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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Jan 15. 2024

고래 잡은 날 - 1탄

기나긴 겨울방학이다.


뚱마도 방학한 것으로 착각하고 너무 늦게 일어났다.


‘헉! 회사, 애들 아침밥.‘


큰일이다 오후 출근인데 도대체 몇 시까지 잔 거야.

서둘러 고등어 굽고, 이틀째 매 끼니마다 재탕해 먹는 배추 된장국을 끓여 후다닥 밥상을 차려준다.


“ 아들 밥 먹어~.”


“ 네~.”


한 번도 반찬투정 없이 늘 맛있게 먹고, 감사할 줄 아는 이쁜 녀석들.

예전에 지한이가 써준 부적같은 쪽지~




“ 아들 밥 맛있게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기 좀 돌려줘. 겨울방학에는 약속대로 고래 잡으러 가야 하니까, 마음에 준비들 하세요~.”


“ 엄마 꼭 해야 해요?”


깐깐한 지호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 아들, 하기로 얘기 끝냈잖아. 너무 싫으면 안해도 되지만, 할 거면 이번주 금요일에 거사를 치를거야. ”


기나긴 회의 끝에 합의를 봤는데 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질문을 하다니, 뚱마는 정신없이 머리를 감으면서 큰 소리로 답한다.








요즘에는 안 하는 사람도 많고, 각자의 환경에 따라 하는 것 같다.

우리가 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그곳은 위생이 중요한데, 샤워를 오분컷으로 끝내는 이분들의 위생관리는 몹시 취약하다는 것에 본인들도 합의한 결정적 이유이다.


애들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이 문제로 뚱마는 몹시 고민했단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사를 치루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약간의 협박을 넣어 합의를 봤음에도, 깐깐하고 소심한 지호가 시술이 몹시 아플 것 같은 두려움에 다시 원점으로 돌리려고 하고 있는 것 같다. 거기다가, 운동을 너무 사랑하는 지호는 지금 배드민턴, 헬스, 축구까지 본격적으로 하루종일 운동을 하며 방학을 즐기고 있는데, 고래를 잡아버리면 사랑하는 운동을 할 수 없는 것도 큰 이유이기도 하다.


“ 하기로 했잖아. 엄마가 강요할 수는 없고, 잘 생각해 봐.”


뚱마는 안방 화장대에서 나날이 처지는 눈매에 아이라인을 무섭게 그어 올리며, 당연히 대답 없을 지호에게 강요 아닌 강요의 소리를 질러댔다.






걱정은 걱정이고, 아침은 맛있게 먹으면서 거사에 대한 둘만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 꽈추를 어떻게 하는거야? 뒤집어? 아님 끝을 잘라?”


“ 야, 서지한! 넌 그것도 몰라? 뒤집는 거잖아?”


“ 아~ 그래?”


“ 아프겠지?”


“ 야, 얼마나 아프면 일주일은 움직이는 것도 힘들대. 운동도 못한다잖아. 분명 엄~청 아플 거야. 그래도 넌 진짜 할 거야?”


“ 응, 난 운동 안 할 거니까, 해도 돼. “


단순 용감한 지한이다.


“ 야! 서지한, 그게 단순한게 아니라고,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크로노스의 아버지 우라노스를 알아? 아들한테 꽈추 잘렸잖아. 왜 잘렸는지 알아?”


“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그리고, 우리가 고래 잡으러 가는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임? ”


“ 우라노스의 부인 가이아가 남편 우라노스가 자식들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자식들 중 아버지를 무찌를 놈을 찾았는데, 크로노스가 낫으로 아버지 거시기를 제거하고 왕이 된 거잖아.  넌 그것도 몰라?”


“ 야~ 이 시붕새야! 내가 그리스 로마신화를 왜 알아야 하는데 왜? 왜?”


앗! 깜짝이야. 마스카라 올리다가 지한이 새타령에 놀라서 잘못 그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세상 요상한 욕을 다 쓰고 있는 지한이에게 한소리 하려다가, 중2는 함부로 건드리면 안되니 일단 참자.

다음에 기회 봐서 다시는 그 새가 날지 못하도록 만들어주리라.



“ 제우스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지? ”


“ 님은 아세요?”


“ 바보야, 크로노스잖아. 으이그~.”


안방에서 꽃단장하면서 듣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포경수술이 왜 그리스 로마신화까지 갔는지 모르겠으나, 대화가 너무 유치하고 재미있어 계속 도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 바보 서지한, 그럼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누구 딸인지 알아?”


“ 내가 왜 남의 가족관계를 알아야 하는데? 몰라! 몰라! 모른다고~~”


“ 제우스가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헤파이스토스가 도끼로 머리를 찍어서 쫙~ 갈라줬잖아. 그 머리에서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나온 거잖아. 넌 그것도 모르냐?  그리고 머리에서 나올 때 뭐 들고 나온 지는 알아? “


“ 그만해~ 난 그 동네 사람들 관심 1도 없다고.”


“ 바보야, 갑옷 입고 검이랑 방패 들고 나왔잖아.”


“ 뭔 소리야? 머리통에서 전쟁준비하고 나왔다고? 뭔 개똥같은 소리야? 왜 요상한 신화를 만드는 거야? 이름도 왜 이렇게 다 어려워? 그리고 내가 왜 이걸 알아야 하는데, 이제 제발 그만해! 그~마안~. “


“ 야! 서지한, 이건 상식이야. 너 맨날 유튜브로 카더라 소식통만 보지 말라고. 그리스 로마신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해. 중학생이면 알아야지. 너만 모르는 거야.”


“ 엄마~ 엄마는 알아요? 제우스가 누구 아들인지? 엄마~ 대답해요.”


지호한테 밀리면, 꼭 뚱마를 끌여들이는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 어~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려. 엄마 늦어서 정신없어. 아들 밥 먹고 양치하는 거 잊지 마~”


무식이 탈로 나기 전에 빨리 출근해야겠다.


“ 근데, 지한아 많이 아플까? 넌 진짜 할 거야?”


“ 응, 난 할 거야. 군대 가서 하면 엉망으로 꼬메주고 행군할 때 씻지도 못한대. 군대 가는 남자라면 꼭 해야 해.”


어디서 저런 잡소문을 들었을까, 유튜브가 애를 망치는 것 같다.


“ 안 아프겠지?”


“ 이 자식아, 그거 금방 끝나. 지금 안 하면 할 시간이 없어. 중3 되면 공부해야지 언제 그걸 하니? “


지한이가 공부를 논하기에는 성적이 몹시 아쉽다.


“ 엄마, 언제 한다고 했죠? “


“ 엄마 쉬는 날이 이번 주 금요일이야. 집 앞에 비뇨기과에서 후딱하고 오자.”




“ 엄마, 이번 주 금요일에 우리 제우스 할아버지처럼 되는 거예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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