중에 라이브 온라인 수업을 듣는다고 하면 또 그런 부분에선 충분히 가능한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월급 조금 덜 받는 것에 대해선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대신 이런 식으로 성장해 나가다 보면 다음 직장에선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스스로의 성장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2022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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