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글을 통해 인생을 남기다
인생은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온통 난센스로 가득한 이야기다. 나만해도 그렇다. 어제는 분명 새로운 희망에 가득 찼으나 하루 만에 그 기대감은 처음부터 있기는 했나 싶을 정도로 금세 땅으로 끌어내려져 내동댕이 쳐졌을 뿐이다. 그러나 늘 좋기만 한 게 아니라 먹구름도 끼고 천둥 번개도 치다가 또 금세 개이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보니 굽이치는 파도 속에서 펼쳐지는 한 사람의 서사에 일단 한 번 빠지고 나면 생판 남이라 할지라도 과연 그 인생의 결말이 어떻게 마무리 지어질지 퍽이나 궁금해지는 것이다.
나는 아주 예전부터 ‘읽기’에 열광했던 사람이다. 초등학생 때는 동네 도서관 어린이문고란을 전권 섭렵하고(사실 책 권수는 그리 많지 않았고, 당시 애늙은이 같은 성격 덕분에 같이 놀 친구가 없었다) 중학교 올라가서는 만화방 이모랑 찐우정을 쌓으며 독서의 영역(?)을 넓혔다. 고교시절은 그간 쌓아온 읽기 덕력 덕분에 문학과목 시험 전날 교과서를 집에 가져가지 않는 허세를 부려도 여유 있게 시험에서 만점 받는 패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지속적으로 읽는다는 행위를 통해 그것이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자연스레 글 속에 담긴 누군가의 인생을 들여다보았고 결국 그것이 모두 나에게 좋은 인생 공부가 되었다. 또 때론 위대한 사람들의 전기보다 우연히 접하게 된 신문기사를 통해 무명의 사람들이 남겨둔 삶의 조각들에서 더 큰 통찰과 감동을 받기도 했다.
인상 깊은 글과 이야기 속에는 공통점이 있다. 앞서 말했던 난센스적인 상황들이 대게 비슷비슷하게 주어지는 것 같지만 그것을 대하는 주인공들의 태도와 방식이 남다르다는 점이다. 모두가 자신에게 닥친 난관을 다 극복하는 건 아니며 때론 철저한 실패로 끝을 맺는 이도 있지만 그 난관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진면모가 드러나고 이를 통해 독자인 우리도 나름의 성찰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결국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깊은 인상을 주는 곳에는 뻔한 상황 속에서도 뻔하지 않은 생각과 행동으로 전혀 다른 결말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읽기 덕후로서 그동안 글을 통해 인생을 배웠노라 했더니 이제는 숙명과도 같이 글을 통해 내 인생을 남기고픈 소망이 생겼다. 비록 진득하게 앉아 집중해서 글을 써 내려가는 대신 아침부터 새벽같이 빡세게 돌아가는 육아시간표를 받아 들고서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즙을 짜내듯 한 방울씩 글을 담아내고 있지만, 그렇게라도 무언가 남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이야기의 시작과 다름없다.
인생이 난센스로 가득하기 때문에 글 쓸거리도 넘쳐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비극과도 같아 보였던 지금의 내 상황을 이 작은 공간에 풀어나가면서 처음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결말을 꿈꿔본다. 그래서 그저 글로 남겨진 내 삶의 여러 흔적을 통해 누군가 나도 다시 글을 쓰게 되었노라 말해준다면 그게 바로 나에겐 해피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