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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자신 Nov 05. 2020

내가 모두 사라져 버리기 전에.

인생에서 가장 이타적인 사람이 되는 시간-엄마

나는 사회복지사다.

직업만 들었을 땐 천성이 이타적인 사람 같지만 결코 아니다. 대학 입학 전까진 사회복지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조차 몰랐고, 오히려 성격만 따지고 보면 이타적이기보단 이기적인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남을 위해 살아본 적 없던 내가 목표했던 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오지 않자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국립대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했고 논술전형으로 합격했다.

전의를 불태우며 모든 걸 쏟아부었던 고3 수험생활을 다시 반복할 자신이 없었던지라 재수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국립대 합격에 나름 만족하며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사회복지 전공이 내 적성에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싶었지만 대학 선교단체에서 만난 친구들 선후배들 덕분에 대학생활은 즐거웠다.


항상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온 나는 졸업 후 역시나 곁길로 가지 않고 내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사가 되었고 육아휴직 중인 지금까지 약 10년간 한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사회복지사로서 가장 많이 만났던 사람들은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 법인은 특성상 저소득 아동을 위한 복지사업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동의 보호자인 어머니들과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24살 아가씨가 갓난아기 또는 중고생 자녀를 둔 30대, 40대, 50대 엄마들을 만나며 무슨 느낌을 받았을까.


내가 만난 엄마들은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달랐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놀란 것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아니 심지어 남편의 학대까지 참아내며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복지관에 등록된 후원 아동 가정을 살펴보면 한부모 가정 중에서도 한모가정, 즉 엄마가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이 상대적으로 훨씬 많았다. 그 말은 부모가 이혼을 해도 엄마가 아이들을 양육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뜻이고 아빠가 양육비를 한 푼도 주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였다.(사실 대부분 아빠들이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


엄마들에게 아이들은 보살펴야 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그들이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해 보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가 엄마가 되기 전, 철저히 바깥에서만 보고 느꼈던 제3자의 시선일 뿐이었다.


막상 내가 엄마가 되고보니 엄마라고 해서 모두 다 자신의 아이만을 위해 살아가는 건 아니며 그렇게 살라고 강요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가장 먼저 깨달았다. 나라는 이름이 사라져 버리고 엄마라는 타이틀만 남게된 순간, 오히려 그 사실로 인해 내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있고 아이가 있는 것이지 아이가 있고 그 다음이 나일 순 없는 것이다. 그렇게 순서가 바뀌고 내 이름이 사라져버리고 나면 과연 그런 상태로 계속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철저하게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시간, 그것이 바로 엄마들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라야 더 오랫동안 아이와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다시 글을 쓴다.

둘째에게 젖을 물린채 핸드폰 자판을 두드린다.

내가 모두 사라져버리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기록하고 기억해서 나를 더 사랑해줄 수 있도록.

이 기록들의 목적은 그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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