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초 겨울이었다. 예비 고2 학생들과 함께한 윈터스쿨도 끝이 났다. 첫 윈터스쿨과는 다르게 나는 조금 더 적극적인 인간관계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정이 많이 든 아이들이 다시 지방 곳곳으로 돌아가면, 현실적으로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으로서 그들이 학원에서 습득한 지식과 지혜들을 초심 잃지 않고 수험생활에 활용하기를 바랐고, 기숙학원에서 힘들게 실천한 공부의 자세와 다져 놓은 각오들을 잊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좋은 명분을 통해 윈터스쿨 후 처음으로 전국 여행을 계획했다. 조선 팔도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관광보다 사람을 만나는 여행, 이름하여 '사람 여행'을 말이다. 어떤 사람이 보기엔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멀리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유난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이 일회용 인연이 될지, 정말 평생 갈 추억이 될지는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설령 일회성 인연일지라도, 그때의 나는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기에 아쉽지도, 아깝지도 않았다. 여행길은 다음 글에서 엮어보겠다.
함께 여행한 조교가 한 명 있었다. 종종 연락을 하면서 지내곤 했는데 어찌 지내는지 참 궁금하다. 2011년 윈터스쿨에서 처음 만난 문경이는 나와 동갑내기다. 방법은 다르지만 여러 부분에서 공통점이 많아 친해졌고, 선뜻 여행도 함께 다니게 됐다. 친한 친구끼리 여행을 다니면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고들 하던데, 우리는 별 탈 없이 즐거운 여행을 마무리했다. 둘 다 생애 첫 전국 여행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처음으로 또래를 보고 존경심이 들었다. 어린 시절 또래 친구 중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한 몇 안 되는 친구 중에 하나였다.
남자들끼리 새삼스럽게 뭘 이런 말까지 하냐 싶지만, 나는 그 친구를 인정한다. 아니, 대단히 '멋진' 친구라 생각한다. 문경이는 여러 방면에서 참 특이하고 다양한 재주를 가진 친구로 기억된다. 조교로 근무할 때도, 무심한 듯 하나 알고 보면 남다른 열정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갔던 문경이. 인기도 많았고 그만의 유머로 학생들과의 심리적 장벽을 쉽게 무너뜨렸다. 그는 냉철한 판단력과 집중력으로 학생들이 공부의 끈을 놓지 않게 나름의 방법을 필사적으로 연구했다. 윈터스쿨 안에서도 그렇고, 그곳을 나와서도 멘토링은 자기 능력 범위 안에서 계속되었다.
그는 겉보기와 다르게(?) 함께하는 아이들에 대한 열정만큼은 2등이라면 서러울 정도로 가지고 있었다.
삼수생 출신이었던 그가 (내 첫 윈터스쿨처럼) 학원에서 일을 마치고, 고대하던 대학생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학생이 된 그와 나는 종종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하루는 우리 집에서 밤늦게까지 음주와 야식을 즐기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좁은 내 자취방은 두 덩치에 의해 발 디딜 틈 없이 의해 점령당했다.
푸우, 푸우, 크헉! 서로 쌍 나발 코를 연신 골아대며 반쯤 술이 취해 잠을 한 창 자고 있던 이른 새벽이었다. 갑자기 날카롭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알람이 쩌렁쩌렁 울렸다. 잠이 덜 깨 비몽사몽으로 꼼지락거리며 시계를 보니 아침 6시도 되지 않은 새벽이었다. 문경이 핸드폰의 알람은 울리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껐나? 근데 갑자기 문경이가 잠에서 깨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우, 뚜우"
누굴까? 설마 숨겨둔 여자 친구?(*조문경... 너마저....) 근데 왜 하필 이 새벽에 전화를 할까? 가뜩이나 자다 일어나서 목도 잠기는데 전날 실컷 먹고 마시며 떠들다 잠에 드니 목소리는 더욱 가관이었다. 그가 걸쭉한 목소리로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여보세요, 마. 일어났나?"
"일어나라, 일어나."
지금 누군가를 깨우는 건가? 다음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순간 잠이 확 깨버렸다.
"화장실 가. (몇 초 후) 화장실 들어갔나?"
"물 틀어. (반응이 없는지) 안 틀어? 마, 자냐? 빨리 물 틀어."
"소리 들리게 틀어"
"이제 핸드폰 옆에 두고 세수해. 어서 세수해."
"이제 잠깼제? 그래 알았다. 공부해라. 낸 잔다."
뚝!
뭐꼬. 이 퐝당한 시츄에이션은?
자초지종을 추정해보면, 문경이도 윈터스쿨이 끝나고 자기 반 아이들 몇 명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면서 멘토링도 지속했다. 그에겐 윈터스쿨의 생활 리듬을 지속하고 싶어 하는 한 학생이 있다. 보아하니 그 학생은 학원의 면학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 자신을 곁에서 붙들어 주길 원했고, 그 부탁을 각별한 사이였던 문경이에게로 한 것이다. 문경이는 학생들이 학원에서 기상하던 새벽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서 부탁한 학생들을 깨워주고 다시 잠에 드는 생활을, 퇴소 후에도 해주고 있던 것이다.
"참 유별나다. 뭐하러 그렇게까지 해주냐."
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학생들과 특별한 곳에서 동고동락한 것을 감안하면, 이 같은 관계는 조금 특별할지는 몰라도 넘치거나 괴이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유별나고 깨알 같은 웃음을 준 해프닝이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열정을 읽을 수 있어 지켜보는 사람도 훈훈하게(?) 만드는 짧은 대화였다. 대단하다 문경이. 나보다 더 한 놈이 여기 있었네.
나는 멘토링 과정 중에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어떤 방법을 우리는 멘토링에서 좋은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멘토링의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도, 선생의 입장에서 학생 중 어떤 아이는 잘 받아들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똑같은 것을 해줘도 자신의 삶에 변화의 불씨가 찾아오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멘토링이라는 것은 쌍방향 소통이다. 시작은 선생의 마음가짐과 자질에 달려있을지 몰라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결과는 선생과 학생 모두에게 달려있다. 경우에 따라, 많은 변화가 생기기도, 변화의 불씨를 지피기도 혹은 아무런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 또 생각해보면 '변화되었다'라는 말도 한 가지 기준에서의 주관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나와 문경이가 벌인 멘토링은 그 목적이 성공적인 입시라는 하나의 것으로 수렴했기 때문이다. 수년간 고민했지만, 결국 정답을 찾지 못했다. 정형화된 방법이란 것이 없다. 그래서 선생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여러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받아들이는 학생들에게도 계기가 필요하고, 적절한 '타이밍'이 돼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멘토링의 결과는 끝이 나보아야 알게 된다. 우리는 우리만의 스타일대로 멘토링을 진행했으니 후회는 없었다. 그러한 객관적인 시각 따위 논할 틈도 없었다. 멘토링은 늘 진행형이었으니 말이다. 그 정답은 무엇일까? 나는 오늘도 사유해본다.
그렇지만 알게 된 것도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누군가 옆에서 지켜봐 주고 믿어주고 정성을 쏟아준다면 반드시 그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도,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말이다. 적어도 난 그리 믿는다.
"Don't rush. We can take it slow."
선생이란 학생과 연결된 끈을 놓아선 안 되는, 대단히 고되고도 인내심이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