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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Dec 17. 2023

시각(視角)

길이인

고래와 낙타는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은 고래의 바다와 낙타의 사막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밥을 먹거나 잠을 잘 때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위해 손톱을 깨물거나 머뭇거릴 때 고래는 춤을 추거나 멀리 떨어진 친구에게 전언을 보낼 것이고 낙타는 사막에 있는 여우의 모래집 앞을 서성거릴 것이다.


시를 쓰다 잠든 밤이면 고래와 낙타가 나의 시를 읽고 가곤 했다.

사실이다. 아침이면 흰 종이에 모래와 소금이 묻어 있었다.


토끼가 토끼풀을 뜯어먹던 나른한 여름과

 재즈의 외투를 걸친 가을은 무정하게 떠나갔다.

겨울은 거인의 발걸음처럼 쿵쿵 소리를 내며 왔고,

봄은 램프 속의 지니처럼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나의 우주는 십 분마다 탄생과 소멸을 반복했고

모차르트를 닮은 영혼은 태초의 바람처럼 우주 저쪽으로 사라졌다.


시간의 기억을 간직한 나무 지문처럼 번진 상처 위에 겹쳐지는 시간의 노을 속

손 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아름다움.


언젠가 고래와 낙타는 나의 시를 기억할 것이다.

고래는 바다를 떠나 태양을 향해 항진할 것이고

낙타는 사막의 모래에 나의 시를 쓸 것이다.

그때 나는 소금과 모래로 쓴 시가 봉인된 편지를 부치리라.

이 슬프고 아름다운 세상 누군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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