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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Well Sep 19. 2024

당신의 다음 6년이 더 흥미로운 것이 되길 바라봅시다

잃어버린 시간과 다가올 미래

어느 회사의 암묵적 사장님을 위해 일하기보다 공익을 위한 일, 영향력이 큰 일을 하고 싶었던 나는 5급 공채(소위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몇 년간 집중한 끝에 2차 합격까지 했지만, 평점 0.X의 작은 차이는 걸려 넘어지기 충분했다. 행정고시의 경우 면접시험에서 우수나 미흡으로 평가받지 않으면 성적순으로 합불이 결정된다. 나는 충분히 우수하지는 못했고, 쓰디쓴 결과를 받아 들게 되었다.



면접에서 탈락한 이들에게는 1차 시험 면제와, 2차 시험의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다. 상당수는 미꾸라지처럼 놓친 합격증을 다시 잡는다. 1년의 시간을 보내고 받아 드는 지연된 합격증을 얼마나 간절히 바랐겠는가.


하지만 모든 시험은 독립사건이다. 행복한 가정은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이유가 있는 것처럼 각 시험에 떨어지는 데에는 매번 다른 이유가 있다. 나는 지난번에는 잘 봤던 과목의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고 간절했던 그 기회를 날리게 되었다.


그쯤 되면 멘털이 흔들린다. 누구 탓을 하겠냐마는 눈물이 흘렀다. 하루아침에 합격 준비생에서 고시생으로 돌아간 그 심정이란... 오랫동안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정신을 놓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한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앞자리가 바뀌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감이 고개를 드는 시기가 온다. 책상을 파먹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다른 시대에 와 있었다는 타임슬립 장르의 영화 속 같다. 주변과 다른 시계를 보고 살다 보면 과거의 사건과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좀먹고, 현실감이 약해진다.


대책 없이 행정고시만 준비하던 나에게 터널 같은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 vs "이게 이렇게까지 할만한 대단한 일인가?" 사이에서 갈등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니 술 한잔을 기울이거나 의미 없는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죽인다.




문득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비로소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현자타임이랄까? 이후에도 시행착오를 한참 겪은 끝에야 다행히 취업했고 지금은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지금 그때의 경험과 아쉬움을 극복했냐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내가 겪어온 감정과 시간은 그대로 남아 있다.


릴리 킹이 쓴 ‘작가의 연인들’이라는 소설에는 몇 년 동안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작가를 지망하는 주인공 케이시가 나온다. 돌아가신 어머니로 인한 상실감과, 불안정한 연애는 불안함을 증폭시킨다. 케이시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우체국에서 자신이 쓴 소설을 출판사로 보낸다. 그 짧은 순간 전혀 관계없어 보이지만 또 완전히 무관하다고 볼 수 없는 우체국 직원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내 소설을 마지막으로 만지는 그녀가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상자를 한 번에 하나씩 저울에 올린다. 발송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지는 사람이 그녀가 될 터라, 나는 그녀가 다 잘되길 바란다고 빌어주면 좋겠다.


"이 원고를 6년 동안 썼어요" 내가 조용히 말한다.


“그렇군요" 그녀가 숫자를 입력하면서 말한다.


그녀의 무관심이 끔찍한 조짐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그녀를 내편으로 만들지 모르겠다.


"쿠바가 배경이에요"



“그렇군요"


그녀는 상자들을 대충 모아 큰 통 안에 내려놓은 다음 기계가 뱉은 영수증을 내민다.


아가씨의 다음 6년이 좀 더 흥미로운 것이 되길 바라봅시다.

이루지 못한 아쉬움은 문득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앞으로의 시간이 공부만 하던 그 시간보다 훨씬 흥미롭고 스스로 성장함을 느끼는 시간이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랐던 사람에게 흥미로운 시간이 오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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