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굴포스에 압도되다

아이슬란드 감기 #8

by 김제르
아이슬란드에서 감기에 걸린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맞다. 놀라운 대자연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아기자기한 시내에 반해 몸져누울 정도다. 바이러스가 잔뜩 퍼졌는데 아프진 않다. 이건 분명 감기 같은데..
보자마자 압도되는 굴포스의 위용


8화 : 굴포스에 압도되다


골든서클의 3곳 중 굴포스는 단연 최고다.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개인적인 TOP2가 굴포스다. 너무 춥고 바람이 심해 정신을 못 차리면서 본 게 좀 아쉽지만 그리도 굴포스를 직접 봤다는 건 나중에 큰 자랑거리가 될 거다. 굴포스 때문에 "멋지다"를 연발하며 봤던 스코가포스나 셀리야란드스포스가 마이너리그처럼 느껴진다. "아 그런 폭포가 있었지" 정도? 이런 것들을 보려고 인천공항에서 날아왔구나 할 정도로 굴포스는 나를 흥분시켰다.


굴포스의 웅장함을 담기에 아이폰은 너무 부족하다


굴포스로 아이슬란드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다. 실제로 보니 그 규모가 엄청 났다. 압도당했다는 표현이 딱 맞다. 수평으로 넓은 폭포도 대단하지만 물보라를 일으키며 지구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포수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입을 떡 벌리고 감탄하고 있는데 한 외국인 커플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자리를 잡고 “하나, 둘..” 어라? 갑자기 카메라 앞에 중국인 여자 관광객이 튀어나온다. 비켜 달라고 하니 자기 먼저 빨리 찍겠단다. “야! 우리도 빨리 찍을 거야!”라고 하려다가 외국인 커플과 눈이 마주쳤다. 어깨를 들썩하며 피씩 웃는 커플. 나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모양으로 “차이니즈…”라고 해줬다.


외국인 커플의 사진을 찍어주고 나도 사진을 찍고 있는데 또 다른 중국인 남자애가 중국말로 나한테 뭐라고 한다. 영어로 하라고 했더니 미안하다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자”고 한다. ‘다짜고짜 나를 중국인으로 봤단 말인가!’ 싶어 단호하게 “No”라고 해줬다. 아니 어딜 봐서 내가 중국인처럼 보인단 말인가! 심지어 중국인들 눈에 그렇게 보이다니! 버스 뒷자리에서 혼자 먹방 찍던 남자애 역시 나에게 다가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자고 했지만 너도 “No”. 넌 나한테 찍혔어. 뭐든 다 안 해줄거야.


저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폭포수


그렇게 혼자 구경하다 사진 몇 장을 찍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굴포스의 강한 바람이 엄청난 추위를 몰고 왔고 결국 아이폰이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하며 애간장을 태운다. 아이폰 앞뒤에 핫팩 2개를 대고 계속 주머니에 넣고 흔들며 사진 찍을 때만 잠깐 꺼내 후딱 다시 넣고 그랬지만, 낮은 기온에 강한 바람까지 더해지니 속수무책이었다. 그나마 완전히 죽지 않아 시종일관 인공호흡을 해가며 굴포스의 사진과 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전쟁터마냥 피어오르는 온천수의 뜨거운 기운


골든 서클의 마지막 장소는 게이시르다. 온천수가 펄펄 끓는 곳으로 간헐적으로 물기둥이 솟구쳐 오른다. 계속 피어 오르는 연기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지만, 물기둥이 한 번씩 솟구쳐 오를 때마다 여기저기서 관광객들의 탄성이 들렸다. 아이돌을 본 것처럼 유난스럽게 감탄사를 내뱉던 한 외국인 여자 관광객과 눈이 마주쳤을 때는 내 눈빛이 무서웠는지 바로 입을 틀어막고 “I’m Sorry”라고 하더라. 내가 좀 과했나 싶기도 했지만 몇 분 마다 솟구치는 물기둥에 그런 호들갑은 진짜 오바다.



오늘 투어 버스는 별로였다. 어딜 가나 애들이 문제다. 애라고 해봐야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데 하는 짓은 초딩이다. 버스 안에서 음식을 먹거나(아까 그 중국 남자애) 영상 통화를 하거나(동유럽 여자애들) 지들끼리 잡담을 하며(같은 동유럽 패거리들) 시끌벅쩍했다. 가이드는 친절했다. 굴포스에서 깜빡 잠이 들어 집결 시간을 다시 물어봤는데 가이드는 내가 영어에 서툴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이후에 뭔가를 고지할 때마다 계속 나한테 따로 한 번 더 말해줬다. 천천히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이날은 아이폰만큼 나도 추웠다. 핫팩을 아이폰에 양보한데다 타이즈도 입고 오지 않아 체감 온도는 더 낮았다. 전날 버스를 오래 탔다고 추위를 너무 우습게 본 잘못이다. 이후엔 꾸준히 타이즈를 입었는데, 정말 타이즈는 아이슬란드 여행의 신의 한 수였다. 평소 불편해서 내복을 절대 안 입었지만 여기서는 타이즈는 그냥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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