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다는 것은 곧 받는 것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아직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아이들의 이름이나 얼굴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수학밖에 없다. 흥미진진했다. 조교들은 맡은 반에서 가까운 빈 강의실이나 자율학습실에 배치되었다. 한 방에 2~3명씩 들어갔다. 조교들은 이름표를 달고 새로 함께할 학생들을 기다렸다. 학생들은 수업이 다 끝나고 자율학습시간을 통해 수학 조교들에게 질문을 하고 그 해답을 얻었다. 주로, 어려운 문제들을 가져오면 수학 조교들이 즉석에서 풀어주는 '질의응답' 형식이었다. 수학 조교들은 당연히 문제풀이에 능통해야 한다. 선생님들보다 그런 점에서는 유리하기도 하다.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부족할 수 있지만 실전에서 '풀어내는 것'에는 감각이 살아있기 때문에 상호보완이 가능하다. 강사들은 바쁜 일정에 담당하는 워낙 학생들이 많아 모든 학생들의 질문을 하나하나 원하는 만큼 해결해줄 수 없었다. 학원에서는 한 반에 1명씩 조교를 배치함으로써 학습 효과를 높였다. 사교육의 장점이다.
나는 마치, 성경 속 신랑이 자신을 데리러 오기를 오매불망하는 신부처럼 우리 반 아이들을 기다렸다.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다른 몇 명의 조교들과 동물원을 연상시키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유리방 안에 앉아 있었다. 창 밖으로 쉬는 시간에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누가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올까?
우리 반 애들은 어떤 애들일까?
자율학습이 시작됨을 알리는 종이 다시 울렸다. 긴장한 탓인지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학생들과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이 설렜다. 나는 이곳에 결국에는 일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공부를 하는 후배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수학 문제를 막힘없이 잘 풀어야 한다. 수능이 끝나고 정신없이 놀기만 했다. 공부라 해봐야 논술이나 영어를 한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수학을 많이 잊었을 법했다. 학원에 들어오기 전에 다시 복습을 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 아니었을까 걱정도 됐다. 애들이 질문을 많이 안 하면 어떡하나, 막히면 어떡하나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강타했다.
막상 시간이 닥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엔 공부를 하기 위해 발걸음을 한 학생들은 실력이 없으면 그 선생님을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실력이 좋은 것이 1순위요, 거기에 사람까지 좋으면 정말 찰떡궁합인 셈이다. 드디어 담임 선생님들이 매일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작성하는 질의응답 시간표를 복사해서 조교들에게 배포했다.
질의응답표에는 그날 누가 나에게 질문을 할 것인지 정해진 시간 별로 명단이 적혀있었다. 흥미롭게도 첫날부터 우리는 굉장히 많은 질문세례를 받았다. 한 사람당 15분씩 질문을 할 수 있었고 중간중간에 조교들을 위한 휴식시간도 배정됐다. 수업 첫날부터 무슨 질문이 있을까 싶기도 한데, 예상과 달리 학생들은 제각기 준비해 온 문제집들을 총출동시켜서 질문을 했다.
학원 진도에 상관없이 초장부터 4점짜리 고난도 문제들이 즐비했다. 돌이켜 보면 재수생 때 나도 처음 조교들을 만나 괜히 어려운 문제들을 가져갔었다. 실제 풀다 막힌 문제들이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조교들의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학생들은 전 범위에 걸쳐 질문거리를 가져왔다. 첫 학생이 누군지는 기억이 남아 있지 않고 기록도 없다. 분명한 것은 내가 처음 문제를 잡았을 때 '어? 생각보다 잘 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내가 힘들게 공부한 것들이 이렇게 쓸모가 있구나. 4점짜리를 분명히 풀고 있는데, 즉석에서 받아서 풀어주고 있음에도 의외로 막힘없이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재미가 있었다. 내가 남을 가르치려고 공부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수학이라는 것이 논리적이어서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가르치는 것에 나름대로 일가견이나 재능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기대 이상의 매끄러운 전달이 되고 있었음에 스스로 놀라웠다.
일은 쉽지 않았고 양도 많았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문제들을 연달아 해결했다. 내가 수험생 때 풀었던 기억이 있어서 더욱 명쾌하게 해결해주기도 했고, 어쩌다 내가 풀지 못할 경우에는 솔직하게 막혀서 못 풀겠다고 이야기를 한 후, 쉬는 시간이나 다음 날까지는 최소한 해설지를 꼭 만들어서 반으로 직접 전달해주기도 했다. 그 정도의 노력과 열정은 당연한 책임감이었다. 그 마음이 학생들에게도 말없이 그대로 전해진 것 같다.
수학 조교는 가르치는 본인의 실력이 출중해야 하고, 전달하는 능력 또한 좋아야 한다. 사실 이것은 강사들의 본질이다. 선생님이 된 이상 무언가 실질적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은 다 해주고 싶었다. 어쩌면 시키는 대로만 일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욕심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다른 반보다 우리 반만을 위해 차별화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했다. 내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다른 학생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고, 다른 반과 비교될 수 있는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아이들의 만족도를 높여주고 싶었다. '아 MF 반! 내가 그 반에 들어간 것은 굉장히 행복한 일이었다'라는 말이 학생들 입에서 절로 나올 수 있게 기여하는 것 그 중심에 내가 있고 싶었다.
바쁠지라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이 없어서 빈둥빈둥 놀면 뭐하나? 대다수의 조교들은 말로는 '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신없다'라고 투덜대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나 또한 그렇다. 꽉 찬 시간표를 5주 동안 유지해보고 싶었다. 재수를 하면서 시간표가 얼마나 꽉 차 있느냐가 사실 그 조교의 실력과 인성 그리고 인기를 모두 반영하는 것임을 보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반 별 담임제로 수학 조교들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 반에 대한 소속감과 책임감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커졌다. 내가 5주간의 윈터스쿨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내가 가진 것을 다 주고자 했던 노력에 대한 보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