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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Jan 20. 2024

고래 잡은 날 -2탄

쌍둥이가 거사를 치르기 전날, 고깃 집에서 거하게 드셨다.


“ 내일 후딱 하고 나오자. 별로 안 아플 거야.”


“ 먹는데 괴로운 얘기하지 마요. 안 그래도 힘내려고 억지로 먹는 중이란 말이에요. “


웃기지 마! 벌써 몇 인분 째니? 무슨 입맛이 없대.





드디어 거사를 치르는 날이다.


집 앞 횡단보도만 건너면 있는 비뇨기과에서 미리 예약을 해 뒀었다.


까칠한 지호가 먼저 고래를 잡으러 들어갔다.

전문의 한 명이 운영하는 병원이라 오전 진료는 쌍둥이의 거사 때문에, 간호사가 다른 분들에게 다음에 오라며 문전박대를 하고 있었다.  

지호는 생각보다 한 시간이 넘게 수술실? 에 있다가 나왔다.

어라~ 걷는 게 멀쩡하다. 똥 싼 걸음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 지호야, 괜찮아? “

“ 엄마, 꽈추가 너덜너덜해진 느낌이에요.”


“ 고생했네, 울아들~ 안 아파? “

“ 속이 메슥거려요. 빨리 집에 갈래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몸에 마취를 하고, 꼬메는 수난을 겪었으니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 그래, 어서 가자. 엄마는 너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와야 해.”


조심조심 침대까지 모셔 드리고, 다시 2번 타자 서지한이 병원을 도착했다.




천하태평 지한 씨가  승리의 브이를 보이며 고래를 잡으로 들어갔다.


지호처럼 잘 걸어 나올 줄 알았는데,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엉기적 걸어 나온다.


“ 왜 그래 지한아?”

“ 몰라요. 엄청 아파요.”


" 아파 죽는 줄 알았어요. 아프다고 하니까, 의사 샘이 꿰맬 때마다 '아파요?' 하고 계쇱 묻는데, 아픈데 똑같은 질문만 하는 거예요. 끝나고 나니까 지호보다는 열 배는 아팠을 거라고 했어요. 으~ 너무 아파."


으으~ 얼마나 아팠을까. 아마 마취가 잘 안 먹혔나 보다. 그런데 뚱마는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 에고에고, 내 새끼 고생했네. 걸을 수 있겠어? 엄마가 어부바 해 줄까?"


" 내가 아직 애기인 줄 알아요? 이제 고래도 잡았으니 어른이라구요."


희한한 걸음으로 엉기적 걷는 뒤태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진짜 어른이 되어 가고 있구나 싶다.


부축을 받으면서  길을 걷다가 갑자기 뚱마의 팔을 뿌리치고, 멈춰 서서 딴청을 피운다.

우르르 다가오는 또래의 여자애들이 지나가갈 때까지, 반듯하게 서 있으려는 지한이를 보고 있자니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귀엽다. 풋풋하다. 좋을때다 싶다.


60초라는 충분한 시간이 있음을 횡단보도 신호등이 알려줬지만, 도저히 시간 내 건널 수가 없었다.

빨간불인데도 한참 건너고 있는 우리를 보고, 대기 중인 버스기사에게 눈인사로 미안함을 표시하자, 기사님은 다 안다는 너그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아파트 현관 앞 계단 한 개를 못 딛고, 평지로 돌아서 걸어야 하는 지한이를 보니, 많이 아프긴 아픈가 보다.





아침은 심란해서 밥도 안 먹더니, 거사를 치르고 안전한 각자의 침대에 누우니, 지한이가 배가 고프다고 난리다.

까칠한 지호는 아무것도 먹기 싫다고 쪽 째진 눈이 축 처져있고, 태평스러운 지한이는 마취도 덜 된 상태에 거사를 치른 것도 어느새 잊었는지 밥 타령이다.


둘 다 쩍벌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모양새가 참 가관이다.




그 사정을 알 리 없는 멍이가 지한이 오빠의 닫힌 방문 앞에서 망부석이 되어 오빠를 기다린다.

으메~ 짠한 거.





다음 날, 뚱마는 출근하고 둘이서 소독하러 병원을 갔다 오는 길에 뚱마에게 전화가 왔다.


" 그래, 아들 며칠만 고생하면 괜찮을 거야. 식탁 위 바나나 한 개씩 먹고, 누워서 쉬어~."


" 엄마, 왜 하필이면 바나나예요? 지금 이 상황에서 바나나 껍질을 까서 먹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아! 센스 없는 뚱마가 누워서 먹기 편한 바나나를 사놨는데, 그게 시기적으로 좀 거시기하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 엄마, 우리 지금 북극 펭귄처럼 걸어요.“

" 엄마, 애는 집 나간 자식이에요. 너무 흉찍해요."

" 엄마, 의사 샘 손길이 너무 거칠었어요. 소독하는 게 아니라, 청양고추로 비벼 놓은 것 같아요."

" 엄마, 의사 샘이 너무 꽁꽁 묶어놨어요. 애가 숨 막힌대요."

" 엄마, 병원 이름이 왜 하늘비뇨기과예요? 정말 하늘 간 기분이라구요."

" 엄마 신호등 앞에 이런 게 적혀 있어요. 우리 꽈추보고 하는 위로 같아요."





퇴근길에 바나나는 싫다하니,거금을 들여 딸기를 사 왔다.

다행히 딸기는 잘 먹네.

딸기는 이미 먹고 빨간 바구니만 덩그러니,,

딸기를 담았던 빨간 바구니가 참 요긴하게 쓰인다.

캡틴 아메리카 방패 못지않다.

역시 거금을 치룬 값어치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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