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개강일이 되었다. 설렌 마음 가득히 짐을 바리바리 싸매고 기숙학원으로 갈 채비를 했다. 고향으로 가는 생각도 들었다. 때는 2010년 1월 2일이었다. 새해 인사를 가족들에게 다시 반갑게 전하고 학원으로 출발했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을 다시 내가 치열하게 공부했던 그 학원에서 보낸다. 나의 첫 아르바이트이는 그토록 동경했던 수학 조교다. 더불어 처음 보는 대학생 혹은 대학생이 될 사람들끼리 모여서 기숙생활을 한다. 공부만 하면서 지낸 기숙생활과는 차원이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기대를 잠시 잊게 만들었던 눈 앞의 걱정거리가 있었다. 그 해 엄청나게 내린 서울, 경기 지방의 폭설이었다.
기록적인 폭설이었다. 나는 눈은 잘 오지 않고 비가 많이 오는 남부지방 출신이다. 그러다 보니 재수를 위해 입소를 하는 그날부터 눈을 자주 보게 되었다. 서울에서 겨울을 며칠을 보내보니 새삼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눈이 많이 오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지리를 공부한 나로서는 기후에 대해 배운 내용을 몸으로 체험한 셈이다.
하필 학원 개강을 앞두고 이런 기록적인 폭설을 맞이하게 되다니. 슬 걱정이 되었다. 큰 트렁크 하나와 공부할 책들을 담은 가방은 족히 쌀 한 가마 무게는 되는 듯했다. 나는 그것을 지니고 학원으로 향해야 한다. 서울에서 경기도 광주로 가는 교통편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촌놈이 익숙지 않은 수도권에서 어딘가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 담임선생님이셨던 정복일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학원에 근무 중이셨던 선생님께서 몇 가지 경로를 알려주셨다.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성남 모란역으로 간 다음, 모란역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광주로 간다. 그리고 광주 시내에서 택시를 타서 기숙학원으로 간다. 이건 정말 좋은 교통이 아니었다.
짐을 싸고 드디어 집을 나선 순간 눈앞의 새하얀 광경에 입이 떠억 벌어졌다. 눈이 많이 왔다고는 알고 있었다. 따뜻한 옷들도 겹겹이 입으며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런데 내린 눈의 양은 내 예상 밖이었다. 눈이라고 하면 소복하게 쌓여서 낭만적인 광경을 연출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창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시간이지만 인도와 차도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눈이 쌓여있었다. 자동차도 다니지 않았다. 집에서 전철역까지는 얼마 안 되는 거리였는데, 20센티가량 쌓인 눈을 뚫으며 트렁크를 끌고 역까지 간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점심시간에 있을 원장님 브리핑에 꼭 참석해야 하는데 제시간에 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기어가다시피 하는 택시를 한 대 잡아 전철역으로 향했다. 곳곳에 제설작업 후 남은 눈들이 쌓여있었다. 길 위의 남은 눈들은 꽝꽝 얼어서 차들이 쉬이 다니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전철역에 도착하여 모란역으로 향했다. 짐을 많이 싸들고 먼 길을 움직이는 것도 피곤한데 폭설에 사람들도 붐비니 평소보다 빨리 피로가 밀려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모란역의 날씨는 더 가관이었다. 서울에서는 그친 눈이성남에서는 아직도 휘날리고 있었다. 그 여파로 대중교통이 멈춰 섰다. 성남에서 광주로 넘어갈 때는 굉장히 가파른 언덕을 넘어야 했다. 그런데 길이 언 나머지 버스들이 오르지 못했다. 나는 언제 다시 운행할지 모르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철역 입구 앞에서 호주머니에 손을 놓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 선생님, 큰일 났어요. 버스가 움직일 수 없어서 저도 못 움직여요. 늦을 것 같은데 어떡하죠?"
"괜찮아, 이미 다른 사람들도 많이 늦는 것 같더라."
불행 중 다행일까? 대부분 조교들과 심지어 선생님들도 폭설로 지각을 했다. 엄동설한에서 두세 시간 정도를 더 기다린 것 같다. 갑자기 한 대의 버스가 정류장에 왔다. 날씨가 개지 않았는데 버스기사님이 정류장 앞에 서있는 우리 쪽을 보고 출입문을 열고는 소리쳤다.
