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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상남 Sep 06. 2019

#11. 여행(3)

런던

독일에 살면서 장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여행하기 좋은 위치다. 아무리 학업에 치이고, 마음을 먹기 힘들다 할지라도 한국에 있는 것보다 '유럽 여행'을 더 자주 한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내게 여행은 망각을 위한 것이고, 여행은 내게 새로움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다. 


여행을 아무 때나 쉴 새 없이 다닌다면 그것은 일상이 되어버릴 것이고, 그렇다면 여행을 하지 않아야 망각이 된다. 여행은 더 이상 온전히 새롭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밥먹듯이 여행을 할 수는 없고 다만 어디로 여행을 갈 것인가를 정하면 나는 내 여행 소기의 목표들을 달성하게 된다. 참으로 감사하다. 제 집 앞마당처럼 유럽 곳곳을 누빌 수 있다는 것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특권 중에 특권이 아닌가. 


나는 섬나라 영국에 종종 갔다. 유독 런던과 그 주변만 돌긴 했지만, 교환학생을 하면서 그리고 유학을 하면서 만만하면 런던에 가다 보니 벌써 세네 번 다녀온 것 같다. 나는 런던의 아기자기하면서도 북적북적한 거리와 뮤지컬을 좋아한다. 비록 다른 나라에 비해 먹을 것이 없다는(?) 편견 아닌 편견도 있는 장소지만 말이다. 




영국에서 공부 중인 내 동기 동환이가 졸업을 앞두고 있다. 영국의 석사는 대개 1년이다. 다른 유럽권 국가에서 대학원 과정을 2년간 하는 것과 달리 영국은 똑같은 과정을 방학 없이 1년에 구겨 넣는 셈이다. 그러니 공부의 양과 세월의 흐름이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또 빠르다고 한다. 졸업을 앞둔 내 친구를 다시 보기 위해 런던으로 향했다. 1박 2일 그 짧은 여정이 시작된다. 


나는 여행을 여유롭게 다니고자 한다. 늘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잠깐의 휴식을 위해 여행을 계획하기 때문이다. 처음 유럽에 배낭여행을 왔을 때 나는 2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짧은 시간 밀도 있는 여행을 해야 했기에 온종일 걷고 먹으며 구경을 했다. 시간이 흘러 유럽이라는 곳이 낯설지 않게 되자 나는 그곳에서의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여행하는 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먹는지, 어떤 휴식과 여가생활을 향유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홀로 여행을 할 때에는 늘 맛있는 식당과 공원 그리고 서점을 구경한다. 유독 나는 서점을 좋아하는데, 서점에 가서 영어로 된 철학 원전과 한국에 관련된 책 그리고 어학에 관련된 책을 둘러본다. 그것만 구경해도 오후 일정 하나는 거뜬히 보낼 수 있다. 조용한 집중력이 발휘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동환이가 가이드를 자처했다. 그가 독일에 나를 보러 왔을 때 갑작스러운 40도에 가까운 폭염으로 우리는 숨을 헐떡거리며 집안에 퍼져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 우리의 외출 의지를 더욱 꺾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생각보다 가이드를 잘 못 해준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동환이에게 런던은 내 집 앞마당과 같다.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복잡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친구들과 구석구석 다니며 술을 한 잔 하기도 했고, 홀로 탁 트인 곳에 와 차를 마시며 사색을 하기도 했단다. 술을 끊은 나로서는 후자가 무척 구미가 당겼다. 귀국 후 기말고사를 비로소 마무리한 뒤 홀가분하게 영국으로 향했다. 




템즈강이다. 저~~~~ 멀리 타워 브리지가 보인다. 런던에서 흔치 않은 맑고 시원한 날씨였다. 여담이지만, 저 멀리 관광 명소인 타워브리지는 조선시대 고종이 통치하던 시절에 지어졌다고 한다.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나는 다시금 느꼈다.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런던의 부동산은 정말 알 수가 없단다. 그 비싸다고 아우성대는 서울의 집값은 애들 장난이란다. 적당히 중산층이 살 것 같은 작고 평범한 집도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은 거뜬히 나간다고 한다. 문과생만 모여서 그런지 나이가 든 건지 우리는 연신 그런 사회적인 소재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멋지다. 우리의 삶에도 구름이 지나면 파아란 하늘이 등장한다. 그것이 삶이다. 그래서 삶은 살만하다. 기대가 된다. 왼쪽 두 개의 커다란 빌딩 사이로 빼꼼히 런던아이가 보인다. 


동환이 왈,


"여기가 볼 수 있는 건 다 보여서 아주 좋은 곳이여."


크큭 ㅋ 보이긴 다 보인다 정말.


Tate modern이다. 얼마 전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에 등장한 장소란다. 어쩐지 딱 보자마자 장면이 떠올랐다. 이곳은 옛 화력발전소 건물이었단다. 그 건물을 헐지 않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단다. 오로지 자발적인 기부금에 의해 운영된다고 한다. 멋진 곳이다. 



