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내 눈 앞의 빙하

아이슬란드 감기 #11

by 김제르
아이슬란드에서 감기에 걸린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맞다. 놀라운 대자연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아기자기한 시내에 반해 몸져누울 정도다. 바이러스가 잔뜩 퍼졌는데 아프진 않다. 이건 분명 감기 같은데..
호수에 둥둥 떠있는 빙하


11화 : 내 눈 앞의 빙하


굴포스가 아이슬란드에서의 개인적인 TOP2였다면, TOP1은 바로 요쿨살론이다. 물론 아이슬란드의 모든 것을 본 게 아니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순위지만, 요쿨살론에서 본 것들은 낯설고 인상적이었다. 다시 떠올려봐도 정말 내가 그것들을 눈 앞에서 봤나 싶을 정도로 믿기지가 않는다. 그리고 아직도 조금은 벅찬 기분이 남아있다.


시끌벅적한 투어 버스의 불쾌함도 요쿨살론 앞에서 눈 녹듯 녹아버렸다. 사실 요쿨살론은 레이캬비크에서 먼 거리다. 서쪽 끝에서 출발해 섬의 중간 이상을 넘어가는 거리다. 그냥 가기만 하는 것도 먼데 버스 투어는 돌아오는 것까지 생각해야 하니 투어 시간만 14시간이다. 그래서 처음 신청을 할 때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다녀온 사람들은 무조건 강추했고 혹자는 아이슬란드에 가는 이유라고도 했다. 친한 형은 “무조건 가라. 레이캬비크 주변만 갈 거면 아이슬란드 갔다는 말도 하지 마”라고 했다.


눈 앞에서 직접 빙하를 보는 신비로움


하루를 요쿨살론에 다 쓰는 일정이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빙하들은 신비로웠고 경이로웠다. 그동안은 어디에서 본 풍경들이 업그레이드되는 정도였다면 요쿨살론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태어나 여러 사물들을 하나하나 접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물론 사진으로 미리 보긴 했지만 그 공간 안에 내가 있다는 건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빙하의 색깔은 맑은 푸른 빛이었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더 푸르게도, 더 하얗게도 보였다. 작은 것들은 투명한 것도 있었다. 녹지 않고 호수 위에 둥둥 떠있는 것도 신기했다. 물론 서서히 녹고 있겠지만 그 형태가 일정기간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건 놀라웠다. 규모도 꽤 커서 프레임에 한번에 담기지 않았다. 언덕을 올라 위에서 호수 전체를 바라봤지만 역시나 부족했다. 눈에는 담겼지만 광각렌즈가 없는 아이폰 포토그래퍼에겐 그저 아쉬울뿐이다.


빛에 따라 파랗게 또 하얗게 보이는 빙하


언덕 위에서 천천히 호수를 내려다봤다. 멀리 해가 지는 석양의 강한 붉은 빛이 보였지만 호수와 빙하에서는 다시 맑고 푸른 빛으로 변했다. 언덕을 내려가 빙하에 가까이 다가갔다. 빙하의 일부가 얼어있어서 겁도 없이 얼음 위로 올라갔다. 좀 더 가까이서 빙하를 보고 싶었지만 많이 가까워지진 않았다.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호수 주변엔 ‘Danger’라는 푯말이 있었지만 역시나 아이슬란드답게 그게 전부다. 가드나 펜스 따위 없다. 자연 그 안에서 날 것 그대로 즐기란 얘기다.


때로는 투명하게


사람들도 저마다 사진 찍기에 바쁘다. 시종일관 떠들던 히스페닉 애들도, 목청 큰 영국 여자애들도, 콧소리로 찡찡대던 중국인 커플도 신기해며 사진 찍기 바쁘다. 그리고 버스에선 몰랐는데 한국인 여자 2명이 투어 버스의 일행이었다. 한 명은 놀라며 사진 찍기 바빴고 한 명은 연신 춥다는 소리만 계속 했다. 가볍게 인사라도 할까 하다 말았다. 누군가와 얘기를 하며 요쿨살론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붉은 석양이 내리는 요쿨살론


거리가 먼 탓에 요쿨살론에서 출발할 때부터 해가 뉘엿뉘엿 지는 분위기였다. 그래 봐야 3시가 조금 넘은 정도였지만 조금 달리다 보니 이내 해가 졌다. 그래도 가이드는 중간에 버스를 한 번 세웠다. 이제 흔적만 남은 옛날 다리를 잠깐 보고 가자는 건데, 밖은 이미 너무 깜깜했다. 친절하게 “플래쉬를 사용해서 사진을 찍으라”고 했지만 그걸 누가 모르냐고. 그보단 뭐 별 것도 없는데 굳이 멈춰야 했나 싶은 생각에 사진은 안 찍었다. 게다가 플래쉬 터뜨리면 사진이 플랫해져서 안 예쁘단 말이다.


해가 질 때 즈음 다시 레이캬비크로 출발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버스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버스는 여전했다. 아니 더 심했다. 이제 같은 히스페닉어를 쓰는 애들끼리 완전 동네 잔치처럼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다들 옹기종기 모여 히스페닉어로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고 나는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본의 아니게 음악만 겁나 들으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창 밖만 응시했다. 자리라도 옮길걸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억지로 잠이나 청할 밖에.


투어 버스는 엉망이었지만 요쿨살론은 내 인생 스팟이 됐다. 아직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이 많겠지만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선 가장 낯설고 신비로웠다. 감정적인 요인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배제하고 단순히 장소로만 치면 생을 통틀어 1위일지도 모른다. 살면서 언제 코 앞에서 빙하를 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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