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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상남 Jan 24. 2019

대면식

나는 수학 조교가 정식으로 되었다. 반배정을 마치고 수학 조교들은 숙소로 향했다.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으로서 기숙사에 다시 발을 디디니 감회가 새로웠다. 팍팍한 기숙학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다시 들어오게 된 이 숙소! 나중에 다소 변동이 있었지만 14인 실에서 합숙을 시작했다. 여전히 어색한 분위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내심 새롭다. 바깥과 단절된 곳에서 똑같은 사람들과 1년을 한 곳에서만 있었으니 사람을 사귀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어색함의 흐름을 바꾸어야 했다.


"어차피 5주 동안 동고동락할 거 지금 내가 먼저 친해져 버리지 뭐. 어색할 거 뭐 있나 성인이 돼서."


숙소는 공용 화장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우리는 기다란 화장실을 가로질러 일렬로 한 명씩 방으로 들어갔다. 언제 통성명을 해야 할까 물색하던 중 그냥 이때다 싶어, 내 앞의 누군가에게 기습적으로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광주 M학원 문과 출신 자상남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근데 하필이면 남양주 선배님이 내 앞에 있는 게 뭐람? 그런데 그때 인사했던 형이 바로 절친이 된 성민이 형이다.


"어 그래, 나도 잘 부탁할게."


첫 통성명이 이루어졌다. 성민이 형은 커피를 유독 좋아하는 과묵하고 매우 지적인 사람이다. 20대 초반 많은 귀감이 되어준 사람이기도 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사람들이 조금씩 이야기를 하며 통성명을 했다. 이윽고 조교들은 각자 맡은 반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담임 선생님들은 그날 바로 교실에서 자습을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수학 조교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셨다. 내 경우 잘 알던 박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지만 다른 조교들은 내심 걱정이었나 보다.

 

궁금했다. 누가 내 인생의 첫 학생이 되어줄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주어진 5주를 나는 얼마나 재밌게 보낼 것인가? 그때까진 대입에 대한 불안을 덜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내 가슴 한편은 큰 기대로 부풀었다. 성격이 외향적이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 앞에서 나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소개팅을 하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두근거렸다.


드디어 때가 온 것 같다. 박성식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아이들 앞에서 간단하게 인사를 하라는 뜻이다. 학원에 입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은 수학 조교의 존재조차 몰랐다. 그 어떤 사람보다 5주간 긴밀한 관계를 맺어갈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이제 아이들을 만날 때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이다. 드디어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을 많이 느꼈던 시간,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을 많이 해 본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준 그들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차가운 집중력이 지배하는 교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학생들이 놀라 모두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말없이 교탁으로 올랐다. 정적이 흘렀다. 몇 초 후에 드디어 내가 누구인지를 감 잡았는지 박수와 함께 큰 환호성이 들려왔다.


"와아아~~!! "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자리에 서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긁적긁적. 박 선생님께서 내 옆에 서셨다. 선생님께서 내 소개를 아이들 앞에서 해주셨다.


"자, 이번에 우리 MF반과 함께하는 수학 조교 자상남 선생님입니다."


아이들의 큰 박수와 함께 환호가 들려왔다.


"이 친구 작년에 문과 탑반 Mm반에서 공부한 문과 출신의 몇 안 되는 수학 조교다. 문과인 우리 반에는 굉장히 장점이 되겠다. 어... 음... 이 친구 굉장히 실력 있는 친구야. 작년 수능 수리영역 100점 출신이야. 사실 작년 시험이 좀 쉬워서 그래. 그렇지?"


"하하하하"


"안녕하세요, 작년에 이곳에서 공부한 Mm반 출신 자상남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맑게 빛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굴까라는 궁금함. 여느 학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학 조교라는 새로운 제도에 대한 궁금함 등 궁금하다는 눈빛을 마구 나에게 쏘아대고 있었다. 이렇게 내 인생 하나의 큰 획을 그었던 큰 인연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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