건축이 곧 경제력이다는 생각이 든다. 랜드마크 제대로 하나 만들어두면 두고두고 많은 효과를 거둔다. 여러 번 런던을 방문했지만 이곳에 오지는 못했다. 안내책자에도 특별히 사람들의 블로그에도 언급이 많이 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인가? 나는 늘 질문하고 되돌아본다. 



동환이는 Tate modern의 6층에 있는 이 카페에 와서 밖을 바라보며 사색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곳은 그에게 소울 플레이스 (Soul place)다. 영국은 홍차의 나라로도 알려져 있는데, 나는 녹차를 시켰다. 요즘 참 도자기를 비롯해 음료의 문화와 그 문화를 지탱하는 그릇에 관심이 많다. 이곳의 찻 잔과 주전자가 현대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선을 갖추고 있어 맘에 들었다. 



여러 효과를 넣어 보았다. 밖에 초점을 두느냐, 앞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같은 것도 다른 느낌이 든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바라 보기 나름이 아닌가? 좋고 안 좋음의 기준은 결국 바라보는 사람에 달려있거늘..



레드카펫이 깔렸다. GQ는 유명한 어떤 브랜드란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왔을까? 둘 다 진기한 광경에 잠시 발길을 멈추어 보았다. 




배가 고파 근처 버거&랍스터에 왔다. 처음 런던에 왔을 때 먹을 것이 없어 사람들이 많이 가는 이 랍스터 요리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알고 보니 프랜차이즈여서 손쉽게 식당을 찾아 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코딱지만 한 호텔에서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비가 왔었다. 전날 너무 피곤해 야경을 보러 가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아침 산책을 했다. 고요했다. 사람들의 출근길을 바라보며 현지인들의 일상을 관찰했다. 이렇게 작은 집도 한 가구가 쓰면 어마어마하게 비싸겠지?


집 2


영국의 상징 중 하나다. 빨간색이 참 잘 어울린다. 저기서 전화하면 지하 마법부로 가는 겁니까?



월척 중 하나다. 

독일의 유머책과 영국의 요리책이 세상의 모든 책 중에 가장 얇다고 한다. 그만큼 맛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meat pie는 정말 신세계였다. 바삭하고 부드러운 빵 안에 하이라이스 같은 소스에 살짝 볶아진 고기가 들어있었다. 최고의 아침. 나는 녹차 한 잔을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무엇보다 바깥 작은 테라스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며 먹는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유럽에 있음을 실감케 했다. 


어떤 흑인 남자가 지나가다가 두리번거리더니 우리들에게 물었다.


"이 메뉴가 뭡니꺼?"


맛있어 보였는지 이야기를 해주자 밝게 웃으며 주문하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무엇을 하며 마지막 몇 시간을 보낼까 고민했다. 우리는 버킹엄 궁전에 왔다. 사람들이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 떼 지어 있었다. 우리는 바로 그 아래 조용한 냇가 근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색에 빠졌다. 나는 이런 코스가 더 좋다. 늘 사람들이 가는 길만을 고집하고 싶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면 그만이다. 오리들이 많았다.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대망의 애프터눈 티 (afternoon tea) 타임이다. 사실 점심 먹기 직전이라 그냥 홍차와 스콘 세트를 시켰다. 세상에! 하얀 치즈 같은 소스와 잼이 어우러지니 이런 신세계가 있나 싶다. 동환이 덕분에 분위기 좋은 곳에 왔다. 



크으 한 점 하실래 예?

새로운 음식도 좋고, 그 음식을 먹는 방법도 배워서 좋다. 동환이 덕분이다. 



바깥으로 런던의 상징 코치(coach)가 지나간다. 이번엔 지하철만 탔다.



마지막 일정으로 다시 Tate modern에 왔다. 전날 시간이 늦어 카페만 가고 맨 위층 전망대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늘이 더욱 맑아 기분이 상쾌했다. 런던은 정말 온고지신이 아닐까 싶다. 



저 멀리 현대적 건물이 많은 곳은 금융지구다. 이 큰 선진국의 나라가 금융 덕분에 많은 부를 쌓을 수 있다니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긴다. 



아주 fancy 하고 고풍스러운 아파트가 바로 앞에 있었다.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이런 집은 런던에선 엄청나게 비싸겠지? 



걷고 싶은 길이 많아야 한다. 서울이 규모에 비해 파리, 런던, 뉴욕과 같이 관광의 중심지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건축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위정자들의 안목이 필요해 보인다.



참 산이 없고 끝없이 펼쳐진 곳이다. 우리의 포부도 이처럼 끝없이 펼쳐지길 소망한다.



Everything is going to be alright

전망대에는 층고가 높은 카페가 있었는데 그곳에 웬 글귀가 이렇게 적혀있었다. 대단히 한국적인 멘트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귀를 보고 용기를 얻기를 소망한다. 우리도 당신도, 모두들. 


즐거운 여행을 마쳤다. 런던의 새로운 면을 많이 느끼다 보니 어느새 시험기간의 스트레스와 여독이 망각됐다. 하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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