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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자신 Nov 06. 2020

나는야 손빨래니스트

당신은 오늘 몇 벌의 손빨래를 하셨나요?

어릴 때 피아노를 7년 정도 배웠다.

햇수만 들으면 꽤 실력자일 거 같지만 피아노 연습 대신 학원 옆 문방구에서 오락을 하거나 큰 볼일을 핑계로 원장님 댁(학원 안에는 화장실이 없고 급할 땐 한 블록 정도 떨어진 원장님 집 화장실을 사용함)을 수시로 들락거리느라 피아노 실력은 영 늘지 않았다. 피아노 배우기엔 열심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결석을 하거나 그만두겠단 소리도 하지 않고 7년을 예비 (사이비) 피아니스트로 살았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나는 피아노 대신 세 살 아들이 실례를 해놓은 팬티와 바지를 빠느라 열심히 열 손가락을 놀리고 있다. 아무리 내 아들이라지만 이제 어른들과 얼추 비슷한 수준의 반찬과 간식을 먹는 아기사람의 오줌 냄새는 결코 유쾌하지 않다. 게다가 한두 시간만 지나도 그 지린내는 할증이 붙어 더더욱 고약해져서 무사히 빨래를 마치려면 숨을 참고 빨아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오줌이 묻은 아기 옷을 손빨래 없이 세탁기에 돌릴 순 없고, 아직 완벽하게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들이기에 하루에 한두 번 많을 땐 네댓 번도 넘게 손빨래를 해야만 한다.


결혼하기 전까진 집에서 빨래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던 내가 내 거도 아닌 남?의 오줌 묻은 빨래를 매일 하고 있노라니 “엄마”는 어쩔 수 없는 무수리 신세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돈다. 그런데 또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생각해보면 나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대로 두면 악취가 나다 못해 다시 입을 수 없을 옷을, 나의 손놀림으로 향기 나고 뽀송뽀송한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빨랫감에 대한 숭고한 “회복 의식”이 아닐까.


난 아이를 위해서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만큼 모성애가 강한 사람은 애당초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손을 적셔가며 아이 옷을 빨면서도 그렇게 오랫동안 기저귀를 떼지 못하던 아이가 드디어 혼자 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기특하고 대견하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나름 엄마가 되는 중이구나 싶다.


내일의 나는 관객 하나 없이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공연장에서 과연 몇 악장의 손빨래를 완벽하게 쳐낼 것인지 내심 기대가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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