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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이 Dec 09. 2023

꿈꾸는 책

길이인


오래된 나무를 옮겨 심었더니 종이가 되었다.


그 얇은 평면에 햇볕, 바람, 빗방울, 구름, 짐승들의 똥오줌, 시간의 바장거림, 어디론가 떠나간 길, 산새와 함께 나뭇가지에 앉았던 우주선, 밤하늘을 들여다보던 두근거림, 이해할 수 없는 전언을 타전했던 풀벌레, 어둠을 밀어냈던 불꽃, 누군가의 괴로움, 땅속 깊이 내려갔었던 뿌리의 기억과 하늘로 날아올랐던 나무의 일생이 스며들어 있다.


말은 세상 모든 귀들이 모여 만들어진 소리일지니 소리가 깊어지면 침묵이 되고 침묵은 문장이 된다.

종이 깊이 스민 문장에는 나무의 향기가 피어나고 나무는 책의 열매를 꿈꾼다.



일찍이 나는

바다 아닌 고래를 본 적 없고

허공 아닌 새를 본 적 없고

사막 아닌 낙타를 본 적 없다


문장을 입에 문 새가 나무에 앉는다

고래가 나무에 기대 책을 읽는다

낙타가 책을 지고 사막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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