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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자신 Nov 12. 2020

엄마들이여, 그냥 쓰세요

34개월, 4개월 애둘엄마가 쪽잠족 대신 쪽씀족이 된 사연

건조기에서 꺼낸 빨랫감들을 첫째 옷, 둘째 옷, 남편과 내 옷 이렇게 분류해서 개키고 나니 어느덧 첫째 어린이집 하원 시간 30분 전. 초조하다. 오늘은 한 자도 못 썼는데 어떡하지? 그래도 둘째가 자고 있으니 그냥 보내기엔 아까운 시간.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를 두들겨 댄다. 그냥, 정말 그냥 뭐라도 쓰고 싶어서.


젖먹이 아기를 키우다 보면 항상 잠이 부족하다. 둘째는 고맙게도 50일 전후부터 밤에 통잠(대여섯 시간 이상 쭉 자는 것)을 자주었기 때문에 그나마 잠이 심각하게 부족하진 않지만 하루 일과 중에 단 10분이라도 쪽잠을 자느냐 못 자느냐에 따라 하루 컨디션이 달라진다. 완모(완전 모유수유)를 하고 있어서 특별히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에너지가 뚝 하고 방전되는 순간이 한 번씩 찾아오기 때문이다. 둘째가 잠든 시간 잠깐이라도 같이 쪽잠을 자면 한결 몸이 개운해진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귀한 재충전의 시간을 포기하고 글을 쓰고 있다. 왜? 글을 쓰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이 충전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글을 열심히 쓴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애를 대신 봐주는 것도 아니건만 그저 나는 글을 쓰는 것뿐인데 이상하게 어딘가 저축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차곡차곡 쌓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이자가 붙어 두둑한 목돈이 생길 것 같은 기분.




둘째가 태어나면서 자연스레 부모의 사랑을 나누어 가져야 하다 보니 요즘 매사에 짜증과 떼 부리기가 늘어난 첫째. 그 모습이 안쓰럽다가도 내 체력과 인내심이 바닥을 칠 때면 통제 불가능한 행동들에 왈칵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가고 만다. 참지 못해 지르고 나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한 번 흘러나간 나의 분노는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에.


하지만 얼마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하자 두세 번 낼 화가 한 번으로 줄어들고(아예 안 내는 건 아직 힘들다.) 아이에 대한 마음도 조금씩 너그러워진 듯하다. 잘 쓰든 못 쓰든 한 자 한 자 쌓이는 이 여백의 공간이 뿌듯하고, 쪽잠 대신 쪽씀을 선택한 나 자신이 기특해서 그 좋은 에너지가 아이에게도 조금씩 흘러가고 있으리라.




이번에는 밤이 돼도 자지 않고 찡찡이 모드가 되어버린 둘째를 아기띠에 메고서 글을 쓰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SNS에 팔로잉한 사람들이 올린 새게시물이 없는지 새로고침을 누르고 있었겠지만, 남이 올려놓은 사진과 글을 보려고 스크롤바를 내리는 대신 내가 쓴 글을 따라 스크롤이 내려가는 핸드폰 화면에 집중하고 있다.


쓰면 뭐가 달라지나요?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내 대답은 “쓰는 만큼 달라진다”이다. 글을 쓰기 전에는 나도 내가 어떤 글을 쓸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있고 누구를 떠올리며 어떤 삶을 그리고 있는지, 쓰기 전까진 나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뭔가 쓰다 보면 그 모든 것이 서서히 명료해지고 정리가 된다. 이것이 글쓰기의 힘이다.


6년 전쯤, 글쓰기모임에 나간 적이 있다. 여러 가지 나름의 이유로 모인 소수의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고 글 한편을 써와 낭독하고 비평도 하며 1년 남짓의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 보면 직장생활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꾸준히 모임에 참석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었다. 비록 지금은 그때처럼 싱글도 아니고 직장 대신 육아가 나의 본업이 되어 치열한 전쟁터를 헤쳐나가고 있지만, 이따금 찾아오는 평화로운 휴식 시간을 쪼개 글을 쓰는 이 즐거움은 모든 것이 자유롭던 그때와는 또 다른 무엇이다.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은 엄마들에게 권하고 싶다. 아기 잘 때 잠도 자야겠지만 가끔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또 손이 가는 대로 글을 써보라고. 그러면 당신이 써 내려간 그 이야기가 얼마 뒤 지독히도 육아가 힘든 어느 날, 다시 당신에게 다정스레 말을 걸어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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