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최악의 투어 버스

아이슬란드 감기 #10

by 김제르
아이슬란드에서 감기에 걸린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맞다. 놀라운 대자연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아기자기한 시내에 반해 몸져누울 정도다. 바이러스가 잔뜩 퍼졌는데 아프진 않다. 이건 분명 감기 같은데..
시끄러운 애들까지 잘 태우고 달려준 투어 버스


10화 : 최악의 투어 버스


처음에 아이슬란드에 올 때 두꺼운 패딩이나 바람막이용 옷 여벌을 살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선 새 옷을 가져가는 게 부담스러웠고, 옷의 양을 늘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눈과 비와 바람과 추위에 모두 강한 보드복을 택했다. 일반적인 디자인이지만 그래도 보드복은 좀 튀려나 했지만 웬걸? 보드복은 물론 스키복을 위아래로 입고 온 사람도 꽤 보였다. 근데 스키복은 좀 이상하긴 하더라.


마트나 버스에서는 라디오가 틀어져 있는데 음악보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아이슬란드 유행 음악은 어떤 건지 궁금했는데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만 주구장창 해댄다. 그러다 간혹 음악이 나오면 그냥 팝. 시간대가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활기차게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김영철의 파워FM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버스를 타고 달리며 보는 풍경


미니 버스 정류장에는 역시 희한한 사람들이 꽤 있다. 자기 투어 버스가 오면 가서 이름과 인원 확인하고 앉으면 되는데, 꼭 이름 부를 때까지 밖에 있는 애들이 있다. 다 기다리는데 한 사람이 안 와서 기사가 이름을 크게 부르니 멍하게 서 있던 남자애가 그제서야 버스로 온다. 많아 봐야 미니 버스가 3~4대 정도인데 자기 버스는 좀 알아서 타면 오죽 좋아? 그래도 이름 불려서 타면 다행이지 저번처럼 늦게 나와서 다시 찾으러 가고 어쩌고 하면 정말 민폐다.


오늘은 미니 버스가 일찍 출발해서 투어 버스에 먼저 올랐다. 버스에는 4~5명 정도가 앉아 있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내 앞에 중국인 커플이 앉았다. 남자애는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고 여자애는 영어를 거의 못하는 것 같았다. 근데 중국어로 엄청 찡찡거린다. 남자애는 그걸 애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투정 가득 이다. “모자가 예쁘게 안 써졍 힝~” “가방을 둘 곳이 없졍 힝~” 하는 식이다. 옆자리 외국인 여자애들도 신기하게 바라볼 정도였다.


온통 돌과 흙, 눈과 얼음뿐인 땅


오늘 투어 버스의 가장 큰 문제는 뒷자리에 퍼질러 앉은 히스페닉계 애들. 6명의 일행이 혼자 2자리씩 차지하고 앉아서 아예 드러두워서 간다. 먹고 떠들고 히히덕거리는 건 기본에, 발을 앞자리에 얹거나 아예 통로를 가로질러 의자 4개에 누워 가는 애도 있다. 가이드가 안전벨트를 메라고 몇 번 주의를 주지만 선생 눈치 보는 학생들처럼 가이드가 앞자리로 가버리면 또 지들 마음대로다. 아주 그냥 개념들이 없다.


중간쯤에 앉은 영국 여자애 둘도 문제다. 둘 다 덩치가 좀 있어서 나란히 앉지 않고 2개 의자에 각각 혼자 앉았다. 그런데 얘네들 목소리가 정말 크다. 나란히 앉아서 조용히 얘기하면 될 것을 각자 멀리 떨어져 앉아 목청을 한껏 높여 이야기한다. 그나마 2명이라 대화가 길어지지 않아 다행이지만, 졸다가 걔네들 목청에 놀라서 깨기도 했다. 2자리에 혼자 앉을 거면 차라리 통로 쪽에 앉아서 거리라도 좁히지 왜 둘 다 창가에 앉아서 서로 큰 소리로 불러대고 난리인지.


아무도 손 대지 않은 태초의 자연


그런 와중에도 눈에 띄는 관광객도 있었다. 모델 뺨을 한 10대 정도 때려도 될 것 같은 여자와 그의 친구. 그나마 이 소음 속에서 안구라도 정화되나 싶었는데 가이드를 부르더니 뭐라고 얘기를 한다. 살짝 들어보니 중간에 투어버스를 갈아탄다는 얘기 같았다. 그리고 역시나 첫 번째 투어에서 내린 후 다시 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소음지옥이 시작됐다.


가이드의 벨소리도 크게 들렸다. 근데 놀랍게도 <대부>의 OST. 아니 이 사람 영화광인가? 아님 <대부>의 팬? 왠지 반가웠다. 근데 아직도 벨소리에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넣는 사람이 있구나 싶은 생각에 뭔가 촌스러운 정겨움이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 뒤에 있는 히스페닉 애들이 음악까지 틀기 시작한다. 지들끼리는 볼륨을 줄였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이 양반들아 니들 6명이 다 들릴 정도면 주변 사람들 다 들리는 거야. 생각 좀 해라. 수학여행 왔냐?


해가 낮아 항상 땅거미가 지는 아이슬란드


버스 안은 그렇게 난장판이었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정말 예술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버스투어가 아니라 차를 렌트해서 링로드를 달려보고 싶었다. 운전의 피로도는 쌓이겠지만 이 멋진 풍경을 그냥 달리면서 보는 건 너무 애석한 일이다. 목적지가 문제가 아니다. 아이슬란드의 모든 길은 그것 자체로 충분히 장관이다. 관광 명소를 찾아 가는 게 이렇게 무의미한 적이 있었던가? 아이슬란드는 달리는 길, 보이는 풍경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는 곳이다.


아이슬란드의 링로드는 제주도 해안도로와 비슷한 형태다. 말 그대로 ‘링’ 모양으로 섬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방식이다. 물론 아이슬란드에서 운전할 때는 여러 변수에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날 것 그대로를 느끼려면 자유도가 높아야 한다. 겨울이 아닌 어느 날에 차를 렌트해 링로드 투어를 하고 싶다. 길을 달리는 것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들을 보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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