"타십시오! 제가 길을 한 번 뚫어보겠습니다."
순간 그 기사님이 슈퍼맨처럼 보였다. 이렇게 된 거 밑져야 본전이다 시도나 해보자 싶어, 나는 덜컥 버스에 올랐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광주로 가기 위해 전철역에서 오랜 시간 대기하고 있었다. 기사님은 광주로 가는 내내 바쁘게 회사에 무전을 하면서 상황보고를 했다. 짐작해보건대 그 기사님은 선두가 되어 도로 상황을 살피면서 빙판 길을 뚫는 개척자였다. 그 가파른 언덕도 20km/h 미만의 속도로 천천히 올라갔다. 몇 번은 원래 가야 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우회하기도 했고, 고속도로도 타는 등 꽤 오랜 시간을 소요하며 조금씩 광주로 다가갔다. 차창 밖으로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새하얀 눈만 소복이 쌓여있었다. 나무도 도로도 심지어 집도 엄청난 양의 눈에 파묻혀있었다. 나는 버스에서 나오는 히터에 몸을 녹이며 무념무상에 빠져있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광주에 들어왔다. 광주의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서울은 사람도 많고 교통량도 많다 보니 제설작업도 곳곳에 시행되었다. 반면에 광주는 제설 작업은커녕 거의 손을 놓고 있는 것처럼 거리가 텅 비어 있었다. 거북이걸음 하듯 버스가 겨우 광주 터미널 앞에 도착했다. 그 기사님이 아니었더라면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기사님께 정말 고마웠다. 낑낑거리면서 트렁크를 내렸다. 서울보다 더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분명 이곳은 버스터미널 근처의 번화한 거리였는데 인기척이 없었다. 서둘러 학원에 들어가고픈 마음에 바로 콜택시에 연락을 했다. 하지만 차가 없단다. 차를 운행하지 않는 것인지 혹은 다른 곳에서 운행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잡아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눈 길 위에서 또다시 한 시간을 보냈다. 기다리는 것도 신물이 날 정도가 됐다. 날도 춥고 배도 고프고. 수학 조교 되기 참 힘들다.
바로 그때 체인을 둘둘 감은 택시 한 대가 지나갔다. 휴 다행이다. 택시를 잡았다. 택시는 천천히 무갑산으로 향했다. 일 년을 고생하며 보낸 그곳을 나는 다시 찾았다.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이 되어 기숙학원에 다시 간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혼자 택시 뒷자리에 앉아 피식 웃으며 감상에 빠져 있을 무렵 택시가 돌연 서버렸다. 기사님 왈, 끝까지 가려고 노력했으나 도저히 마지막 이 산을 넘기는 힘들 것 같단다. 그때 눈에 들어온 표지판 하나.
'광주 M학원 900m'
제설 작업의 여부를 알 수가 없어서 택시 기사님은 여기서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는 수 있나. 택시와 작별하고 나는 짐을 끌고 산비탈길을 올랐다. 900m를 언제 이것들을 끌고 다 올라가나. 바닥은 미끄럽고 날은 춥고 예상시간보다 세네 시간은 더 걸린 이 지루한 여행에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이 산만 오르면 학원이 보일 것이다. 정말 황당했지만 산을 오르다 보니 제설작업은 이미 깨끗하게 돼있었다. 알고 보니 나보다 일찍 온 수학 조교들이 힘써서 제설작업을 했다고 한다. 가버린 택시가 참 아쉬웠다. 별 수 없지.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뒤를 돌아보니 새하얀 길 위에 내 트렁크 바퀴 자국이 주르륵 길게 나 있었다. 곧 학원 아래 전원주택 단지들이 보였다. 무섭게 생긴 개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신이 난 듯 내 뒤를 졸졸 따라오기도 했다. 참 별일을 다 겪네.
몇십 분이 다시 흘렀다. 학원 정경이 눈 앞에 드러났다. 드디어 해냈다! 오전 아홉 시에 출발해서 오후 다섯 시 즈음에 도착했으니 여섯 시간이 넘는 시간을 눈과 사투를 벌였다. 그렇게 오른 학원, 그리웠던 그곳, 그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