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본격 투어의 시작

아이슬란드 감기 #6

by 김제르
아이슬란드에서 감기에 걸린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맞다. 놀라운 대자연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아기자기한 시내에 반해 몸져누울 정도다. 바이러스가 잔뜩 퍼졌는데 아프진 않다. 이건 분명 감기 같은데..
스코가포스 전경


6화 : 본격 투어의 시작


너무 일찍 잔 탓인지 심하게 일찍 일어났다. 안 그래도 해가 짧은데 무려 6시에 잠에서 깼다. 창 밖은 고요했고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냥 한밤이나 마찬가지. 아직 투어 시간도 멀었고 조식조차 시작하지 않은 시간. 산책을 간단히 하고 7시에 맞춰 식당으로 갔다. 조식 메뉴는 식빵, 햄, 치즈, 오이, 토마토, 다양한 잼 등 샌드위치 재료와 쿠키, 삶은 달걀, 주스와 우유, 커피 등이다. 이 재료들로 점심 샌드위치까지 싸 가고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싸가지 마세요”라고 써붙여놨다.


이른 시간의 레이캬비크 시내


밥을 먹는데 카톡이 울린다. 이번 여행에서는 로밍도 하지 않고 해외 유심도 끼지 않아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만 인터넷을 쓰자 싶었는데 식당에선 와이파이가 터진다. 내가 여행 간지 모르는 지인의 카톡이다. 시차는 한국이 9시간 빠르니 대략 오후 5시 정도? 퇴근을 앞두고 있는 시간일 게다. 직장을 옮기려는 후배와 간단한 상담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 보드복과 비니로 투어 준비를 한다.


버스를 타고 달리면서 보는 풍경


버스 픽업 장소에 미니 버스가 들어온다. 미니 버스들이 여러 픽업 장소에서 예약한 사람들을 태워 여행사 터미널에 집합시킨 후 대형 버스로 갈아타고 본격 투어를 떠나는 방식이다. 미니 버스지만 인원 체크는 모두 전자식이다. 버스기사가 이름을 확인하고 거치된 패드를 가볍게 터치한다. 명단이 적힌 종이를 들고 나와 쓱쓱 줄을 긋고 하는 미개한 상상을 한 내가 부끄러웠다. 나름 IT 강국이라더니 실생활에 잘 적용돼 있었다.


오늘의 투어는 아이슬란드 남쪽(South Iceland, Waterfalls and Black Sand Beach)이다. 스코가포스, 검은 모래 해변, 솔헤이마 빙하, 셀리야란드스포스의 4군데를 중심으로 하는 아이슬란드 남부를 다니는 코스다. 총 투어 시간은 점심시간을 포함해 10시간. 9시 출발이라 다른 날에 비해 여유로웠지만 11시 30분은 돼야 해가 뜨니 8시건 9시건 깜깜하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략 해가 뜰 때쯤 폭포에 도착할 수 있게 해놨다.


스코가포스의 웅장함. 낙수는 얼음이 돼어 땅으로 쏟아진다


스코가포스는 굴포스에 비하며 아담한 규모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폭포의 형태로는 꽤나 웅장하다. 게다가 폭포 바로 아래까지 갈 수 있고, 언덕길을 통해 폭포 위쪽도 볼 수도 있다. 날이 추워서 물이 떨어지면서 작은 알갱이가 돼 튀었다. 마치 우박 같았다. 폭포 위에서는 강풍이 불어 위험하기도 했다. 바람이 갑자기 불어 2~3걸음 정도 밀리기도 했는데 그게 낭떠러지에서 산으로 부는 바람이었기에 망정이기 반대였음 큰일 날 뻔했다. 근처의 여자 관광객은 바람이 불자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에 쪼그리고 앉기도 했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상황이었다. 아이슬란드의 자연 관광지들은 펜스나 가드가 거의 없는 그냥 자연 상태여서 각자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 특히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고.


검은 모래 해변은 말 그대로 검은 모래로 된 해변이다. 화산재의 영향으로 백사장이 아닌, 흑사장이 펼쳐진다. 그 옆에는 주상절리 바위도 있어 다들 사진 찍느라 바쁘다. 한 외국인 남자가 주상절리를 타고 중간까지 올라가 만세 포즈를 취해 다른 관광객의 사진을 방해한다. 혼자만 신났지. 어딜 가나 저런 놈들은 꼭 있다. 셀리야란드스포스는 스코가포스보다는 조금 작은 느낌이었지만 폭포 뒤로 돌아가는 길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겨울에는 길이 폐쇄된다. 이곳 역시 폭포의 일부와 낙수가 죄다 얼어 얼음 천지였다. 솔헤이마 빙하는 기회가 되면 트래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력적으로 황량한 얼음길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다.


블랙 샌드 비치는 주상절리와 흑사장이 일품이다
겨울에는 셀리야란드스포스의 뒷길은 막혀 있다
얼음과 빙하뿐인 솔헤이마 빙하 가는 길


하루 종일 투어 버스를 타고 다니니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친해지는 경우가 많다. 영어를 공통적으로 썼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논다. 사람들이 모이면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비록 데일리 버스 투어지만 짧은 시간 동안 꽤나 즐거워 보였다.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아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버스 와이파이로 인터넷이나 끄적거린다. 4군데만 다녀서 크게 피곤하진 않았지만 추운 날씨 탓에 버스 안에선 노곤노곤해졌다.


한 가지 생각을 못한 것이 바로 아이폰이다. 카메라 없이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는 나로선(아이폰으로 찍은 여행 인스타그램(www.instagram.com/iwai_DK) 계정을 갖고 있어서) 추위와 강풍을 너무 얕봤다. 그래서 사진 찍는 것만큼 많이 한 일이 핫팩으로 아이폰 녹이기. 내일은 더 단단히 준비를 해야겠다. 아이폰이 얼어버리면 사진이고 나발이고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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