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해불가 중국인 관광객

아이슬란드 감기 #13

by 김제르
아이슬란드에서 감기에 걸린 건 아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맞다. 놀라운 대자연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아기자기한 시내에 반해 몸져누울 정도다. 바이러스가 잔뜩 퍼졌는데 아프진 않다. 이건 분명 감기 같은데..
언제나 석양이 지는 아슬란드의 겨울 해변


13화 : 이해불가 중국인 관광객


버스가 작아서인지 사람들과의 거리가 좁았다. 그래서 더 쉽게 친해졌다. 특히 이 사람 저 사람과 모두 친해진 필리핀 아저씨의 오지랖은 거의 글로벌급이다.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영어권 관광객은 물론, 아시아 관광객과도 유쾌한 대화를 이어간다. 각 나라의 여행지 얘기나 음식, 문화 얘기에 모두 낄 정도로 잡상식도 강했다. 특히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리드하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점이 부러웠다. 한국어라면 나도 못지않았을 텐데 싶지만 현실의 나는 그저 과묵한 동양인 관광객일 뿐.


동굴로 들어 가는 입구


나도 이 아저씨와 캘리포니아에서 온 어떤 여자와 나름 얘기를 많이 나눴다. 대박 지각 사건이 잠깐 조느라 얘기를 못 들은 이유였다는 하소연도 했다. 뭔가 주도적인 인물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이 필리핀 아저씨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번호도 많이 딴다. 스스로 “나는 친구가 많다”며 흡족해한다. 2주 뒤에 서울에 갈 계획이 있다고는 했지만 나한테 번호를 따진 않았다. 내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걸 자기도 아는 거지.


빛 한 줄기 안 들어오는 동굴로 가는 계단


그런데 이 아저씨 체력은 참 저질이다. 배가 많이 나온 체형으로 움직임을 선호하지 않는 모습이 역력했다. 동굴 체험을 할 때는 이동이 그리 많지 않았음에도 혼자 헉헉 거리며 땀도 제법 많이 흘렸다. 그럴 때마다 내가 “물 좀 줄까요?”하면 “차에..(헉헉).. 물이..(헉헉).. 있어요..(헉헉)”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동굴은 얼음동굴은 아니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에 약간의 가공을 한 곳이었는데 구조에 따라서는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구간도 있었다. 어느 지점에서 가이드가 “랜턴을 끄라”고 하자 완벽히 캄캄한 암흑이 됐다. 필리핀 아저씨가 휘파람을 불며 장난을 치길래 나도 “물지 마세요!”라며 농담을 했다. 사람들이 웃었다.


얼음호수와 검은 해변으로 가는 길


이날은 앵앵거리는 중국인 커플도 함께 했다. 내가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지만 이 남자애는 도저히 안 되겠다. 무려 하루 2개의 에피소드로 나의 선입견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그냥 눈 감고 넘어가 주려 해도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첫 에피소드는 얼음호수에서의 일이다. 이곳은 호수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이 하얀 얼음 왕국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다. 커플과 함께 사진을 다 찍은 이 중국인 남자는 다른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와중에 돌을 던져 호수의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인상을 썼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음이 두꺼워 잘 깨지지 않자 어디선가 큰 돌을 들고 왔다. 사람들이 놀란 듯이 쳐다봤고 나도 “그러지 마요!”를 외쳤지만 기어코 그 돌을 호수로 던졌다. 다행히 얼음은 깨지지 않았다. 대신 흉물스러운 검은 돌이 하얀 호수 한가운데 놓였다. 자기들 사진 다 찍었다고 얼음호수를 깨겠다니, 대체 무슨 상식인 건가?


얼음호수 한가운데 덩그러니 검은 돌덩이


두 번째 에피소드는 돌아가는 버스 앞에서다. 버스 출발 시간을 조금 넘겨 중국인 커플이 버스로 오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로 거의 왔을 때 여자가 사진을 더 찍고 싶다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이에 가이드가 “출발 시간이 지났는데 네 여자 친구는 어디로 가는 거냐?”라고 묻자, 남자애가 갑자기 “What?”을 연발하며 못 알아듣는 척을 하기 시작한다. 바로 2시간 전까지만 해도 가이드한테 “나는 영국에서 유학 중이어서 영어를 잘 한다”며 유창한 영어 실력을 뽐내던 애가 갑자기 영어 무식자 행세를 하는게 아닌가?! 덕분에 버스의 모든 사람이 그 여자 친구의 사진 촬영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파도가 부서지는 검은 해변


심지어 이 중국이 남자애는 약간의 자뻑 기질도 있었다. 얼음호수에서 얼음 깨기에 실패하고 나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그러지 말라”는 말을 들은 뒤에도 그는 호수 근처를 서성거렸다. 사진을 찍으려는 나는 그 애가 여간 거슬리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을 찍게 좀 비켜달라고 했더니 대뜸 “나랑 사진을 찍고 싶다고?”하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어서 피식 한 번 웃어주고 한 마디 했다. “내 카메라 프레임에서 나오라고.”


해변에서 한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자갈을 줍는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자갈 몇 개를 줍다가 이내 버렸다. 근데 좀 이상하긴 하다. 옛날부터 아저씨들은 왜 계곡이나 바닷가에서 그렇게 돌을 주웠을까? 다들 수석이 취미였나? 주웠던 돌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그걸 아이슬란드 해변에서도 하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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