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을 심는다는 것은 보여주는 것
좋은 선생님이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는 선생님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것에 상관없이 학생들에게 만족스러운 선생님이어야 하는가? 역시나 질문을 던져보았다.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학교나 학원에서 근무하는 이상 담당 과목에 대한 학문적 지식이 깊어야 하고, 그것을 전달할 수 있는 교수법 또한 아이들 눈높이와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일에 임하는 스스로의 마음가짐과 책임감도 필요하다. 뭐 좋은 건 다 가지고 있으면 간단하긴 하네 적다보이.
그러나, 쉽지 않다. 그 어느 것 하나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사회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만큼, 옳고 그름의 절대적 잣대 또한 더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어 "옳고 그름"이 아닌 "좋은"이라는 단어를 써서 내 생각을 조금씩 정리해가 보기로 했다. 오늘 내가 끄집어낼 생각은 바로 비전을 심어주는 것, 그것이 곧 롤모델이 되어주는 것이다. 좋은 단어임에는 확실하나 곰곰이 따져보면 아주 애매모호한 단어다.
"그거 참~ 좋은데, 우찌 설명할 방법이 음네!"
예전 어떤 광고의 글귀가 떠오른다.
오늘의 주제 단어에 집중해보자.
학생이라면 필연적으로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있다. 과목의 선생님, 인생의 선생님, oo의 선생님. 학창 시절엔 누구에게나 어떤 선생님이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어주는 경우가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재수 시절 이외엔, 나에게는 사춘기를 앞둔 시절 음악에 푹 빠질 수 있게 해 주신 초등학교 6학년 선생님이 그러했고, 치열하게 공부하도록 이끌어 주신 고3 선생님 한 마디 응원과, 1년간 지도해주신 심화반 선생님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그 외에도 좋은 추억을 안겨준 선생님, 그리고 그분들의 한 마디들. (*물론 '빠따' 때리고, 험악한 언사를 일삼은 선생들은 다른 의미로 사람들의 오랜 기억에 자리 잡기도 한다) 이 선생님들의 공통점이라면, 내 머릿속에 어떠한 생각 혹은 가치를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셨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바라볼 때 가지는 시각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들"
문자 그대로 '선', '생'이다. 작은 목표라도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이 말의 의미를 공감하게 된다.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성취를 하고자 한다는 말이다. 여러 분야에 걸쳐 각 학생들이 격차가 생기거나 비행을 일삼는 것도 결국 그 길을 아예 보지 못해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거나, 중도에 쉽게 포기를 해버린 예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 길을 보는 훈련을 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의욕을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다면?
선생님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원동력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메커니즘이다. 원동력이라 함은 그 노력을 대신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시험이든 나아가 인생의 어떤 미션이든, 본인의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하지만, 곁에서 그 노력의 끈이 끊기지 않도록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 사람은 많은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고,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신감과 보람이 채워지게 될 것이다.
<비전, 롤모델, 자존감> 이 개념들을 선생님이 직접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제 아무리 좋은 말 많이 해주는 선생님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선생님 스스로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말 뿐이요, 진심은 전달이 되지 않는다. 더불어 학생들은 그러한 관념적인 어휘들을 직접 체험하지 않았기에 이해하지도 못한다.
어린 학생들은 지혜의 단면도 하늘에서 툭! 떨어지듯 속히 경험할 수 없다. 처음엔 누구든 모방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나는 창조가 모방에서 비롯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생님의 철학은 결국 내가 가진 리더십과 직결된다. 돌격! 앞으로! 내가 먼저 보여줌으로써 따라올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해주고, 백문이불여일견의 자세로 선생의 체험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선생도 사람이기에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다. 자신이 잘 아는 것을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비전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타인에게 비전을 제시해줄 수 없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보지 않았거나 목표를 이루어 보지 않은 사람은, 제 아무리 원해도 타인이 동일한 목표를 이루도록 돕는데 한계가 있다.
