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감기 #9
아이슬란드에서 감기에 걸린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맞다. 놀라운 대자연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아기자기한 시내에 반해 몸져누울 정도다. 바이러스가 잔뜩 퍼졌는데 아프진 않다. 이건 분명 감기 같은데..
투어를 하면서 중간 중간 휴게소에서 화장실과 식사를 해결하는데, 아이슬란드의 물가는 꽤 높다. 편의점 샌드위치에 과일 음료만 샀는데도 8,000원 정도. 물론 더 싸게 고르면 5,000원대로 낮출 수도 있지만 한겨울에 딱딱한 샌드위치는 너무 서럽잖아. 그래도 대충 먹을만한 걸 고르면 그 정도 가격이다. 자리잡고 앉으면 햄버그스테이크나 수프 같은 것들이 21,000~24,000원 정도니 질 좋은 샌드위치면 땡큐다. 기념품도 마찬가지. 열쇠고리나 마그넷도 죄다 7000~10000원. 디자인도 조잡한데 많이도 받는다. 그래도 다른 유럽 지역과는 달리 화장실을 무료로 쓸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니 저녁 6시. 골든 서클이 그나마 가까워서 늦게 출발하고 빨리 돌아오는 편이지만, 그래도 투어 시간은 무시할 수 없다. 마트는 문을 닫았고, 결국 한국에서 싸온 음식들로 저녁을 준비한다. 3분 카레와 햇반, 통조림과 김치, 이곳 마트에서 산 소시지를 곁들인다. 저녁은 게스트하우스 식당에서 준비한 것들로 자유롭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물론 조리 도구나 기계 등은 사용할 수 있다.
아무도 없는 시간이라 음악을 틀어놓고 저녁 준비를 했다. 사람도 없고 이어폰도 귀찮아서 그냥 스피커로 위너 음악들을 듣는다. 카레와 소시지 등의 조리 시간은 5분이 되지 않으니 2~3곡 정도 들었을까? 먹느라고 몰랐는데 식당에 2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들어와 있었다. 미안하다며 음악을 껐더니 괜찮다고 한다. 밥 먹으면서 <ISLAND>와 <REALLY REALLY>를 들었다. 가수와 곡명을 묻길래 답해줬더니, 팀명을 듣고는 살짝 웃는다. 그러고보니 다 영어네? ‘승자’라고 하면 좀 웃기나? 그럴 수도 있겠다.
저녁을 먹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내일부터 투어들이 계속 10시~11시에 돌아오는 일정이라 나름 여유로운 저녁 산책도 오늘 정도겠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레이캬비크에 왔는데 맨날 해 뜨기 전과 해 진 이후만 보고 있다. 하루쯤은 동네 주민 컨셉으로 빈둥대며 돌아다녀봐야 하는거 아닌가? 그래서 고민 끝에 ‘블루라군’ 일정을 취소했다. 온천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혼자 물에 몸 담그고 있는 시간도 그리 길 것 같지 않았다. 다른 것에 비해 덩치가 작은 투어라는 것도 이유였다. 바로 메일을 보냈다. 하루 정도는 밝은 레이캬비크를 보고 싶었다.
레이캬비크의 저녁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많이 났다. 대부분의 집에선 크던 작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했다. 공터에는 큰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다. 대부분의 집들은 삼각형의 크리스마스 트리 조명을 창문에 달았다. 시에서 나눠줬나 싶을 정도로 모두 같은 제품을 설치해놨다. 레이캬비크 시내에 공사하는 곳이 꽤 많았다. 심지어 어떤 건물들은 고층이다. 이제 이곳도 슬슬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기존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려는 모양이다. 지금 내가 보는 이 모습을 나중에는 못 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돌아오며 할그림스키르캬에 잠시 들렀다. 여전히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많다. 하늘을 보니 드론이 돌아다닌다. 누군가의 취미인 모양이다. 근데 구름이 계속 많다. 아이슬란드에 온 이후로 밤에는 계속 구름이다. 오로라 지수는 계속 보통 이상인데 구름 때문에 안타깝다. 멀리 하늘을 보니 뭔가 울긋불긋 푸르스름한 느낌의 불빛이 보이기도 하는데, 설마 오로라인가? 에이 설마? 진짜 아닌가? 근데 분명 저건? 아닐거야 설마, 근데..?!
여행을 온 가장 큰 이유는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이 생겨서지만, 굳이 12월의 아이슬란드를 택한 이유는 오로라가 가장 컸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듯한 화려한 오로라는 아니어도 잠깐 그 희미한 불빛이라도 보고 싶다. 아니면 겨울에 또 와야 하는데, 겨울은 너무 춥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