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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Well Sep 25. 2024

오지랖과 친절의 한 끗 차이

가끔 오지랖이 발동할 때가 있다.

주로 곤경에 처한 것처럼 보이고,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때 엉덩이가 들썩인다.


# 초등학생 무렵, 트렁크가 열린 채로 운전을 하고 있는 차를 보았다. 마침 신호에 걸려있어서 운전자에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운전자에게 휘휘 손을 저어 나를 보게 한 뒤, "차 트렁크 열렸어요!" 하고 소리를 쳤다. 운전자는 귀찮은 눈치로 고개를 까딱하더니 쌩 출발해 버렸다.


선의를 몰라주는 섭섭한 마음에 "다음엔 뒷트렁크를 열고 다니는 차가 있어도 말해주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트렁크에 큰 짐을 싣고 운전하다 보면 트렁크를 잠시 열어둘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 지난주 혼밥하려고 식당에 갔다. QR코드를 통해 앱으로 주문하는 방식을 처음 봐서 살짝 놀랐다. 나날이 비접촉 방식이 늘어나는 군 하는 생각도 잠시, 어떤 외국인 부부가 내 옆에 앉았다.


두리번거리던 이들은 (당연히) 주문방법을 알 수 없자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영어를 해도 되냐는 공손한 질문에 사장님(추정)은 손바닥을 들어 멈춤 표시를 하고 다른 직원에게 SOS를 했다. 이때만 해도 직원이 잘 도와주겠지 생각했다.


젊은 직원이 나타나자 부부는 주문을 어떻게 하냐고 물었고, 그는 주문페이지의 한영 변환을 해주고 갔다. 직원이 사라져 버리자 부부는 옆에 있는 나를 보더니 코리안이냐며 계산은 어떻게 하는 건지 물었다. 어색한 문장으로 먹고 나갈 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때부터였다. 오지라퍼가 발동한 순간이.


주문을 마친 이들은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아사히 맥주를 받았다. 그런데 이게 하필 손바닥으로 감싸면 거품이 올라오는 생맥주 st 아사히였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는 캔 뚜껑 전체가 따져서 살짝 당황했고, 나아가 물컵에 맥주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두고 볼 수 없는 이 광경에 난 오지랖을 발휘하여 The can is the cup... This is famous beer of japan.... 그러고는 영어에 한계를 느껴 급기야 아직 남아있는 여자의 캔을 따서 손바닥으로 감싸는 시연을 해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갈 채비를 하던 나는 그래도 즐거운 여행 하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부부는 다급히 나를 붙잡고는 소스 두 가지가 각각 어떨 때 먹는 건지 알려달라는 것이다.


물어볼 사람 없는 이곳에서 부부는 정말 도움이 필요했던 거구나, 오지랖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한다면은 도와주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철저히 느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이에게 도움을 주려다 머쓱했던 경험이 방어기제가 되어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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