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한아~ 탱이 똥 좀 치워줘~”
” …“
착한 지한이가 대답을 안 하네.
“ 지한아~, 아들~~~. “
“ … ”
뭔 일이 있나 보다. 지한이 방에 가봐야겠다.
눈앞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지한이가 공부를 한다
겨울방학인데 지한이가 공부를 한다.
띵가띵가 기타만 치던 지한이가 공부를 한다.
반에서 예체능 친구들과 실력을 나란히 하는 지한이가 공부를 한다.
귀한 장면에 놀라, 거실에서 티브이 켜 놓고 핸드폰에 빠진 지호를 부른다.
“ 지호야~ 지한이가 공부해.”
“ 네에?”
시험기간에 지호가 집요하게 잔소리해도, 뭔 새소리냐 하던 동생이 스스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소식에, 뚱마보다 더 놀란 지호가 현장을 목격하러 뛰었고, 덩달아 강쥐들도 뛰었다.
지한이가 책상 앞에 앉는 것만으로도 온 집안이 난리 났다.
“ 야! 서지한, 너 미쳤냐? 뭐 하냐? “
책상 위에는 온갖 것들이 널브러져 있고, 그 중심에 지한이가 수박씨인지 호박씨인지하는 학습 앱을 켜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그건 분명 공부라는 것이었다.
가족들의 소란을 즐기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치 의사가 된 것처럼 말한다.
“ 말리지 마. 나 소아과의사가 되야겠어.
한국에 소아과가 너무 부족해서 애들이 갈 병원이 부족하다잖아. 그래서 내가 하기로 했어. 그니까 말리지 마.
일단 소아과 병원 하나 차리고, 아프리카에 가서 애들도 치료해 줄 거야.
엄마, 엄마가 아프리카 애들 매달 후원하는 거 저 다 알아요. 저도 어른이 되면 가서 그 애들 도와줄게요.”
“ 미안한데 지한아, 남미 쪽이야. “
“ 아! 그래요. 아무튼 공부 방해되니까 다들 나가줘요.”
“ 야! 서지한, 너 의사라고 했냐? 미친 거 아냐? ”
“ 꺼지라고~ 내가 한다잖아! “
“ 아들,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 엄마 무서워.”
“ 엄마, 냅둬요. 저 자식 또 유튜브 보고 저래요. 또 갬성 젖었네. 야, 너 할 거면 국어부터 먼저 해라. 니 실력으로는 집 근처 고등학교도 못 가는 거 알지?
“ 야, 꺼져! 지금부터 한다는데, 왜 시비야? ”
“ 엄마, 저 녀석 저번에 배 타는 항해사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해양대 알아본다더니, 갑자기 웬 의사임? ”
“ 엄마, 강쥐들 데리고 빨리 나가요. 공부하는데 방해 말고요.”
“ 어… 아들 공부해. 지호야 일단 후퇴하자. “
책상 위에 정신 사납게 펼쳐져 있는 책들을 보면, 이미 의대에 합격하고 책거리 파티 한 것 같다.
뭐 그래도 참 귀한 장면을 목격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의사샘에게 맛있는 식사를 차려 드려야겠다.
“ 아들~ 열심히 공부해. 너무 무리는 말고~ 엄마가 얼큰한 닭볶음탕 만들어줄게.”
“ …”
대답도 없다. 아무리 봐도 공부에 집중하는 뒤태는 아닌데, 도대체 중2의 속은 알 수가 없다.
“ 엄마, 지한이 며칠 못 가서, 또 다른 거 한다고 그럴 거예요. 괜히 기대하지 마요. “
까칠한 녀석 같으니라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니, 뚱마는 공부의 신이 지한이에게 강림하실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 콧노래 흥얼대며 닭볶음탕을 준비한다.
그래, 저번 홍대에서 술김에 본 사주에 67세에 팔자가 쫙 핀다고 했잖아.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보글보글 탕이 끊기 시작하니, 냄새가 매우 유혹적이다. 역시 닭요리의 달인 뚱마이다.
“ 엄마~ 배 고파요. 밥 주세요.”
“어머, 깜짝이야! 벌써 공부 끝낸거야? “
“ 야~ 서지한, 하는 척 그만하고 그냥 나랑 런닝맨이나 보자.”
“ 아니야. 배 고파서 집중이 안 돼서 그래, 밥 먹고 다시 할 거야. ”
그렇게 그들은 저녁을 푸지게 드시고, 의좋은 형제처럼 나란히 소파에 누워 런닝맨을 틀어놓고 핸드폰에 빠졌다.
익숙한 풍경이다.
열다섯 살은 뭐든지 꿈꿔도 좋은 나이잖아.
뭐가 될지는 나중 일이고, 지금은 많은 꿈을 가지는 게 더 중요하지.
너의 푸른 꿈나무에 뚱마가 밥도 주고 물도 줄 테니,
너는 더 푸르게 더 높게 더 넓게 많은 꿈을 가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