큰 물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큰 물을 느끼도록 해줄 수 없는 것과 같다. 예전의 한 인기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초반부에 보면, 마에스트로 강(김명민 분)이 오합지졸과 같은 시민 오케스트라에게 "하나 느끼게 해 주마" 라며 <넬라 판타지아> 연주를 지휘를 하게 되는데, 그 장면에서 시민 오케스트라는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지를 느끼듯, 평화롭고 고요한 들판 위에서 연주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내 단원들은 마에스트로 강의 지휘에 자신들조차 변화될 수 있음을 느끼고 그의 실력에 크게 감탄하며 그를 재평가한다. 환희에 가득 찬 채로.
말보다 행위가 앞서야 한다는 것이 여기서도 적실성 있어 보인다. 내가 20대 초중반 일을 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성취할 수 있었던 영역은 사실 극히 좁다. 수험생활에 관련된 과목이나, 그것들을 해내는 과정에서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재수를 하면서 누군가의 영향을 받으면서 스스로의 비전을 만들고자 노력하였으며,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자 극한의 시간을 견뎌냈다. 그래서 학원에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선배의 입장에서 학원을 방문하여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선배와의 대화 시간에 참여하면 가장 먼저 들리는 이야기가 바로, "대학생활 어때요?"이다. 재수생들 혹은 고3들이 공부하는 곳이니 당연히 그럴 법하다. 그런데 많은 선배들이 들어와 대답하는 것은 단순히 "좋다. 미팅하면 재밌다. 자유가 많다" 등의 당연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 사실은 그것이 정답이다. 대학 생활을 해본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 말이 정답이라는 것을 안다. 수험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 눈에 들어오는 첫 번째의 것들이니까. 그런데, 과연 학생들이 그 존재의 유무를 몰라서 그것을 물은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 존재의 유무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궁금한 것이다. 그들은 그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모른다. 자유가 있다면 어떤 자유를 만끽하는지, 혹은 대학의 로망은 무엇에 있는지, 그래서 너는 어떤 즐거움을 어떻게 누리고 가는지 등을 압축적으로 알고 싶은 것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머릿속 상상을 통해, 연사의 묘사를 통해 느껴보고 싶은 것이고, 본인들도 가까운 미래에 경험해보고 싶은 간절함이 있는 것이다. 관념적 단어를 이용한 말에 불과하다면, 그 단어를 체험적으로 느껴보지 못한 아이들의 궁금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체험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줘야 비로소 그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는 사람으로 인식될 것이다.
선배들에게 공부방법을 묻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하는데 성적이 꿈쩍도 하지 않으니 답답하다. 그 벽을 넘을 해결책이 궁금하다. 그러니 쫓아와 공부 방법에 대해서 묻고, 생각하며 시행착오를 겪어 새로운 공부 방법을 만들고자 한다. 다행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자랑스럽게 후배들 앞에 선 많은 선배들은 나름의 공부방법을 적절히 그리고 꼼꼼하게 설명을 잘해주는 것 같다. 왜 그 방법이 필요했고, 그 방법을 어떻게 찾아냈으며, 어떻게 효과를 얻었는지까지.
본인이 걸어보지 않으면 그 길을 가라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 비전을 심어주는 선생님이란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하고, 어떤 길을 걸어보았으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스스로 발전하고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생들이 새로운 비전을 얻고 목표로 삼는 존재, 우리는 그것을 롤모델이라 칭한다. 거창하고 장황하게 설명해왔지만, 롤모델이 되면 비전을 심어주는 것은 자연스럽다.
롤모델은 아주 멋있는 존재다. 제 아무리 못생긴 사람이라도, 자신의 롤모델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은 거대해 보인다. 그 사람 얼굴과 몸 주위로 마치 햇빛이 내려쬐고 오오라가 번지듯이 멋져 보인다.
선생님이란 바로 이렇게 매력적인 존재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결국 나 스스로까지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사람에 대한 공부, 전공에 대한 공부, 그리고 인생에 대한 공부까지. 끊임없는 여정이 기다린다.
많은 사람들이 멘토링을 한 뒤 , "오히려 주러 갔다가 내가 배워왔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결국 이와 같은 이치가 아닐까? 선생님은 존경을 받는 만큼 무한한 책임감과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한 직업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