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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상남 Feb 22. 2019

포, 폭동이 일어났다

어린아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두 번째 윈터스쿨에서 예비 고2 반을 맡아 수학을 가르쳤을 때의 일이다. 조교 생활 2년 차가 되니 학원에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원래는 과목 담당 조교만 있었는데, 이제는 교무실 사무를 돕는 조교도 생겼다. 최저비용에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경제적인 선택인가? 매해 조교들이 있겠지만, 해마다 다른 분위기가 형성된다. 조교들끼리 단합이 잘 될수록 학원에서 얻는 부차적 효과도 크다. 일 시키기 편하지, 단합 잘되는 그룹에 일을 맡기면 어떻게 해서든 해내지, 그러니 일석이조다.


조교들은 만능 해결사였다. 외진 학원에 인력이 늘어나니 그럴 만도 하다. 어지간한 일들을 다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원래는 직원들이 해야 할 일도 어느 순간부터 조교들이 나누어 맡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가 면학분위기 잡기다. 담임 선생님들의 주된 업무 중에 하나이면서 학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 


조교들의 나이가 보통 20대 초중반이다 보니 학생들과 금방 친해진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윽박지르며 다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자기가 맡은 반 아이들을 동기 부여하고 담임 선생님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역할은 어떤 식으로든 해냈다.


한창 윈터스쿨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5주간의 긴 장정도 끝이 멀지 않았다. 평소처럼 아이들과 부대끼고, 숙소에서 라면을 먹으며, 일과가 끝나고는 야식을 시켜 우리끼리 그 날의 일이 무사히 마무리되었음을 자축했다. 나는 동료인 문경이와 함께 문제를 함께 풀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밤을 꼬박 새웠다.


이과 수학 조교들이 있는 유리방 안에서 밤을 새우다가 아이들이 일어나는 시간 즈음에 우리는 널찍한 소파에 앉아 그대로 잠을 청했다. 어둑어둑한 새벽이었다. 유리방은 불이 꺼져있고, 사생활 보호를 위해 희미한 테이프가 붙여져 있어서, 굳이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우리가 자고 있는 모습을 학생들이 보기는 힘들었다. 학생들은 막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삼삼오오 반에 들어와 자습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전 시간은 사감 선생님들이 분위기를 잡으며 지도하는 시간이었다. 각 층별로 적어도 2명씩은 배정이 되어있으니 꽤 많은 인원의 선생님들이 투입된 셈이다.


우리는 아무런 걱정 없이 소파에 걸터앉아 머리를 기대고 자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복도 쪽에 환해야 할 전등들이 일시에 꺼졌다. 교실의 불도 꺼진 듯하다. 처음엔 자고 있어서 몰랐는데, 학원 건물 전체에 정전이 온 것이다. 잠깐이면 돌아올 전기인데, 일은 그 찰나에 터졌다. 16살부터 막 19살이 되는 나이 때의 학생들이 수주 간 갇혀서 빡빡한 규율에 얽매이며 살아왔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정전이 되자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괜히 정전이 되니 장난 삼아 비명을 지른 것이다.(*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꼭 그랬던 것 같다. 크크) 그런데 그 비명소리와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더니 밖에서 아이들이 어두운 복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와 문경이는 비몽사몽 잠에서 깨어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포, 폭동이 일어났다!"


하필 정전이 된 순간 복도와 교실에서 면학분위기를 지도해야 할 선생님들이 어디론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업무의 공백이 발생했다. 찰나의 순간에 목줄 풀린 망아지 마냥 학생들은 순간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날뛰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나와 문경이는 그제야 자다 말고 일어나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는 선도부원처럼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곳곳을 돌아다녔다. 일단 각자 자기 반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 반 아이들은 침착하게 조용히 머무르고 있었고, 금지된 남녀 대화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학원에서는 남녀 학생들을 모아 두고 남녀 대화 금지라는 인류의 보편성에 역행하는 강력한 규율을 시행하고 있었다. 


다른 반의 사정은 완전히 달랐다. 그저 원시적 욕망이 불타오를 뿐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학원은 보지 못했다. 이것은 정글인가 기숙학원인가?"




이곳저곳에서 정전을 틈타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조교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자, 학생들! 조용히 하고 교실에 들어가 대기합니다!"


그렇게 나와 문경이는 소리치며 복도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아이들 몇 명 빼고는 들어도 듣는 채를 하지 않았다.


'자유! 나에게 빵이 아니면 자유를 달라!'


마치 프랑스 시민혁명을 보는 듯, 아이들은 억눌려왔던 욕망들을 마구 드러내고 있었다. 비몽사몽인 우리들에게 눈 앞의 상황은 짜증과 분노의 대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한 교실에 들어갔더니 우리의 감정이 폭발하게 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복도와 교실을 돌며 분위기를 진정시키다가 예비 고1 반에 들어갔다 눈 앞의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정전이 된 틈을 타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짧은 순간에 학원에서 가장 금지된 남녀 대화가 무수히 일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놀라웠던 것은 한 1학년 남학생이 어떤 여학생에게 무릎을 꿇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어디서 본 것은 있어가지고) 그 모습은 창문 밖의 으슥한 달빛과 동트는 햇빛 덕분에 어둑한 그림자처럼 비치고 있었다. 마치 서양을 배경으로 한 만화에 자주 나오던 실루엣만 있는 한 장면처럼. 


우리는 재미있으면서도 황당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진짜 선생님의 입장에서 소리를 지르며 훈육을 했다. 눈 앞의 상황이 재밌다면 재밌을 수도 있지만, 우린 더 이상 학생이 아니었기에 좌시할 수 없을 지어다.


한창 고백을 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미안할 법도 했지만 가차 없었다. 이 상황을 빨리 끝을 내야 했다. 평소에 온화하고 재밌는 조교 선생님들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고함을 지르고 분노를 표출하는 짐승이 되어버린 듯 우리는 그렇게 한 반 한 반 분위기를 잡아갔다. 이내 다른 조교들도 잠에서 깨어 놀라 일어나 우리들과 합류했다. 그때까지도 사감 선생님들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그 많은 인력들은 일시에 어딜 간 것인가?


몇 분의 시간이 더 흘렀다. 학원의 분위기가 이내 잠잠해졌고, 곧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별 일 다 겪어보았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대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이 부모 손에 이끌려 극한의 고통을 인내하며 공부를 수주 간 해왔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질풍노도의 시기에 뻔히 보고 있는 같은 반 여학우들에게 말 한 번 걸지 못하니 얼마나 더 마음이 갈까. 사실 그곳에 있으면 특별한 것이 없어도 이성에 관심이 더욱 가게 된다. 자유를 박탈당하면 내 손 안의 선택권의 가치는 더욱 올라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다고 했던가.


아무튼 그렇게 정전 해프닝은 일단락되었다. 그때 그 남녀의 앞길을 내가 막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Yes'였을까 'No'였을까. 하하. 윈터스쿨이 종강하고 그 둘은 다시 만났을까? 남학생은 못다 한 메시지를 전했을까? 얕은 미소와 함께 궁금증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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