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린 Jan 27. 2022

나에게 롤모델을 보여주세요.

롤모델이 없어서 내 길은 내가 개척하게 된다.

이미 20대 후반~30대가 되어, 독일어를 모르는 채 오스트리아에 온다면 노력하는 만큼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은 들면서도 코 앞에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벽이 항상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 있다. 처음에 독일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온 나는 빠르게 배우기 위해서라도 일을 하기 시작했다. 관광업에 대해 공부하고 일도 해왔지만 이미 몇년 전부터 서비스업엔 마음이 없어 디지털 마케팅을 시도해봤다 오스트리아에 오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서비스업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0으로 시작한 독일어이니 매일 거의 같은 독일어를 쓴다고 해도 100까지 늘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직을 하려고 보니, 나는 막상 커버레터 (Motivationsschreiben)조차도 혼자서 쓸 수 없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래서 남편의 가족들이 커버레터와 이력서까지 봐주고 다 써주기까지 했다. 그것들로 어떻게든 면접이 하나 걸렸다 할지라도 서비스업에서 쓰이는 말들을 제외한, 내가 면접볼 때 할 수 있는 독일어는 너무 한정적인 것을 깨닫고 매번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2018년에 면접보러간 회사. 떨어졌다.

그냥 단순히 독일어만의 문제였으면 아마도 독일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동유럽 등에서 온 이민자로 넘치는 오스트리아의 사람들은 처음에 들었던 것만큼 오픈마인드도 아니었다. 오스트리아에 와서 이미 최상의 수준으로 발전된 인프라와 사회복지제도를 이용하면서 막상 일은 커녕 실업급여만 주구장창 받아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이 그간 너무 많았던 것이다. 원래도 사람은 좋은 일이 10번있어도 나쁜 일 한 번 일어나면 기분을 망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독일어를 잘하고 현지에 잘 녹아들어가는 사람들 100명이 있는건 티도 안나고 30-40년을 살아도 1년 산 나보다 독일어를 못하는 사람이 5명만 있어도 나쁜 이미지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학창시절을 여기서 보낸 것도 아니거니와, 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 채로 왔으니 그것에 적응하는데도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는 울면서 남편을 붙들고 뒤늦게 20대 후반~30대 초반에 와서 커리어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외국인이 도대체 존재하냐고 물었지만 남편은 답하지 못했다. 물론, 분명있을테지만 아쉽게도 나와 남편은 아직까지도 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을 안다면 그 사람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묻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누군가는 내가 너무 쉽게 절망하고 포기한다고 했다. 본인은 (현지인) 이력서를 100~200개씩 돌린다며, 현지인인 자기도 그렇게 하는데 10개 돌리고 절망하면 안된다고 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때까지 수많은 이직을 하면서 한번도 몇백개씩 이력서를 돌려본 적이 없다. 나는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지원하는 일들이 항상 만만한 일이었던 것일까? 이번에 이직을 하게 됐을 때도 세어보니, 총 11개 회사에 돌렸다. 나에겐 이것도 적은 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사는 잘츠부르크에 내가 원하는 포지션이 100개씩 오픈해 있지를 않는데 막 지원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까? 무의미한 일을 왜 굳이 스트레스 받고 자괴감을 들어가면서까지 해야하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매우 많은 수도 아니었다. 


현지인들은 너무 쉽게 얘기한다. '100개, 200개 지원하고, 연락안오면 무조건 전화해서 어떻게 되가는지 물어보기라도 해야 너가 관심있어 하는지 알지!! 연락안온다고 그냥 손놓고 있으면 아무도 연락하지 않을꺼야!' 말은 참 쉽다. 나는 이메일 하나 보내는 것도 너무 큰 부담이었고 지원해서 전화를 받았는데 내가 혹시라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나, 또 면접보라고 연락왔는데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면접보는데 내 독일어가 너무 구리면 어떡하지? 등등.. 이런 자기 의심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정말 되도 문제, 안되도 문제인 것이다. 


이번 회사가 안됐다면 또 어떤 식으로 길을 헤쳐나갔을지, 혹은 절망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잡스가 connecting dots에 대해서 얘기했을 때엔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며 한 애기가 아닌 현재시점에서 과거를 보면서 한 얘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난 지금 스스로에게 얘기해줄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길을 개척하고 있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용기를 줄 것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에 되는 것이라고. 아직은 누가봤을 때 대단한 성공을 이룬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까지 작고 소중한 일들을 이루어왔다. 나는 한번에 소위 대박을 치는 성공은 안할 수도 있지만 지금같은 작고 소중한 일들이 모여서 남들이 보기엔 크고 대단해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고나니 지금 시점에서 나는 롤모델이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지금 내 삶을 열심히 살아내어 내가 내 스스로의 롤모델이 될 시점이 온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스트리아에서 이직하기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